入佛知見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이미 넘었습니다.

2012. 2. 22.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화려한 제9 굴을 지나 바로 옆에 있는 제10 굴로 갑니다.

제10 굴은 비로불동(毗盧佛洞)이라고 하네요.

전체적인 모양이 제9 굴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여기도 정말 화려한 곳입니다.

환장하리만치 화려한 곳입니다.

지금 이게 정녕 돌을 쪼아 석굴을 만들고 돌을 다듬어 색을 입힌 석굴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돌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기술이라도 지녔단 말입니까?

 

마주 보이는 전실 북벽의 창문 아래와 출입문 위의 사이인 상인방을 보면 층층이 정상으로 이어지는

신들의 산이라는 수미산이 보이고 산허리쯤에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무슨 짓을 하는지 얽혀있습니다.

얼핏 보면 마치 불륜의 현장처럼 보입니다.

 

이게 어찌 수미산이냐고 묻고 따지신다면 佳人도 할 말이 없지만,

수미산으로 보셔야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편해지실 겁니다.

그래야 佳人의 얼렁뚱땅 이야기가 진행되니까요.

 

수미산이라 느끼시고 용을 찾으셨으면 이미 반은 득도의 길로 접어드셨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불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는 부처의 지혜로 다가가는 入佛知見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통과하여 들어왔으니까요.

 

메루산이라 하는 수미산에 울창한 숲과 뛰노는 많은 동물이 보이시죠?

확대해 드려도 아직 안 보이시면 득도의 길은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산의 양쪽으로는 악신이라고 하는 머리와 손이 여럿인 아수라가 보이실 겁니다.

젠장, 비슷한 모양일지라도 어떨 때는 아수라가 되고 어떨 경우는 쿠마라도 되고

또 비슈누도 되는 게 힌두교라고 봐야 합니다.

 

요가의 몸짓인 랄리따사나의 자세를 취하고 하나의 다리는 앉아있는 모습으로 접고 있으며

다른 다리는 건방진 자세로 건들거리고 있네요.

역시 아수라의 자세는 건방진 자세입니다.

달과 해를 손으로 움켜잡고 있네요.

비슈누가 원반을 잡고 있는 것은 차크라라는 것으로 그 안에 세상의 지혜가 담겼다 하는데

아수라는 탐욕만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동서 양쪽 벽에는 집 모양의 벽감을 세 칸이나 만들었네요.

그 안에 얼굴을 보니 아주 평화롭고 자애로운 보살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잠부나무 아래 반가좌사유보살이 한 손으로 뺨을 괴고 눈은 아래로 깔아 삼라만상의 고민을 모두 헤아리고

있는데 그래 무슨 고민이신지 佳人에게 털어버리시면 어떠하니까?

고민은 안고 있어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오니 어서 털어놓으세요.

 

앗!

아래 벽감 안에 앉아계신 부처는 나이키 셔츠를 입으셨군요?

너무 오래도록 수양을 했기에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 위로는 압사라가 승리의 춤을 열심히 추고 있습니다.

 

바위를 파낸 벽감을 이용한 이 조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장인이 무엇을 설명하려 했나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다르지만, 이렇게 남아 있는 장인을 숨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만히 장인의 숨소리를 들어보세요.

전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요?

그리하시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세요.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옛사람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그 앞에 서서 바라보세요.

느껴보세요.

장인이 이 조각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느낄 수만 있다면 이미 우리는 1.500여 년 전으로 과거 여행을 한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佳人은 그 의미를 몰라 오락가락하는 중입니다.

 

 

문 양쪽으로는 금강역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새의 깃털로 만든 멋쟁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손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는 게 보이시죠?

그러나 얼굴 표정만은 온화하고 부드럽게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면 문표 보자고 할까요?

이런 지붕의 모습은 지금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지붕 위의 금시조도 보이고 주변의 문양은 인동초문이나 화염문도 보입니다.

기와의 모습도 선명하고 용마루와 지붕 꼭대기에 금시조를 얹은 모습은

중국을 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형식인가 봅니다.

