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6. 00:32ㆍ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여러분!
쩐페이(珍妃 : 진비)라고 아십니까?
그녀는 귀비로 광서제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다 합니다.
사랑하는 황제가 자희태후에 휘둘리는 게 안타까워 과감히 맞서다
참혹하게 자매가 함께 자금 성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합니다.
오늘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남아있는 장소로 가보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보는 우물은 쩐페이징(珍妃井 : 진비정)이라고 부르
는 슬픈 사연이 있는 우물입니다.
지금은 바라보아 그냥 평범하기 짝이없는 초라한 우물입니다.
위치는 진보관 서북쪽 구석에 있는 정순문 안에 있습니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고 모두 이곳에 오면 珍貴妃를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명복을 비는 장소라네요.
그곳 마당에는 우물 하나가 덩그러니 있네요.
광서제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진비가 서태후에 의해 손발이 잘려나간 후 버려졌던 우물로
세월이 지나 우물은 조용하지만, 당시 이곳에서 들렸던 진비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광서제를 미워한 서태후에게 광서제가 가장 사랑한 여인이 이쁠 리 없잖아요.
더군다나 진비는 자매가 앞장서서 광서제가 황제로 위엄을 되찾게 하려고 서태후를 견제했거든요.
그러나 진비는 지피지기를 해야죠.
서태후는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지요.
서태후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부족해 진비를 3평짜리 쪽방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악마의 화신이라는 서태후가 괜히 서태후였습니까?
의화단의 난으로 서안으로 피난을 가게 되자 서태후는
이름뿐인 황제인 광서제를 데리고 떠납니다.
예뻐서 데리고 갔다면 오죽 좋겠습니까만은 사실 총알받이로 데리고 간 것이지요.
그리고 만약 황제를 그냥 두고 떠났다가 반란군이 황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힘을 실어준다면
서태후는 서안에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광서제는 닭이고 서태후가 개가 되는군요?
서태후는 혼자 남겨진 진비가 서양인에게 욕을 당할지 모른다고 자결을 명합니다.
이 얼마나 갸륵한 마음입니까?
황제가 사랑하는 여인이 서양 오랑캐에게 욕이라도 당한다면, 대청제국의 수치가 아니겠어요?
그렇게 걱정이 되었으면 데리고 가면 되잖아요?
이에 진비가 반발하자 진비의 팔다리를 자른 후 바로 이 우물에 빠뜨려버립니다.
그러니 1년이 지난 후 진비의 시신은 결국 발견되었다네요.
그때 진비의 나이가 겨우 25살이었다 합니다.
아~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다는 나이는 지났군요?
그래도 여자 나이로는 황금기가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에 진비가 보입니다.
아래 크게 확대해 보겠습니다.
저 슬픈 눈 망을 에서 금세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이곳에 오면 유리로 가려진 이곳을 들여다 보고 진비의 슬픈 눈을 한번 쳐다보세요,
그리고 "울지 마~ 진비야~" 하고 다독거려 주세요.
누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어요?
젠장... 절대로 닦을 수 없네요.
사당 안에 있어 유리창을 통하여만 볼 수 있기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진비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진비를 무척 사랑한 이 사내의 아픈 가슴은 또 누가 어루만져 줄까요?
누구나 부러워할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개 같은 삶을 산 사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서태후의 잔인한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던 사내 말입니다.
오매불망 잊을 수 있겠습니까?
광서 34년(1908) 10월 22일, 광서제가 감금당한 영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며 오히려 사랑하는 여인의 곁으로 갈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광서제가 세상을 버린 그 다음날 자희태후도 죽습니다.
광서제가 데려갔을까요?
아니면 자희태후가 광서제를 앞세우고 갔을까요.
그리고 또 한 사내를 소개합니다.
바로 코털로 유명한 위안스카이라는 사람이지요.
우리가 원세개라고 하는 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의젓하게 앉아있군요?
원 세개라 하면 동그라미 세 개일까요? OOO.
당시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강유위 등을 주축으로 한 개량파가 나타나 유신을 기치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게 됩니다.
이에 대해 광서제와 자희태후 두 사람의 반응은 반대로 나타납니다.
자희는 수구를 주장하고 광서제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합니다.
개방을 할 것인가 문을 닫고 옛것만 고집할 것인가.
무술변법...
광서 24년 무술년에 광서제는 조서를 발표하고 신식학교를 세우고 철로를 개설하고
은행을 개설하고 관제를 바꾸는 등 새로운 사회개혁을 단행합니다.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자 수구파는 자희에게 전면에 다시 나서 줄 것을 권했지만, 자희는
이미 모든 권력을 황제에게 돌려주었기에 다시는 정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세 가지의 카드를 꺼내 듭니다.
첫째 광서제의 스승이며 유신파의 한 사람인 옹동화를 파면하고 고향을 향해 돌려보냅니다.
둘째로 새로 임명되는 2품 이상의 대신들은 모두 자기 앞에서 감사의 예를
올리게 함으로써 인사권을 틀어 쥡니다.
