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0.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늘은 제4 굴부터 보려고 합니다.
4 굴은 너무하네요.
볼 게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망가져버렸으면 석굴 이름마저 없고 그냥 넘버 4입니다.
아무리 못났더라도 이름이나 지어주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으면 나와보라 하세요.
세상에 태어나 이름조차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어요.
하물며 부처도 잘나야 대접받는 세상인가 봅니다.
이곳은 관광객마저 외면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야 그리할 수 없지요.
혹시 다 부서져버렸을지도 모르는 부처라도 만나면 손이라도 잡아드리렵니다.
하나의 출입문에 양쪽으로 두 개의 창문을 만든 곳입니다.
부처란 그래도 멋을 부려야 사람이 찾아오고 주변에 얼쩡거리지 여기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숨어 있으면
중생마저 무시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들여다보니 역시나 세월의 무게에 점차 사라지는 중입니다.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겠지요.
한 때는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네요.
가운데 탑주(塔柱)의 사면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남쪽 벽면에는 正光年間에 만들었다는 "爲亡夫侍中造像記"라는 글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죽은 남편을 애통해하며 조각으로 남긴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나마 죽은 남편을 위해 이렇게 울어 줄 사람이 있다는 일은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울어줄 사람조차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태어날 때 모두가 웃었고 혼자 울며 태어나지요.
그러나 죽을 때는 모두가 울고 혼자 웃어야 하는 데 반대로 하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이것은 북위에서 남긴 가장 후기에 속하는 것이라 하네요.
이제 제5 굴을 찾아갑니다.
5 굴은 위의 사진처럼 석벽이 중간에 없어져 계곡으로 되어 있어 건너편에 떨어져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석굴이 아닐까 흥분이 됩니다.
아마도 얼마 전까지 문표를 사고 길을 따라 들어오면 이곳으로 바로 연결되어
1 굴로 가서 보고 다시 온 모양입니다.
벌써 석굴 앞에는 예전처럼 석굴에 가로막을 설치하고 기둥을 세워 석굴로 들어가는 누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런 모습이 이곳 석굴 대부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석굴 앞으로는 4층으로 된 나무로 만든 목조 전각이 있습니다.
전면에는 나무로 된 4층 구조물은 청나라 순치 8년인 1651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네요.
이렇게 제5 굴과 제6 굴은 쌍둥이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벌써 범상치 않습니다.
앗! 부처님~
지금 보리수나무 아래 수양 중이시군요?
이거 어쩌나~
석굴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입구 양쪽으로 두 부처가 나무 아래 앉아 서로 얼굴을 반쯤 돌려
명상에 잠긴 모습이 채색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아래는 부처가 앉은자리가 무너질세라 야차인지 力士인지는 모르겠지만, 왼손을 들어 바치고 있습니다.
얼굴이 찌그러질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환장하겠어요.
그 위로 정신 사납게 치어리더처럼 춤추고 난리 치는 비천상인 압사라를 만들어 놓았네요.
지금 득도의 길로 들어서려는 부처를 방해하기 위해 위에서 춤을 추며 수양 중인 부처를 테스트하고 계신 거죠?
그렇죠? 맞죠?
저 부드럽고 유연한 허리 돌리기 춤에 대부분 남정네는 뿅~ 하며 간다고 하잖아요.
이게 득도의 길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가요?
나무로 만든 문으로 들어가려니 앞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석불이 있습니다.
얼마나 큰지 문이 높은 데도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아래에는 성인 남자의 머리만 보입니다.
그러니 좌대의 높이만 성인 키만 하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너무 크다 보니까 보이는 것은 손으로 저 모습은 선정인(禪定印)이라는 수인이 아닐까요?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으로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하여 단전(丹田) 앞에 놓고
왼손도 손바닥을 위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 말입니다.
이곳이 바로 대불동(大佛洞)이라고 하는 큰 부처가 모셔진 석굴입니다.
이름하야 대불동이라 붙인 이유가 바로 이 모습을 보고 붙이지 않았을까요?
