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8.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入佛知見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열고(開), 보여서(示), 깨닫게(悟) 하신 다음 들어가게(入) 하셔서
부처의 지혜를 배우라는 말이 아닐까요?
이미 문을 통과했으니 시작이 반이라고 지혜의 반은 이제 배운 듯합니다.
그러니 지금 佳人은 속세에서 부처의 세상으로 발을 들이민 셈입니다.
이미 佳人의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입니다.
저기 나뭇가지 너머로 미소를 머금은 부처가 佳人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네요.
지금 부처와 佳人의 만남은 이미 1500년 전에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처음 석불을 만든 사람은 1500년 후 佳人과의 만남을 알고 있었고 또 여러분께서
佳人이 올린 사진과 여행기를 통해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연이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예정되어 있기에 운명적으로 만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문을 통과하면 처음 보이는 풍경입니다.
너무 황량하고 훼손이 많이 되었습니다.
훼손이 되었다기 보다는 원래 이런 곳에 석굴을 파고 부처를 모셨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지 싶은데 오늘부터 이곳의 석굴을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아주 자세히
하나씩 묻고 따져가며 살펴보렵니다.
그 이유는 佳人처럼 돌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1 굴부터 차례로 살펴보렵니다.
이야기는 佳人이 하지만, 느낌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예전에는 6 굴로 바로 길이 이어졌다 합니다.
이 말은 세월이 흐르며 처음 모습과는 달리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이겠지요.
1 굴은 석고동(石鼓洞)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 굴과 2굴이 같이 있기에 쌍굴로 되어 있습니다.
굴 입구 양쪽에 사각의 탑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 굴 오른쪽에는 청나라 시인인 주정한(朱廷翰) 이란 사람이 '유운강석불사시
(遊雲岡石佛寺詩)'라는 시를 남겼다 하지만, 지금 佳人이 글을 남기면
낙서를 남겼다 합니다.
세상 일이 모두 그렇습니다.
석굴 내부는 장방형으로 가운데 탑이 있습니다.
탑은 상하로 나뉘어 두 개의 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탑의 정상부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미산을 의미합니다.
티베트의 카일라스를 수미산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답니다.
힌두교에서는 메루산이라고도 하던가요?
숲이 우거진 속에서 수행하는 신선도 보이고 동물도 보이는데 위의 사진에서 숲 속에서
수도하는 구도자가 보였다면 이미 여러분은 성불로 한걸음 성큼 다가서신 겁니다.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게 아직 예전에 채색한 모습이 약간은 남아 있습니다.
수미산이라고 보이는 정상에는 아직도 화려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때요?
연꽃 문양의 천정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지금 많이 훼손되었는데 이 정도라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을까요?
북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조각으로 남아 있네요.
조명시설도 없고 내부는 무척 컴컴합니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색의 변화가 올뿐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유적의 채색이
변화될지 몰라 그냥 찍었는데 이곳은 마치 버린 자식처럼 아무도 없고
찾는 사람 조차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석고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곳이 명, 청 시대에 윈강의 팔경 중
하나에 속하였기에 이곳에 있는 석고한천(石鼓寒泉)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합니다.
석벽을 파내어 벽감을 만들어 그 안에 부처를 조각하였네요.
2 굴의 탑의 모양은 1 굴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3층으로 만들어졌네요.
조금 더 훼손이 많이 되었고 탑 위의 수미산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이 심각합니다.
지붕은 기와 문양으로 만들고 기둥은 목조건물처럼 만들었습니다.
제일 아래는 공양하는 사람을 조각하였네요.
2 굴의 이름은 한천동(寒泉洞)이라 이름 지어졌네요.
석고한천이라는 말을 두 개의 쌍굴에 반으로 나누어 석고동과 한천동으로 이름을 지었네요.
이곳은 예전에 굴 아래로 차가운 샘이 지나가기에 그렇게 이름 지었다 합니다.
1. 2 굴은 요나라 시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호국사라는 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오른쪽 벽 아래에는 전사철고(箭射鐵鼓)라고 부처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새겨놓았다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굴의 외부 서쪽에 산수유청음(山水有淸音)과 운심처(雲深處)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름이 늘 많이 끼는 곳인가 보네요.
북쪽에는 석가모니 좌불이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너무 많이 훼손되어 알아보기 어렵네요.
이제 3 굴로 갑니다.
3 굴은 조금 떨어져 있기에 잠시 걸어가야 합니다.
이곳은 워낙 훼손도 심하고 아름답지 않기에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곳입니다.
원래 깃발부대가 가지 않는 곳은 크게 볼 게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제법 멀리 떨어진 이유는 바로 3굴과 2굴 사이에 있는 석벽이
위의 사진처럼 석굴을 파고 조각할 수 없는 불량 암벽입니다.
