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허하오터(呼和浩特:호화호특)의 신고식

2012. 2. 1.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2011년 10월 18일 여행 8일째 

 

드디어 발음하기도 어려운 후허하오터(呼和浩特:후허하오터) 역에 아침 7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어젯밤 10시 15분에 출발했으니 밤새도록 9시간을 달려왔습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황량한 모습입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을 떱니다.

함께 잠을 깬 같은 방 사람이 뭐라고 말을 걸지만, 유일하게 아는 단어 중 하나가 "팅부동과 한궈런"입니다.

계속 그러자 자기 바짓가랑이를 걷어 보입니다.

어멈! 내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추운 곳이라 내복을 입었느냐고 물어본 모양입니다.

엄살은...

별로 추운 날도 아닌데 겁부터 주는 겁니까? 나 원 참 !!!

 

기차역을 나와 기차역 앞에서 두리번거립니다.

일단 광장으로 나오려는데 웬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접근하며 한국말로 어디를 가느냐 묻습니다.

한국말을 듣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하며 이곳에서는 어디를 많이 가느냐 물어봅니다.

  그러니 초원에서 말을 타거나 사막투어를 하겠느냐고 하네요.

 

자기는 여행사 직원인데 자기와 함께 가면 저렴하게 사막투어와 말을 탈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천성이 게을러 몸으로 즐기는 그런 액티비티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랬더니 오탑사와 박물원을 돌아보면 좋다고 하네요.

조선족이냐 물어보니 자기는 몽골족인데 여행사에 근무하다 보니 한국사람을 많이 대하게 되고

한국말을 배웠다 합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 사람에게 오탑사를 가는 방법을 묻습니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시내버스죠.

그랬더니 우리를 데리고 광장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 1번 버스를 타고 공원 서문에서 내리라 합니다.

 

잠시 후 1번 버스가 들어오는데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며 서로 먼저 타려고 밀치고 난리입니다.

우리 부부도 사람에 밀리며 버스 승강문으로 가려는데 옆에 선 젊은 남자가 제게 눈짓으로 옆을 보라 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마눌님 뒤를 보니 아까 우리에게 한국말로 투어를 권유하던 그 사내가 울 마눌님 배낭을

양손으로 이미 반쯤 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내 어깨를 툭 치며 "거기에 아무것도 없어~"라고 하니 그만 혼잡한 뒤로 슬그머니 빠져버립니다.

울 마눌님 배낭에는 그날 먹을 과일이나 빵, 초콜릿, 물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그 외 배낭은 무척 귀찮은 일이지만 모두 열쇠로 채우고 늘 여행을 다닙니다.

佳人이 메고 다니는 배낭에 컴퓨터가 들었고 돈은 나누어 깊숙이 넣어 두었고 여권이나 카메라와 큰돈은 별도로

제 카메라 가방에 넣어 늘 어깨에 두르고 허리에 차서 앞으로 하고 다닙니다.

 

순간 울 마눌님도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더는 이 도시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이미 반쯤 열린 배낭을 닫으며 손을 부르르 떨기까지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곳을 바로 떠나자 합니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역으로 다시 돌아와 다퉁행 기차를 알아보니 11시 23분 잉쭤가 있어 44원/1인을 끊고

다시 마눌님을 달래며 남은 4시간 동안 잠시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달래니 그러자고 하네요.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갑자기 후허하오터(呼和浩特:호화호특)라는 곳에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계획은 베이징에서 다퉁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톈진역에서 만난 젊은이에 후룬베이얼을 소개받고 고마운 마음에 다퉁이 가까운 곳이라 생각되어

이곳을 그냥 문득 와보고 싶었습니다.

 

기분이 울적해 그냥 다통으로 가자고 하는 마눌님을 간신히 달래고 일단 큰 배낭만 역 앞에 보이는

화물 보관소에 맡기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기차역을 등지고 오른쪽 끝에 화물 보관소가 있습니다 

그곳에다 큰 배낭 하나만 맡기고 작은 배낭만 각각 하나씩 둘러매고 길을 나섭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1박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갑자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네요.

 

몽골족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민족이 아닙니까?

바람과 사막 그리고 초원이라는 풍경이 떠오르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첫인상은 실망스러운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같은 곳을 다녀오더라도 누구는 평생 잊지 못한 감동을 받지만,

누구에게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곳이 되겠지요.

그 사내는 그런 훌륭한 조상의 얼굴에 먹칠하고 남의 배낭 안을 호령하려 했나 봅니다.

 

일단 아까 들은 대로 오탑사로 먼저 가보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에 그냥 가까운 곳부터 돌아다니려 합니다.

1번 버스(1원/1인)를 타고 공원 서문에 내려 물어보니 공원을 지나가라 합니다.

중간에 물어보니 또 엉뚱한 방향을 말합니다.

우리는 덕분에 아침 산책을 나온 현지인과 함께 본의 아니게 한참 공원을 산책하게 되었네요.

 

이 지방은 아마도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긴 지역일 것 같습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초원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찾아올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절이 아닌 듯하네요.

더군다나 우리 부부는 푸른 초원 위에 말을 달리고 싶은 생각도 없을 뿐 아니라 그냥 눈으로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중국과의 차이만 보고 싶은 겁니다.

