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5. 08:10ㆍ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벌써 아침 일찍부터 전문대가, 대책란, 그리고 전문을 통과해 천안문 광장을 가로질러
천안문, 단문, 오문, 태화문을 지나 여기까지 앉지도 못하고 내내 걸었더니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자금성에 들어왔는데 피곤하다고 주저앉을 수 있나요?
잠시 우리 부부는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천천히 그리고 앞으로 묵묵히 전진뿐입니다.
자금성에 들어와 오래 산다는 일이 행복한 일일까요?
아니면 불행한 일일까요.
처음 두근거리는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 화려한 자금성의 삶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부를 들러보니 佳人의 생각에 점차 회의감만 들어갑니다.
너무 오래동안 돌아보아 피곤해서일까요?
바라보아 높은 담과 폐쇄된 공간, 그리고 전혀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니 이곳은 인간 무대의 최악의 장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궁인으로 나인으로 이곳에 한번 발을 디디면 누구나 평생 이곳에 살다가 죽어서
나간다고 하니 너무 퍽퍽한 삶이 되지 않겠어요?
사방을 둘러보아 높은 담장과 황금색이라 우기는 우중충한 색깔이 마음을 옥죄어 옵니다.
이렇게 황금으로 만든 아름다운 것은 죄다 몇 사람만이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힘 있는 자의 줄에 서고 일이 한번 터지면
헤쳐 모여를 반복하고 그래서 재미있고 스릴을 느끼기 위해 음모와 배신과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살았나 봅니다.
가장 행복한 삶이란 가장 평범한 삶이 정답일지 모릅니다.
평범한 삶이야말로 삼라만상의 모든 풍파와 희로애락을 겪으며 사는 일이니까요.
바람이 불어야 고요함을 느낄 수 있고 추운 겨울을 지내봐야 아름다운 봄을
느낄 수 있듯이 바로 우리 같은 범부로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삶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자금성이 대단한 건물이지만, 우리 동네에만 오면
그저 평범한 자장면집입니다.
전조를 지나면 내정이라는 후침으로 가게 됩니다.
전조가 황제의 공식적인 일을 하는 직장이라면 내정은 황제의 사적인 공간인 셈입니다.
뭐 사실 그렇게 하지는 않고 살았겠지만, 형식적으로 그랬다는 말이지요.
후침으로 가기 전에 태화전 좌우측에 날개를 펼친 듯 자리 잡은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동쪽에는 문화전이 있고 서쪽에는 무영전으로 문무가 함께 좌우에서
황제를 보필한다는 의미라니 황제란 이렇게 혼자보다는 늘 좌우로
누가 보필해주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황제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보필을 받느냐입니다.
그러니 황제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옆에 아무도 보필하지 않으면 황제도 개털입니다.
세상에 황제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 내버려 두면 대한민국 남자들 다 끓이는 라면도 못 끓이는 사람입니다.
민초는 누구나 스스로 세상의 역경을 헤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황제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자성이 황제 욕을 하며 말을 타고 들이닥치자 명나라 마지막 황제는 그동안 안전에서
아부만 하던 좌청룡 우백호는 모두 도망을 가고 환관 왕승만 거느리고 이자성이
들이닥치며 "황제 이 문딩이 자슥아~"하며 욕을 하자 삐쳐서 찔찔거리며
자금성 바로 뒤에 있는 경산으로 올라가 목을 맨 일도 있었잖아요.
우리는 평생 동안 엄청난 욕을 먹고 살아왔기에 이 정도의 욕은 자장가로 들리지만,
황제는 문딩이 자슥이라 했다고 찔찔거리고 비 맞은 강아지 마냥 쫄랑거리고
뒷산으로 올라가요?
요게 바로 황제란 자의 짓거리입니다.
문화전에서는 왕자들에게 교육을 했던 곳이라 하네요.
청대에는 황제도 이곳에서 당대의 석학에게 특별강의도 듣기도 했답니다.
문화전 옆에 문연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문연각은 그러니 황실 전용 도서관인 셈인가요?
명나라의 영락대전 정본이 수장되어 있다는군요.
구궁 내의 대부분이 건물에 황제를 지칭하는 황금색 지붕을 올렸는데 문연각은
검은색인데 이유는 오행사상에서 火를 이기는 水에 해당하는 색이
검은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화재란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나 봅니다.
그 뒤로 졘팅(箭亭 : 전정)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정자 안에는 황제의 보좌와 함께 비석 하나가 있답니다.
이 비석에는 건륭황제가 후손에게 남긴 것으로 아무리 황손일지라도 만주족의 혈통이
이어지는 말타기와 활쏘기 등을 게을리하지 않아 기본을 벗어나지 말라는
내용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건륭황제는 제법 제대로 된 황제였나 봅니다.
그런데 이곳은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하네요.