그러니 벽감을 만들기 위해 파고 들어가도 내내 부서지는 구조라 금세 훼손되기 때문이겠지요.
원료가 부실하면 만든다 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잖아요.
길을 가다 보면 이렇게 바위 아래서 샘이 솟아 흐르는 물길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단단한 곳이라도 이렇게 부드러운 물이 흐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긴다 하잖아요.
이 가느다란 물길도 담요가 석굴을 파다 석공이 목이 마르다고 하자 손가락으로
주욱~긁어서 생겼다 하지 왜 그런 전설을 만들지 않았나 모르겠어요?
오늘은 중국 사람들이 순진하네요.
제3 굴은 영암사동(靈岩寺洞)이라 하네요.
영암사라 하면 바로 윈강석굴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곳에 만든 절 이름이 아닙니까?
지금은 들어오는 곳에 호수를 만들고 그 호수 위에 절을 올리고 영암사라 했잖아요.
제3 굴은 윈강석굴 중 가장 크고 그나마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이는 곳입니다.
그 높이가 25m 지름이 50m의 초대형 석굴로 마치 연립주택처럼 보입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실내체육관 수준이 아니겠어요?
이 안에서 축구는 곤란해도 농구나 배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키시는 51.000개의 불상이 달밤에는
이곳에 모여 체조라도 하지 않을까요?
처음 설계부터 대형 탑묘굴(塔廟窟)로 만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북위 시대에는 완성하지 못한 곳이라 하는데 지금은 석벽만 남아 있지만,
처음 만들 때는 동굴 벽 앞쪽에 누각을 만들어 제대로 절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하는데 위의 사진에 보듯이 제일 위에 가지런히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은 나무로
횡목을 끼워 넣어 서까래나 이런 것을 만들어 밖으로 지붕을 내어 만들었을 듯합니다.
12개의 구멍이 남아 있어 그곳에 횡목을 끼워 밖으로 내어 그 나무에 기둥을 세웠을 겁니다.
佳人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너무 저를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위의 사진을 보시면 제일 위에 석벽에 일정한 간격과 크기로 만든
구멍을 보실 수 있으실 건데 이는 바로 12개의 처마와 기둥으로 연결된
11 간이나 되는 무척 큰 사찰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층을 보시면 양쪽과 가운데로 탑이 보이실 겁니다.
비록, 많이 부서졌지만 말입니다.
탑 사이에는 각각 창문이 있습니다.
이 창문은 어두운 실내에 어느 정도 빛이 들어가게 한 지혜라 봐야 할 겁니다.
넓은 곳이라 만약 창이 없었다면 안에는 무척 어두웠을 겁니다.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척 어둡습니다.
허리를 숙일 정도로 낮게 만들었네요.
이런 곳이기에 깃발을 앞세운 그 많은 사람이 이곳은 전혀 찾지 않네요.
부처를 만나기 위해 허리부터 숙이는 것을 배우라고 하나 봅니다.
앗! 누가 저기서 곁눈으로 우리 부부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손을 들어 "하이~" 하며 반겨줍니다.
이 층에 뚫어놓은 석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한 줄기 빛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으로 보이네요.
어쩌면 이런 지혜를....
안이 고요하니 佳人 마음 또한 고요하여라~
부처의 얼굴이 밝으니 佳人 얼굴 또한 밝아라~
작은 석창 하나로 부처의 얼굴마저 밝게 빛나는구나!
가까이 다가오라 합니다.
보세요.
아무리 어두운 곳일지라도 얼굴은 위에 뚫린 창을 통하여 들어온 빛으로 말미암아
불을 켠 듯 밝은데 이게 바로 자연 채광을 이용한 신비 마케팅이 아니겠어요?
요즈음 중국이 잘하는 게 공연이 있습니다.
인건비 싸다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을 동원하고 특히 여자 대부분은
거의 반라로 벗겨서 말입니다.
그다음 하는 게 바로 조명입니다.
그게 대부분의 조명 장난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도 연출하고 비싼 입장료를 챙기죠.
그래서 우리 부부의 여행기에는 그런 곳을 가지 않아 공연 정보가 없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에 무슨 감동을 하고 물 뿌리고 연기 피우는데
환상적이라 생각이 들까요?
그냥 서커스적인 요소를 가미한 쇼에 불과하지 감동까지는 주지 못하기에
그런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가지 않습니다.
어찌 다채로운 색깔만 아름답다 하시렵니까?
번쩍이는 조명만 화려하다 하시렵니까?
왜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리만 웅장하다 하시렵니까?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장관이라 생각하시렵니까?
여기처럼 아무 색깔도 없이 그냥 아무 곳에서나 굴러다니는 돌 색깔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는 아주 작은 한 줄기 빛과 그리고 앉아있는 석불과
숨소리 외에는 세상이 모두 잠든 듯 고요함도 우리에게 충분히 감동을 주고 세상에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에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감동이 무엇인지도 알려 주는데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라 여겨집니다.
