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통은 역시나 역사의 고장이네요.

2012. 2. 6.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다통은 오래된 고대 도시라네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게 번데기 앞에 주름잡기라지만,

여기는 조금 다르다네요.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뤄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다퉁은

최전성기를 맞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한 후 불교를 국교로 정하며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라는 윈강석굴

(云岗石窟 : 운강석굴)을 만들었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10대 건물 중 하나라는 현공사가 있고

목탑사나 구룡벽이 있어 예스러움이 묻어나며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예쁜 도시가 이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저녁은 도삭면이라는 것을 먹어보기로 합니다.

산서성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유명하고 그중에서도 도삭면이라는 게 유명하다 합니다.

그런데 어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로봇 태권 브이가 아닙니까?

얘가 여기 웬일입니까?

언제 중국이 우리나라 로봇 태권 브이의 짝퉁을 만들어 노예로 삼았답니까?

 

보세요.

머리에 분명히 V가 선명하잖아요.

가만히 보며 사진을 찍겠다 하니 직접 작동시켜줍니다.

사진을 찍으라고 배려해줍니다.

도삭면이라 하면 사람이 일일이 손을 이용해 대나무로 만든 칼로 면 덩어리를

훑어가며 면을 만드는 게 아닙니까?

별꼴입니다.

로봇이 뽑아내는 도삭면을 먹게 생겼습니다.

 

산서성에는 밀 농사가 대부분이라네요.

쌀보다는 일조량이 풍부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밀의 재배가 많아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오래전부터 먹었답니다.

"세상의 국수는 중국에 있고 중국의 국수는 산서성에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은 국수 종류만

수백 가지가 넘는다고 하잖아요.

아침에 만터우라고 하는 만두를 먹고 점심에 국수를, 그리고 저녁에 다시 만터우를

먹어야 힘이 난답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지만, 이 사람들은 국수 힘으로 살아간다는군요.

이미 국수의 역사도 2.500년이 넘었고 원나라 시기부터 따오샤오미엔이라는

도삭면을 개발해 먹었을 정도라는군요.

 

특히 밀가루 음식을 하루만 먹지 못해도 사람들이 신경질을 내고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사흘만 먹지 못하면 이웃과 싸움질한다고 하니 밀가루 음식은 이들의 주식이 틀림없나 보네요.

이 지방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석탄의 산지이지요.

시내만 벗어나면 아래 사진과 같이 석탄 실은 차로 온통 까매진 곳이 산시성입니다.

석탄은 산서성의 힘입니다.

이 석탄으로 말미암아 밀가루 요리가 발달하게 되었답니다.

이러니 석탄과 밀가루는 아주 궁합이 그만인 사이가 되는 겁니다.

 

불지 말라고 화력 좋은 불에 빠른 요리를 해야 하는 게 밀가루 요리잖아요.

밥은 은근한 불에 뜸도 들이고 해야 하지만, 밀가루 요리는 센 불에 빨리 끓여야 불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기에 밀가루 요리는 산시성의 탄광과 함께 더 발전한 게 아닐까요?

국수가 있어야 환영받고 국수를 먹어야 배가 부르고 살맛 나는 세상이 바로 산서성 사람들이 아닌가요?

세상은 이렇게 그곳 지형과 어울려 음식이나 집이나 의복이나 발전하나 보네요.

그래서 신토불이라는 말이 더 실감할 수 있답니다.

 

이 지역을 제대로 발전시킨 나라가 북위라 하더군요.

그들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며 처음 이곳 다통에 자리를 잡았던 모양입니다.

그 힘의 원천은 불교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이들이 얼마나 불교 육성에 힘을 기울였는지는 중국 3대 석굴 중 윈강석굴과 룽먼석굴이

모두 북위 때 건립된 것에서도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494년 북위(北魏)가 수도를 뤄양(洛阳)으로 옮기면서 다퉁은 중요성을 상실했고

설상가상으로 북위가 534년 멸망해버렸던 것입니다.

다퉁은 윈강석굴이 있는 도시로만 알려졌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시안에 맞짱 뜰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가 모여있는 곳이랍니다.