워낙 공간이 좁아 카메라로 좌대부터 천장까지 잡는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큰 대불입니다.
그런데 부처 머리카락 색깔이 요즈음 신세대처럼 너무 컬러풀하여 야합 나이다.
이게 부처님 본래 머리 색깔이옵니까?
아니면 부처의 본심도 이렇게 겉멋을 부리는 겁니까?
부처님!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멋 부리려고 염색한 것과 같사옵니다. 그쵸?
수도하신다면서 유행의 첨단을 걸으시면 아니 돼 옵니다.
"이놈아~ 염색한다고 공부 못하냐? 한국의 중고생도 염색이 허용되었다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느냐?
쥐뿔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그렇군요? 그래도 머리에 자꾸 신경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득도를 위해 정진하는데...."
"시끄럽다 이놈아! 멋 좀 부렸다고 난리 치고 있어!"
득도의 길이 이리도 힘이 든단 말입니까?
요염한 자세로 하늘의 선녀가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수양하시는 거죠? 그쵸?
미풍에라도 흔들리는 선녀의 저 유연한 허리.
수양 버드나무가 저렇게 흔들리고 착착 감기잖아요.
날아다니면서도 두 손을 모아 득도의 길로 나아가려는 자세.
요즈음 한국의 젊은 샥시들이 TV에 나와 엉덩이만 흔들고 실룩거리기만 하며
아이돌이니 뭐니 하며 인기 끈다고 하던데 선녀도 그런 겁니까?
힌두교의 압사라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국으로 들어오며 비천상이 되었겠지요.
제5 굴은 대불동(大佛洞)이라는 곳입니다.
5 굴과 6 굴은 1조로 된 쌍굴 형태입니다.
역시 유행의 첨단을 걷는 부처를 모신 곳입니다.
어때요?
머리 염색이 엘레가아아~앙스하게 잘 나왔나요?
그 옆에 보이는 채색된 벽화도 아름답습니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러 색깔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석굴 안에 그린 그림이라 제법 세월이 흘렀어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17m 높이의 대형 부처상입니다.
좁은 공간에 17m나 되는 부처의 모습을 한 프레임 안에 모두 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군요.
그래도 앉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만약, 서기라도 하면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입니다.
이런 석굴을 판다는 그 자체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요?
굴을 파고 들어와 안에다가 이런 조각을 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 석불은 윈강석굴에 있는 가장 크다는 대불 중 하나에 속할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석불이 아니고 진흙으로 만든 조소 불로 보입니다.
게다가 채색까지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석불이었으나 당나라 때 다시 리모델링하며 조소불로 만들며 이렇게 색을 입혔다 하네요.
아무튼 당나라 사람들은 색칠하기를 좋아했나 봅니다.
거의 가슴까지 올린 바지춤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황금색이 살아있습니다.
부처는 같은 부처지만, 나라와 시대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의 부처가 나오기도 하나 봅니다.
제5 굴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곳을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제 본격적인 석굴이 나타나고 제일 먼저 보이는 석굴이 윈강석굴 중
가장 화려하다는 제6 굴입니다.
이런 곳은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보아야 할 텐데...
우리 같은 뜨내기 여행자는 그냥 겉모습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점차 윈강석굴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네요.
바로 그 옆방이 제6 굴입니다.
5 굴과 6 굴은 이렇게 서로 나란히 있는 다정한 이웃집입니다.
그야말로 땅콩집처럼 쌍둥이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내부 인테리어는 전혀 같지 않고 다른 곳이지요.
어디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옴마야~ 이미 대단한 모습에 압도당해버렸습니다.
약 5m 정도의 부처가 서 있는 모습으로 맞이합니다.
제6 굴을 윈강제1위관(云岗第一偉觀)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모습입니다.
어때요?
정말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석굴을 파낼 때 가운데는 수투파처럼 탑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둥글게 파내어 마치 진흙으로 또는 목각 조각을
연상할 정도로 세밀하게 새겨놓았습니다.
가운데 탑 모양은 2층으로 나뉘어 있고 그 높이가 15m나 됩니다.