 

한여름에도 무척 시원한 곳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밤하늘에 초원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는 장관도 연출할 것 같네요.

여유만 있다면 그들의 전통 가옥이라는 게르에서 하룻밤을 자며 초원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배낭만 뒤지지 않는다면...

 

그곳에 누워 별 헤는 밤이라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기차가 다퉁을 지나 후허하오터를 간다고 해서 그냥 조금 더 올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몽골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성도라 하니 그냥 들려보고 싶었나 봅니다.

 

몽골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많은 의미를 주잖아요.

전통집 게르, 칭기즈칸, 말 위에서 세상을 지배한 나라, 우리를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오르는 나라라고 부르는 곳.

하늘을 지붕 삼아 초원을 구들 삼아 살아가는 곳.

물론, 나쁜 기억도 많이 준 나라이기도 하지요.

 

후허하오터(呼和浩特:화화호특)란 몽골어로 '푸른 성'이란 의미라 하네요.

아마도 푸른 초원이 그런 이름을 만들었나 봅니다.

아니랍니다.

16세기 이 도시가 처음 세워질 때 도시를 삥 둘러 성을 쌓았는데 그 성벽에 사용된 돌이 푸른 색깔의 돌이라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하네요.

지금은 비록 중국의 땅이었지만,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전무후무했던 칭기즈칸의 땅이 아니었을까요?

아! 佳人은 그래서 이곳을 와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오면 관광객은 주로 초원에서 말타기를 주로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액티비티는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로 우리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두리번거리는 게 우리 부부 특기잖아요.

이 동네에 아주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왕소군 묘라고 합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늘 푸른 풀이 자란다는 왕소군 묘가 이 동네에 있다는군요?

세상에 언제의 왕소군입니까?

저는 처음 이 이름을 듣고 왕소라는 사내인지 알았어요.

그래서 왕소 君이라고 부르는지 알았으니 佳人이 얼마나 무식한 사람입니까?

 

왕소군이라면 거문고만 타도 날아가던 기러기가 약 먹은 것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떨어뜨린다는

중국 4대 미인 중 하나가 아닌가요?

그 여자 묘가 왜 이곳에 있나요?

 

왕소군은 漢나라 元帝 때 궁녀였다 하지요?

당시 원제는 궁녀를 선발할 때 화가가 그리는 그림으로 선발하였다 하네요.

그런데 후궁을 그리는 화가가 있어 대부분 후궁이 화가에게 돈을 주고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했지만,

왕소군은 그리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진실은 언젠가 세상에 알려진다." 뭐 이런 자신감이었나요?

 

그러다 보니 왕소군은 실물보다 추녀로 그려지게 되었고 마침 그때 흉노족 왕인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자꾸 참한 색시를 보내달라고 칭얼거리자 궁녀로 선발되지 못한 여자 중 하나를 보내라 하니 마침

 그녀는 북쪽의 흉노족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황제가 보니 아주 잘생겨 환장하겠습니다.

아~ 히든카드로 남겨놓은 여자로 보였습니다.

아니면, 떠나갈 여자라서 더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떠나며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가는 도중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른 게 '왕소군원가(王昭君怨歌)'라는

노래랍니다.

그 노래가 얼마나 애절했는지 날아가던 기러기가 단체로 떨어졌다 하기에 중국 4대 미녀에 선발되었지요.

4대 미녀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물고기가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미모에 반해 가라앉던가, 꽃이 고개를 숙이던가, 달이 부끄러워 숨어버리던가....

왕소군처럼 기러기가 곤두박질하던가 말입니다.  

결국, 그녀는 떠나가게 되었고 나중에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여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신이 흘러 흘러 이곳까지 떠내려오고 이곳에서 발견되어 여기에 묻혔기에 왕소군 묘가

여기에 있답니다.

믿어야 하나요? 이럴 때는 정말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곳이 어디인데 여기까지 떠내려왔습니까?

시신이 왕소군이라고 명찰이라도 달고 내려왔을까요?

아니면 중국의 의학이 발달하여 이미 유전자 검사로 왕소군이라고 의학적으로 인정을 받았을까요?

이럴 때는 믿지 못하는 제가 너무 밉습니다.

 

아무 여자 시신을 발견하고 "왕소군이라 하고 묻는다."입니까?

물어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래서 가지 않기로 합니다.

아무리 佳人이 미인에 환장했지만....

사실 오늘 마눌님 몰래 가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다통으로 가야 하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섭니다.

왕소군이 오빠가 그냥 간다고 얼마나 서운해할까요?

 

드디어 묻고 또 물어 제대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8시 30분이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하네요.

잠시 기다렸다 표를 삽니다. (15원/1인)

물론 오늘 첫 입장객이 우리 부부였고 우리가 돌아보는 동안 아무도 들이지 않았기에 100% 전세를 내고

보았고 나올 때 두 사람이 들어오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오탑사 안으로 들어가 어떤 곳인가 살펴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이라는 날은 평범한 날입니다.

그러나 어제와 내일을 잇는 매우 특별한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평범한 내일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평범한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