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人은 얼마나 내려놓아야 합니까?

2012. 2. 21.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위의 사진에서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가 느껴지십니까?

느껴지셨다면 이제 거의 성불의 문턱을 넘어서고 계십니다.

느껴지지 않으셨다면 佳人과 함께 조금 더 구경하셔야 합니다.

이제 발걸음으로 옮겨 제7 굴로 갑니다.

 

제7 굴은 서래제일불동(西來第一佛洞)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네요.

제7 굴과 제8 굴은 윈강석굴 중 제일 먼저 만든 쌍굴이라네요.

쌍굴이라고 하니 이상합니다.

고속도로에 있는 상행, 하행선의 쌍굴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쵸?

 

장방형으로 전실과 후실로 되어 있습니다.

주실은 평평한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새겨진 조각은 중국과 서방의 양식이 혼합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시기에 동서양이 서로 예술적으로 교류가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 않겠어요?

창문 양쪽으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양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너무 많은 부처를 본 탓인지 울 마눌님의 얼굴마저 부처의 얼굴로 보입니다. 헐!

아~ 이제 佳人도 성불의 문턱을 넘어서려나 봅니다.

사람이 부처로 보이면 더 수양의 길로 들어설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이제 佳人은 하산해도 될 것 같습니다.

득도의 길이 이렇게 쉬울 줄이야~

어제부터 佳人이 왜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곳을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면 또 중국의 삐끼를 만나게 될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득도고 나발이고 부처로 보였던 얼굴은 모두 춘삼월 봄 눈 녹듯 사라지고

佳人은 다시 아귀가 되어 허우적거리고 살아갈 겁니다.

우짜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살아 언제 성불하겠습니까?

佳人의 마음속에는 선신이라는 데바와 악신인 아수라가 함께 살고 있기에 그때그때 달라지나 봅니다.

 

세월이 흐르니 부처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려고 합니다.

비슈누가 부처의 몸으로 현세에 나타나 1 칼파(겁)의 세월이 흐르면 부처는 위의 사진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구원자인 백마 탄 초인이 도래한다고 했습니까?

오늘 지금껏 살아오며 짊어지고 온 탐욕의 한 덩어리를 이곳에 내려놓으렵니다.

자꾸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언젠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갈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곳을 벗어나며 또 다른 욕심의 등짐을 짊어질지언정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가운데 앉아있고 그 옆으로 다보여래가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 모양이 양쪽의 다보여래는 같은 모습이고 가운데 석가모니는 우리의 양반다리처럼 X자로 했네요.

우리의 불교예술과 가장 많이 다른 게 얼굴보다는 다리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들은 걸상에 앉은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좌식문화와는 달리 입식문화였나 봅니다.

 

그런데 다보여래는 따라쟁이인가 봐요.

오른손을 들어 석가모니와 같은 자세를 취하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자세만 따라 해도 성불한다면 세상에 그처럼 쉬운 일은 없을 거예요. 그쵸?

 

그 옆에 있는 제8 굴로 갑니다.

8 굴은 불뢰동(佛賴洞)이라 부른답니다.

혹시 부처의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답니까?

모두 귀를 기울여볼까요?

귀가 있는 자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런 소리를 들을 수 귀를 지닌 사람은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여기는 많이 훼손되었네요.

이곳에도 옆집에서 석가모니를 따라 한 다보여래처럼 또 오른손을 들어 고개를 괴려고 합니다.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가려먹어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봅니다.

 

출입문 서쪽에 공작새 위에 쿠마라가 앉아 있는 모습이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쿠마라는 머리가 다섯이고 손을 여섯 개로 나타냈습니다.

공작새를 타고 있기에 힌두교의 시바신과 그의 아내인 히말라야산의 딸이라는 파르바티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라 한다네요.

 

곱슬머리에 어린아이의 동안으로 손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원반을 들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 손은 산비둘기를 들어 가슴에 대고 있네요.  

이 모습은 서쪽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불교라는 종교는 힌두교의 비슈누가 부처로 환생해 아수라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현재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나타난 모습이라고 하지요.

그리스 신화처럼 힌두교의 신화 또한 무지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칼파(우리가 아는 겁이라는 시간 단위)라는 시간 단위로 변신을 하며 세상을 구하다고 하네요.

 

여기에는 없지만, 시바의 아들로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라고 있습니다.

무척 많은 사람이 공경하는 지혜와 학문의 신이라 하지요.

잠시 이들 관계를 알아보고 갈까요?

 

힌두교의 여러 신 중 대빵이라는 시바가 오래 집을 비우다 돌아와 보니...

어멈! 자기 마누라인 파르바티와 한 방에 웬 사내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한칼에 그 사내의 머리를 잘랐답니다.

그러나 바로 자신이 목을 친 사내가 장성한 자기 아들임을 알고 놀라서 마당에 얼쩡거리던 코끼리 머리를 잘라

아들 목에 붙여놓았답니다.