위층은 4면에 1 입불과 양쪽으로 2 보살이 있습니다.
아래층에는 좌불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주변의 벽을 따라 원을 그리듯 입불이 11 존이나 계십니다.
그냥 앉아서 관광객을 맞으셔도 될 텐데 왜 서 계시나 모르겠습니다.
공연히 피곤하게 해 드린 것은 아닌가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6 굴은 석가불동(釋迦佛洞)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여러 가지의 손과 머리가 많은 천상의 신들이 동물을 탄 모습으로 천장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힌두교의 모든 신은 자기만의 탈 것이 있지요.
파괴의 신 시바는 흰 소 난디를, 유지의 신 비쉬누는 가루다를, 천둥과 번개와 비를 관장하는 인드라는
아이라바타라는 머리 둘 달린 코끼리를, 그리고 창조의 신이라는 브라흐마는 우아한 백조를 타고 다녔답니다.
부처가 비쉬누의 화신이라 했으니 가루다를 풀 옵션으로 렌트해 타고 다녀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사찰의 지붕에는 가루다로 생각되는 금시조를 올려놓았나 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석벽에는 석가모니가 불심을 전하기 위한 고사에 얽힌 이야기가
30여 점이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탄생에서부터 출가한 모습, 수행하는 모습 등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장면이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볼 수 있습니다.
내부가 너무 어두워 불을 밝혀놓았지만...
이렇게 민초를 대접하는 부처도 많지 않습니다.
요즈음 일부 성직자조차도 민초 보기를 물로 보는데...
어떤 성직자는 남의 얼굴을 보고 흉을 보더군요.
원래 생긴 모습은 흉을 보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성직자는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지도 않고 사나 봅니다.
구도자는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성불하시겠어요?
자기 마음에 남은 작은 미움조차 씻어버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남의 미움을 씻어준다고 높은 좌대에 오르십니까?
높은 좌대는 부처나 예수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왜 낮은 곳에 임하여 민초를 섬겨야지 지들이 높은 곳에 오르지요?
높은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냉큼 올라앉는다는 의미는 대접받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오기 장군의 연저지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허준 선생도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다잖아요.
구도자란 이런 낮은 자세가 바람직한 게 아닌가요?
세상의 순리는 성직자가 민초를 걱정해야 하는데 요즈음 뉴스에 오르내리는 여러 일을 바라보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정말 세상이 어찌 된 일인지 무지렁이 민초가 성직자를 걱정하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부처의 마음으로 남의 얼굴을 바라보면 모두가 부처의 모습만 보인다는 옛말이 생각나지도 않나 봅니다.
마음에 그런 아수라를 가득 담아두시고 언제 성불하시겠습니까?
요즈음 구도자는 평생 신을 모셨기에 나중에 죽어서 좋은 극락으로 들어가는 표를 예매했다는 생각에 그럴까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세상이면 더 좋겠습니다.
제6 굴은 석가불동(釋迦佛洞)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가지가지의 손과 머리가 많은 천상의 신들이 동물을 탄 모습으로 천장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앞에 유리로 조각을 보호한다고 막아두어 사진 찍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가 불심을 전하기 위한 고사에 얽힌 이야기가
30여 점이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탄생에서부터 출가하는 모습, 수행하는 모습 등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장면이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며 볼 수
있는데 실내가 너무 어둡습니다.
어둡다 보니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니 많이 흔들려 죄송합니다.
아무리 숨을 참으며 멈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을 아니군요.
佳人은 술을 먹지 않기에 아직 수전증도 없걸랑요.
단순하면서도 알기 쉬운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에 정통하면 말입니다.
佳人에는 단순하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조각입니다.
이는 동방에서는 새로이 보는 간다라식 불교예술이라 하네요.
그리고 현존하는 불교예술로는 희귀한 것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불교가 처음 전해지는 시기라 인도의 전통적인 기법이 많이 적용되었지 싶습니다.
그 옆에 있는 탑의 기둥은 높이가 무려 15m에 이른다 합니다.