 

그러니 너무 시안만 편애하지 말라 하네요.

시안은 한족인 한나라의 나와바리였고 이곳은 선비족의 나와바리였다고 미워하지는 않았나요?

아니면 말고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이곳을 빛낸 유적을 몇 곳만 살펴보려 합니다.

윈강(云冈) 석굴이 조성된 것은 460~494년 사이라 합니다. 

불교를 국가 통합의 이념으로 삼고자 했던 북위 왕조에 의해서일 겁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주요 동굴은 53개로 5만 천여 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네요.

크고 작은 석굴은 특별한 규칙이 없이 마구 흩어져 있고, 풍화작용 탓에 많은 불상들이

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물어져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틀려 당나라 때 보수한 불상들은 매우 통통하게 바뀌었다고 하네요.

가장 큰 노천대불(露天大弗)은 좌불상으로 높이가 13.7m에 달한다네요.

자애로운 불상의 표정을 가장 실감 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해질 녘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석양의 햇빛을 받은 노천대불의 표정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가 아닐까요?

그런데 얼치기 배낭여행자인 佳人이 그런 것까지 시간을 맞춰가며 보기는 어렵잖아요.

더군다나 이곳은 운무가 잔뜩 끼어 조금만 멀어도 윤곽조차 희미하게 보이는 걸요.

 

우선 내일 먼저 구경하려고 하는 게 하늘에 매달린 절이라는 현공사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특이한 유적지 중 하나로 하늘에 매달린 사원이라는 이름처럼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목조 건물이죠.

448년 북위 시대의 도사인 구겸지(寇谦之)가 공중 사원 건립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은 후

제자인 이교가 491년 건립했다네요.

절벽에 구멍을 파 횡목을 연결한 후 그 위에 40여 동에 달하는 건물을 지었다는데,

1,500년 전의 기술로 어떻게 절벽 끝에 건설할 수 있었는지가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좋은 말로 불가사의라 하겠지만, 사실 엽기스러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 목탑사라는 절이 있고 중국의 삼대 구룡벽 가운데 가장 잘생겼다고 하는

다통 구룡벽이 있고 아주 오래된 화엄사라는 절도 시내에 있다지요?

화엄사는 2천4백여 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다퉁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라 합니다.

이 사찰은 1038년 요나라 때 건립되었는데 1122년 금나라가 지금의 다퉁을 공략했을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하고 그 후 1140년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네요.

상화엄사의 대웅보전은 현존하는 요, 금대의 불전으로 최대 규모로 인정받는다 합니다.

 

이 중에 몇 개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많이 보고 싶지만, 시간이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욕심부리지 않고 능력껏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겠습니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근무하는 아가씨에게 내일 현공사를 가는 방법과 윈강석굴 가는 방법을

물어ㅂㅎ는데... 물론 시내버스만 타고 가는 방법입니다.

현공사는 기차역 앞에서 15번 시내버스를 타고 제5의원 앞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

훈위엔(浑源 : 혼원)행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윈강석굴은 4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그곳에서 다시 3번이나 3-1번 버스로 갈아타면

종점이 윈강석굴이라 합니다.

이 메모지 하나만 있으면 현지인처럼 가장 저렴한 버스만 타고 다녀올 수 있습니다.

 

물론 여행사나 택시를 이용하면 하루에 모두 볼 수 있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2일간 느긋하게 시외버스나 시내버스만 이용해 다녀오렵니다.

평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제 즐기며 다니는 여행마저 정신없이 전투적으로

다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주유천하 하듯 기웃거리며 천천히 다니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코~ 자고 내일 쉬앤콩쓰라는 현공사부터 찾아가렵니다.

위의 사진에 숫자는 숙소의 와이파이 비밀번호입니다.

이제는 더는 비밀이 아니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은 인생의 학교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세상과 교통하고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여행에서 실수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여직원에게 배운 것으로 내일부터 우리 부부 둘만의 여행을 하렵니다.

이곳 여직원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리의 스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