셋째로 그녀가 가장 신임하는 영록이라는 자를 직예총독에 임명하고
문연각 대학사직을 함께 맡게 했습니다.
그러니 뒤로 물러났다고 물러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뒤로 물러난다는 말은 뒤에 서서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갈겨버리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서제에게 톈진으로 열병식에 가자고 부추기고 그 사이 영록에게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황제를 추대할 무서운 계획을 하게 됩니다.
자희의 이러한 계획을 사전에 눈치챈 광서제는 은밀히 유신파 대신을 불러 대책을 강구하라 이르니
유신파 대신은 당시 직예안찰사로 서양식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원세개도 한때 유신파에 몸담은 적이
있기에 그를 끌어들이자고 아뢰니 황제는 친히 원세개를 불러 그 자리에서 병부시랑으로
파격적으로 진급시키고 군대 훈련에 관한 일을 맡깁니다.
그 후 담소 등이 원세개의 거처로 찾아가 유신파의 계획을 알려줍니다.
그 계획이란 자희와 광서제가 열병할 때 그 자리에서 무력으로
영록을 주살하고 자희를 연금한다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우리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이화원으로 달려가
우리의 계획을 밀고하시게. 그리하고 당신이 우리의 목을 베면
높은 관직과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네. 어찌하시겠는가?"
그러자 원세개가 답을 합니다.
"그대는 이 원가를 어찌보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게요. 황제폐하야 말로
우리 모두가 목숨을 바쳐 모셔여할 주군이요.
그대와 내가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었으니 폐하를 보호하고 모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오.
영록을 죽이는 일은 강아지 한 마리를 죽여 없애는 일보다 쉬운 일이거늘 걱정하지 마시오."
이 말을 마친 원세개는 그 길로 한달음에 천진으로 달려가 영록에게 모두 밀고를 합니다.
강아지보다도 못한 일을 했습니다.
정말 웃기는 사람이군요?
표리부동...
사람들은 원세개를 욕을 하지만, 광서제의 사람 담소 등이 바로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참지 못하고 원세개가 바로 개가 되는 순간입니다.
영록은 바로 그 자리에서 북경으로 돌아와 다시 자희에게 이르니 자희는
사람들을 이끌고 자금성으로 들어갑니다.
원세개의 행동에 이야기를 듣는 佳人이 멍해지는 순간이었네요.
자희는 아주 충견 한 마리를 제대로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원세개의 행동 하나가 중국 왕조를 끝장내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다음 대신들을 소집하여 광서제의 면전에서 일장 훈계를 늘어놓습니다.
"천하는 선조들의 천하이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함부로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가?
강유위의 신법이 선조들의 법보다 더 낫단 말인가? 정말로 어리석은 군주이로고!"
사람은 이렇게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하여는 관대하고 남이 저지른 일에는 가혹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
지금 자희는 자신의 잘못을 광서제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이어서 자희는 광서제를 중남해에 있는 작은 섬인 영대에 가두라 명을 내립니다.
아울러 황제의 명의를 도용하여 유지를 발표합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광서제인 짐이 몸이 아파 태후마마(자희)에게 다시 훈정을 간곡히 청했노라~"
환장하겠습니다.
아프지요. 마음이 아프지요.
이로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원세개는 정말 개 같은 변심을 함으로 광서제는 더 이상
세상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변고를 당했지요.
만약, 원세개가 사람이 되어 광서제 편에 서서 자신이 한 말처럼
그대로 행동했더라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곳에 들려 우물을 바라봅니다.
차라리 그리도 진비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면 함께 데리고 가지 왜 그랬을까요?
악마의 화신은 이렇게 자기 앞에 놓인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하여 디딤돌로 만들고 전진합니다.
아니군요?
자희태후가 어찌 그런 일을 직접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녀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모르는 일이라 할 겁니다.
동육궁 구석진 곳에 슬픈 우물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귀비의 위패가 모셔진 작은 사당 하나가 그 우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우물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우물이 역사의 진실을 안고 가기에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왜 사람은 이 우물에 그런 아픈 사연을 지고 있게 했을까요?
우리는 그 우물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우물 속에서 고통을 못 이겨 울부짖는 진비 자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제 동육궁을 모두 보았으니 서육궁으로 건너가 자금성의 내정이라는 곳으로 가서
신무문으로 빠져나가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돌아다는 게 별로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잠시 의자에 앉아 쉬며 과일도 먹으며 휴식을 즐기렵니다.
그다음 또 돌아다니며 기웃거려 보렵니다.
할인도 해주지 않기에 더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렵니다.
어제, 오늘 이야기 속에 돌아다닌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의 권력이란 구름 같은 게 아닐까요?
중국의 또 다른 여걸 측천무후 말입니다.
그녀도 황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인 소숙비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소금통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소숙비가 죽으며 나중에 고양이가 되어 원수를 갚겠다 하자 궁 안에 어느 누구도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함으로 그 후 중국은 황궁 안에서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측천의 묘 앞에 비석은 글자가 하나도 없는 無字碑입니다.
그 무자비는 無慈非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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