주존의 높이는 10m이며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의자에 앉았다 함은 이 부처를 만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우리처럼 좌식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게 만들어졌네요.
사실 부처는 수행 중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었을 텐데...
양쪽에 서 있는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왼편에 서 있는 보살의 아랫배가 그만...
자세히 보니 우리가 흔히 인간적으로 말하는 똥배라고 하는 복부비만이 맞네요.
1.500년 전의 눈으로는 북위를 보았고 세월의 흐르며 수, 당까지도 바라보았을 겁니다.
아니...
멀리 지금의 신중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佳人이 이곳을 찾아와 1500년 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연이란 언젠가 만날 인연은 시공을 초월해 만나게 되어 있기에
우리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
佳人의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네.. 언젠가 여러분은 佳人과 만날 인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10년 후가 될지 1.000년 후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기에 우리 인연은 소중히 생각해야 하지요.
가운데 주존의 조각은 미륵으로 의자에 앉은 자세로 한 게 특이합니다.
우리의 좌식문화와 다른 민족이라 부처도 의자에 앉게 했나 봅니다.
손을 들어 어두컴컴한 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듯하네요.
사실 이곳은 찾는 이가 별로 없어 무척 심심하게 지내셨을 겁니다.
양쪽의 보살마저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얹고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의미인가요?
북위 사람들의 인사법이 바로 저런 손모양이지요.
윈강석굴에 가시면 이곳도 들려보세요.
그냥 가시면 얼마나 섭섭해하겠어요?
굴 안의 주상 좌우로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있는 굴이 또 있습니다.
그 안의 북벽에는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지만, 너무 어두워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정말 고대 조각문화의 예술적 표현을 함축한 모습입니다.
처음 만들 때는 눈에다 보석이라도 끼웠을 듯하지 않습니까?
움직이지 않는 돌조각이지만, 이렇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술작품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는데 소매의 찰랑거리는 옷자락이 스치는 작은 바람 소리마저 들리는 듯합니다.
자연채광의 신비함도 함께 말입니다.
아닌가요?
佳人의 바짓 자락 스치는 소리였습니까?
이런... 벌써 佳人이 이렇게 훌쩍 성숙해졌나 봅니다.
석불을 보고 소리를 듣고 눈의 표정을 읽고 생각마저 알아버렸으니 우짜면 좋겠습니까?
정말 환장하겠습니다.
이래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쪽에 있는 석굴은 후기에 만든 것이라 했지만, 높이가 낮아 바로 사람의
손을 탈 수 있고 바위의 재질이 다른 곳보다 무른 곳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곳은 석벽의 재질이 사암으로 이루어졌다 하네요.
그러니 부조를 파는데 화강암이나 단단한 돌보다 힘이 덜 들지 않았을까요?
그 대신 너무 무르기에 흐르는 세월에 빨리 마모되고 사라지나 봅니다.
대체로 훼손되고 세월의 흐름에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지만,
꼭대기에는 창을 만들어 저녁에 지는 석양이 이곳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오면
그 오묘한 빛이 부처의 얼굴을 비추게 되고 그러면 온화한 그 모습에 누구나
신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설마 습도 조절이나 환기를 위해 뚫었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요?
이런 곳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시간에 들려야 하지만...
가슴과 몸에 난 작은 구멍은 무엇일까요?
그 구멍은 장식을 끼워 넣기 위해 파 놓은 것일까요?
처음 만들 때의 모습이 세월이 흐르며 나타나는 게 아니며 보수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너무 아픈 이야기만 듣고 계셔서 가슴이 아파 침이라도 맞으셨을까요?
아마도 그 위에 장식을 위해 덧붙여 놓았던 것이 세월이 지나며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닐까요?
부처님!
佳人이 "호~"하고 불어 드릴까요? 아니면 밴드라도 붙여드릴까요.
그리고 "佳人 손이 약손이다~"하며 문질러 드릴까요?
내일도 컴컴한 석굴 속으로 탐험에 나서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상대는 이 세상에 흔한 게 아닙니다.
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구도자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정말 안 되는 일입니다.
구도자가 자기 마음과 다르다고 남을 비난하고 독설까지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오늘 이곳에 그동안 미워했던 모든 것을 살포시 내려놓고 가렵니다.
'중국 여행기 > 산서성(山西省)' 카테고리의 다른 글
佳人은 얼마나 내려놓아야 합니까? (0) | 2012.02.21 |
---|---|
세상이 모두 부처입니다. (0) | 2012.02.20 |
어느 가을날의 윈강스쿠(云岗石窟 :운강석굴). (0) | 2012.02.17 |
시내버스로 운강석굴 찾아가기. (0) | 2012.02.16 |
다통(大同 : 대동) 구룡벽 (0) | 2012.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