 

금시조란 불경에서 말하는 상상의 새로 금빛 날개에 입에서 불을 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 합니다.

힌두교에서 비슈누가 타고 다녔다는 가루다가 중국으로 넘어오며 금시조로 변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식성이나 하는 짓을 보니 같은 가문 출신이거든요.

인도네시아 항공사 이름이 지금은 가루다 항공이지요?

 

이제 제11 굴로 넘어갑니다.

제11, 12, 13 굴은 같은 그룹으로 묶어야 한다는군요.

제11 굴에는 위아래 두 개로 된 기둥이 있고 가운데는 중심 기둥이 받치고 있습니다.

 

아래층의 각 사면에는 서 있는 부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남쪽 벽감 안에 있는 대형 부처는 협시보살의 시중을 받고 있네요.

이 굴은 요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치맛자락에 흐르는 고운 선이 보이세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세요?

그게 보이고 들리신다면 이미 여러분은 하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깨달음이란 이렇게 쉽고 간단합니다.

평생을 수양한다고 하면서 독설이나 퍼붓고 앉아 계시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하는 게 깨달음입니다.

빠떼루는 민초에게만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얼굴 모습이 우리와는 다른 표현방법이네요.

 

서쪽 벽감 안에는 7 존의 서 있는 부처를 만들었고, 얼굴은 통통한 편입니다.

키도 크고 몸집도 당당하게 만들었네요.

이는 이 석굴을 만든 요나라 민족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부처도 시대와 나라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보입니다.

세상의 진리란 세월을 먹고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숙성되고 자라고 변하나 봅니다.

그렇기에 모든 민족이 생각하는 완전한 진리에 다가서는 일은 멀고 힘든 일이 아니겠어요?

 

제11 굴은 국가가 아닌 마을의 신심이 깊은 불자 54명이 만든 것이랍니다.

동네에 옛날부터 국가에서 부처상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라다 보면 누구나 반은 달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맹모삼천지교라고 왜 맹자 엄마가 치맛바람 휘날리며 8 학군을 찾아 주민등록법을 위반하며

부정 전입을 했겠습니까?

이게 다 자녀가 주변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렇지요.

자식이 웬수입니다.

그런 자식을 위해 부모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너무 사람을 미워하지는 맙시다.

그 부모의 마음은 사랑이나 행동은 법을 어긴 일이지요.

맹자의 엄마는 불법 전입의 효시였습니다.

이렇게 마을에서 자라며 배우며 자기들끼리 흉내 내며 만들다 보면 이 또한 유적으로 남게 되잖아요.

 

위로 뚫린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천장을 비추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합니다.

이렇게 캄캄한 굴속이라도 조명이 필요한 곳에는 굴을 뚫어 빛을 불러왔습니다.

지금 만약 이런 것을 만든다 하면 중국에 지역마다 공연을 기획한 유명한 감독은 정신 사납게 번쩍이는 조명으로

미친놈처럼 발광했을 겁니다.

 

빛이란 오묘한 느낌이 들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공연장에서 정신 사납게 번쩍거리며 시끄러운 소음으로

난리법석 떨며 반라의 여자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관객의 정신을 빼야만 되는 게 아닙니다.

후광이니 배광이니 하는 것도 이렇게 자연적으로 빛을 만들면 더 아름답고 황홀하지 않습니까?

 

어찌 이런 온화한 빛으로 이곳을 장식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천장에는 용이 붕붕 날아다닙니다.

이곳은 안에다 몰래 용을 키우고 있지나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금시조의 양식 거리인 용 말입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시작했겠지만, 만들다 보니 제법 전문가의 향기가 풍기기도 합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달인이 되어서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다 보면 장인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여기 제11 굴에는 운강석굴의 석불 숫자의 2/3인 10.000개의 석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답니다.

제가 모두 세어보지 않아 장담은 하지 않겠습니다.

좌우지간 석불의 바다입니다.

석불의 주차장입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는 마음은 내가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게 있는 한 세상을 예뻐하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탐욕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 미워할 게 없다는 말이다.

사랑하라!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바라는 게 없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바라는 것보다 해주고 싶은 게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