그게 바로 코끼리 머리를 한 시바의 아들 가네샤라네요.

 

엄마와 한방에 있다가 한 방에 머리가 날아간 슬픈 청년의 이야기는 사족입니다.

신일지라도 사랑에 눈이 멀어 투기도 하고 별짓 다했어요.

파괴의 신이라는 시바가 실컷 밖으로 돌아다니며 바람만 피우다가 아들이 훌쩍 커버린 것도 모르고...

그럼 그곳에 얼쩡거렸던 코끼리는 어찌 되었을까요?

지 아들 살린다고 코끼리만 너무 불쌍하잖아요.

 

출입문 양쪽 조금 아래를 보면 황소를 탄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덟이나 되는 기형적인 모습의 신이 있습니다.

대자재천이라 부르는 Mahesvara입니다.

머리에 천관(天冠)을 쓰고 있으며 부라만 교에서 섬기는 신이라는군요.

창조주이며 이 신이 즐거우면 세상이 즐겁고 이 신이 화를 내면 중생이 고달프다고 합니다.

 

힌두교의 시바와 같은 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바는 힌두교의 삼 신 중 한 성질 하는 신으로 세상이 혼탁해지면 파괴를 한다 했나요?

시바가 난디라는 흰 소를 타고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니까요.

그래서 인도에 가면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소를 시바와 연관해 숭배한다 했나요?

 

보름달처럼 동그란 얼굴에 한 손으로 다른 얼굴을 잡고 있고 나머지 손으로는 달과 해를 잡고 있네요.

나머지 손으로는 활과 화살을 잡고 있습니다.

 원래 인도에서 온 신으로 여러 머리와 손을 지니고 있지요.

지금으로 치면 이게 기형적인 모습으로 샴쌍둥이도 아니고...

잘못된 출생이지만, 옛날에는 신이라 폼을 잡았나 보네요.

좌우지간 윈강석굴에서는 유일하게 새겨진 조각입니다.

 

이런 형태의 모습은 힌두교에서 온 것으로 비슈누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힌두 신화에 나오는 우주 탄생에 보면 위의 사진에 보듯이 우주 창조를 마친 비슈누 신이 너무 힘이 들어 물 위에

떠 있는 아난타라는 뱀 등어리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쉬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의미하는 황금 연꽃이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자라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래서 애들이 배꼽에서 태어난다 했나요?

 

왜 신들은 자기 힘으로 걷거나 쉬지 않고 대체로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을 타고 다니나 모르겠어요.

그게 신의 세계에서는 유행인가 봅니다.

머리가 둘 달린 코끼리 아이라바타, 난디나 가루다, 백조도 있고...

佳人도 가루다 한 마리 풀 옵션으로 뽑아 타고 다니고 싶습니다.

 

이제 제9 굴로 가보렵니다.

9 굴의 위를 보면 나무를 끼워 횡목을 설치했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이 굴 앞으로는 멋진 누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런데 이 많은 석불을 보고 이 석불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석불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여행을 접어야 할 때입니다.

하긴 1500년 전의 석불을 처음 만나며 부처가 佳人을 모르는데 어찌 佳人이 부처를 모두 기억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냥 모두 석불입니다.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또 머리를 쥐어짜며 찾아보렵니다.

 

제9 굴은 입구부터 요란합니다.

아주 중국 틱 하게 호화찬란하군요?

물론,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았습니다.

채색이 아름다움을 더 하지요?

 

들어가는 문 위로 패방처럼 지붕도 조각하고 그 위로 용머리와 금시조까지...

금시조가 등장했다면 힌두교에서 말하는 용을 잡아먹는 거대한 새 가루다이기에 비슈누의 자가용이지요.

비슈누가 부처로 환생했다고 하니 부처의 자가용인 셈입니까?

 

어쭈구리? 채색까지 하며 제법 멋을 한껏 부렸네요.

상인방에는 문당호대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당호대 위로는 플라잉 압사라도 있고요.

그러니 힌두교의 비슈누에서 부처로 넘어오는 과정의 모습으로 짬뽕으로 만든 모양새입니다.

물론, 플라잉 압사라를 불교에서는 비천상으로 표현하겠지만요.

 

마치 중국의 공연 모습이 얼른 떠오릅니다.

중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받고 공연을 하더군요.

지붕도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습니다.

압사라가 아주 니나노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네요.

 

제9 굴은 아촉불동(阿閦佛)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Aksokhya라 하며 동방 정토를 주재하는 불타라 하네요.

정말 환장하게 화려하지 않습니까?

이 죽일 놈의 화려함...

고개가 부러져라 올려다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화려하게 새겼을까요?

 

제9 굴에서 13 굴까지를 흔히 오화동(五華洞)이라 부른다네요.

그 이유는 후기에 다시 재단장을 하여 화려하게 꾸몄기 때문이랍니다.

이 석굴은 북위의 효문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의 불교예술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랍니다.