중국은 이미 옛날부터 이렇게 크게 만드는 것을 취미로 삼았나 봅니다.
중심 탑의 기둥을 따라 벽에는 부처님의 탄생으로부터 득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18개의 성불도(成佛圖)가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앗!
잠시만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가운데 제일 크게 찍어달라고 폼 잡고 있는 저 조각 말입니다.
저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佳人은 순간적으로 감전이나 된 듯 숨이 멎어버렸습니다.
위의 사진 중앙의 보살은 마치 요즈음 인기 있다는 대한민국 걸그룹의 춤 자세를 보는 듯합니다.
가녀린 허리...
그리고 볼륨감 있는 엉덩이를 약간 옆으로 돌려 왼손을 살짝 걸친 모습과 오른손은 위로 올리고...
오만한 듯 살짝 내리깐 눈에 오뚝한 콧날...
마치 천상의 세상에 있는 편안한 얼굴...
입고 있는 옷마저도 요즈음 최신 유행하는 빈티지 스타일...
저러면서 한 손으로 자기 엉덩이를 툭툭 때리며 흔들거리면 우리의 희망인 덜수아찌는
숨소리도 거칠어지며 숨넘어가지요.
저 모습을 바라보는 佳人도 오늘 숨넘어갑니다.
그게 뭐 한류의 기본이라나요?
저런 자세로 건들거리며 자기 엉덩이 툭툭 치면 세상의 많은 젊은이를 단칼에 뻑 소리 나게 보낸다면서요?
정말로 엉덩이 툭툭 친다고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겁니다.
저요?
한참 동안 이 모습을 바라보며 무아의 경지에 몰입했습니다.
숨이 멎는지 알았다니까요.
중국사람들이 또 한류의 뿌리는 이곳에서 시작했다고 하겠어요.
특히 제6 굴은 밝은 붉은색과 천연의 산호바다와 같이 투명한 푸른색이 화려한 황금색과 어울려 인간세상이 아닌
천상의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비록, 세월의 흐름에 채색한 부분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원래의 색깔을 마음에 담고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겠어요?
바닥에서부터 천장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소홀함이 없이 장인의 손길이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술의 문외한이라도 이곳에 서면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옆의 제5 굴은 운강석굴에서 가장 큰 17m 높이의 불상이 버티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곳에 서면 크기에 밀려 압도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냥 바라만 봐도 무료로 득도의 길로 접어든 듯...
이제 구름만 불러 타고 다니는 기술만 터득하면 바로 신선 면허증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면허증도 따고 풀 옵션으로 자가용 구름 하나 뽑을까요?
그러나 감시원이 안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지 못하게 제지하고 있네요.
내부가 어두워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찍기도 흔들림 때문에 어렵습니다.
아무리 숨을 멈춘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가 몇 초간 정지상태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는 일은
佳人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진이 많이 흔들려 선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플래시를 터뜨리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 일이겠지만, 어디 허용하면 말을 듣겠어요?
감시원이 지키고 있어도 중국 관광객은 여기저기서 플래시를 계속 터뜨리는군요.
그러나 우리 부부는 나중에 다시 걸어 내려오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또 들어갔을 때는 구경하는 사람이 없어
지키는 사람도 어디로 가고 없기에 플래시 없이 사진을 몇 장 몰래 찍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흔들려서 대부분의 사진은 버려야 했네요.
흔들린 사진을 보시느라 어지러우시죠?
이런 곳에 오면 종교가 없더라도 온종일이라도 이 석굴만 보아도 좋겠습니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음 석굴로 가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모든 것은 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꿈부터 가져야 하겠습니다.
꿈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첫걸음입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갑니다.
그러나 정신없이 사는 佳人 같은 사람은 꿈만 꾼다고 잠만 자다 보면 비만의 원인이 됩니다.
꿈조차 쉽게 꾸지 못하는 佳人도 이렇게 돌아다니며 구경합니다.
자! 용기를 내어 배낭부터 꾸립시다.
그게 자유여행의 첫걸음이자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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