뭐... 여기 한 곳만 찬찬히 살펴보아도 온종일 보며 이야기를 쓸 수 있겠어요.

 

제9 굴은 제10 굴과 한 짝으로 예술적으로는 한나라풍으로 꾸며졌답니다.

중국풍이 농후해지며 민족화로 이어지는 특색을 지녔다 합니다.

입구 기둥에 조각된 천 개의 부처가 새겨져 있고 사자와 코끼리도 보입니다.

 

입구 모양이 전형적인 중국형의 예술형태라네요.

문의 양쪽은 벽감 형태로 대칭되게 만들었으며 그 형식이 중국과 서구의 혼합된 형식으로 생각됩니다.

벽으로도 벽감을 이용하여 조각하였으며 지붕에는 연화 문양과 비천상이라고 할 수 있

압사라가 날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플라잉 압사라를 찾으셨나요?

아주 허리가 꺾어지도록 유연하게 붕붕 날아다니는 비천이 바로 압사라가 아니겠어요?

천장에 손을 올려 대들보를 바치는 역사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새마을 체조하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위의 사진은 유해 교반의 설화가 있는 앙코르 와트의 사진입니다.

압사라는 힌두교의 유해 교반 설화를 보면 천 년간 우유의 바다를 저으며 생긴 일종의 치어리더라 봐야 할 겁니다.

아수라(악신)와 데바(선신)가 비슈누의 제안에 따라 생명수라는 암리타를 얻기 위해

젖의 바다(乳海)를 천 년간이나 젖는(攪拌) 사진에서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가 느껴지십니까?

 

사실 감로수라는 암리타를 만들려고 하다가 부산물로 생긴 게 압사라라는 천상의 선녀랍니다.

사진 상단에 양쪽으로 니나노 판을 벌리고 있는 게 바로 오리지널 압사라입니다.

혹시 그 과정을 더 자세히 보시려면

http://blog.daum.net/nhk2375/7161010

 

앙코르 왓-유해 교반(젖의 바다 휘젓기)

힌두교 설화 중 유해 교반이라는 게 있다. 힌두교 창조설화인 젖의 바다 휘젓기를 한문으로 이야기하면 유해 교반(乳海攪拌)이고 영어로 말하면? The Churning of the Sea of Milk라고 설명되어 있다. 좌

blog.daum.net

클릭하시면 더 구체적으로 유해 교반 설화와 압사라를 만나실 수 있겠네요.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사진에는 두 명씩 두 군데만 출연했지만 모두 여덟 명의 야차가 대들보를 한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보이는군요.

 

저러고 천 년을 넘는 세월 동한 대들보를 받들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언뜻 보기에는 마치 야차의 모습이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발레리나 같습니다. 그려~

국민 체조하는 모습인가요?

흥에 겨워 춤이라도 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처님~"

"왜 불러~"

"야차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인제 그만 손을 내려놓으라 하시지요? 얼마나 더 저러고 있어야 합니까?"

"그럼 佳人아! 네가 저곳에 올라가 지붕을 받치고 있을껴?"

"아니요~ 야차는 저러고 있어도 되걸랑요. 그러면 우리의 호프인 덜수를 불러오면 어떨까요?

안녕히 계세요~ 佳人은 그만 가겠습니다."

 

후실인 북쪽 벽에는 이곳의 주 이미지인 석가모니가 보입니다.

그리고 동쪽 벽과 서쪽 벽에는 시중드는 보살의 모습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좌대 아래를 보시면 다리 양쪽으로 권위의 상징이라는 사자가 보입니다.

이때부터 사자는 황실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키웠나 봅니다.

부처가 이미 인도를 떠나 중국화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지금까지 북위 때 만든 부처는 당당한 체격이었는데 이곳의 부처는 조금 야윈 듯한 모습입니다.

제일 아랫단에는 나무와 동물의 모습도 보이시죠?

 

정말 佳人도 이제 짐을 내려놓은 때가 되었습니다.

佳人은 얼마나 내려놓아야 합니까?

얼마만 지고 남은 길을 가야 합니까?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동안 움켜만 쥐려고 했던 佳人의 삶이 창피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이제 佳人도 무거운 탐욕을 내려놓을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내려놓아야만 합니까? 얼마만 지고 남은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때 짐이 없어야 더 편안한 안식이 아니겠습니까?"

 

"이놈아! 네가 그걸 알면 내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럼 네가 부처해라~"

"안녕히 계세요. 정말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 너무 많은 부처를 만났습니다.

평생을 살며 오늘처럼 많은 부처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돌아 나오며 佳人이 만나는 많은 사람이 모두 부처로 보입니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 부처의 세상으로 보이는데 더 이상의 무슨 깨달음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제 佳人도 하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신선의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부처를 섬기는 어떤 사람은 왜 세상이 부처로 보이지 않을까요?

마음속에 아직도 한 조각 속세의 탐욕이 남아 있어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