한편, 문화전의 반대편에 있는 무영전은
여기에는 사고전서(四庫全書)가 편찬된 곳이라 합니다.
사고전서란 청대 건륭제의 칙명에 의해 천하의 모든 책들을 經, 史, 子, 集의
4부로 분류해 편집한 도서의 총집합입니다
모두 필사를 하여 북방과 남방과 이곳에 따로따로 보관하였다 합니다.
중국도 개화기에 난을 겪으며 대부분 불에 타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도 건물 안에는 그때 사용한 목각 활자들의 판본을 모은 진품 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고 이곳에 있던 것마저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갈 때 가지고 갔기에
지금은 타이베이의 국립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그 뒤에 있는 징쓰뎬(敬思殿 : 경사전)은 명나라 말기 반란을 일으켜 북경을
함락한 이자성이 황제에 오른 곳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얼마간이었지만, 이자성이란 친구는 멋진 녀석이었나 봅니다.
짧고 굵게 산 사내였나 봅니다.
비록, 용이 되려다 이무기도 되지 못했지만, 자금성을 민간의 몸으로 말을 타고
황제에게 욕지거리하며 들이닥친 유일무이한 사내였습니다.
황제라...
그러나 하늘이 점지하지 않았기에 폼만 잡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를 몰아내고 중원에 입성한 후금의 황제 순치가 大淸帝國의 성립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며 징쓰뎬에서 일어난 이자성은 징쓰뎬에서 끝장을 본 곳이군요.
순치제는 사실 이자성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이자성이 목숨을 버리면서 미리 명나라를 정리해주었으니까요.
더 폼나는 태화전에서 하지 못한 것은 이자성이 이곳에 들어오며
불을 질러 홀라당 타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구룡벽의 북쪽으로 황극문과 영수문을 지나면 넓은 어도(御道)가 펼쳐진 황극전이
나타나는데 황극전은 외동로 건축물의 主殿으로 건청궁을 모방해 만들었다 하네요.
가경제에게 황위를 물려준 건륭제가 이곳에서 머물렀다 합니다.
지금은 황실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선에서 은퇴하면 물러나 지내던 백수들의 경로당인 셈입니다.
위의 사진이 황극전입니다.
그러니 태상황이라고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머무는 곳이지요.
한마디로 佳人처럼 백수가 된 황제입니다.
크기만 조금 작지 태화전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습니다.
주로 건륭제가 많이 이용하였지요.
외동로 서북쪽에 있는 길고 좁은 화원이 있습니다.
동천이라고도 불리는 쳰롱화위엔(乾隆花園 : 건륭화원)이 있습니다.
황실 정원의 품격과 강남 정원의 정교함을 모두 갖춘
중국 원림의 미학의 대표작이라는 곳입니다.
멋스러운 정자, 완곡한 곡선미와 회랑, 오래된 나무와 아름다운 꽃이 늘 어우러진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모습을 대단하다고 하지만, 세상을 살며 우리처럼 여행
다니고 살아가면 세상의 신기한 것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세상의 중심이니 뭐니 하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야 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닙니까?
얼마나 숨이 막히고 답답했으면 , 이런 소꿉장난 같은 정원을 만들고 살았을까요.
정원 안의 수초당(遂初堂)은 삼합원의 형태를 지닌 전각으로 건륭제가 말년에
이곳에서 나라의 안위와 자신의 장수를 기원한 곳이라 합니다.
大淸의 황제라 해도 그가 머문 곳은 佳人 눈에는 초라한 골방으로 보입니다.
행복은 고래 등 같은 대하천간(大廈千間)짜리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밤에 누울 자리는 야와팔척(夜臥八尺)일 뿐이고 아무리 좋고 넓은 땅인 양전만경
(良田萬耕)이라도 하루에 먹는 식사량은 고작 일식삼승(日食三升)뿐이라 했거늘.....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황제보다 더 행복한 게 아닐까요?
그곳에는 한무제 때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승로대(承露臺)라는 게 있으며
그 승로대는 옥으로 만든 것에 가운데 청동 그릇을 놓아 신선이 이슬을 모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테라스가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제일 정상 부분에 보이는 게 승로대로 신선이 밤새 모아놓은
감로수라도 얻어먹어 볼까 생각했지만, 헐!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놓았네요.
이곳에서는 푸왕거(符望閣 : 부망각)라는 건물이 무척 특이합니다.
외관은 외관대로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구조가 마치 미로처럼 만들어 놓았기에 미궁(迷宮)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가시면 앞사람 뒤통수만 바라보거나 정신없이 다니지 마시고 승로대도
쳐다보고 이슬이라도 한방을 얻어먹자고 조르기도 하시고 회랑도 걸어가며 옛날 상궁,
나인들이 쪼르르 몰려다니며 수군거렸던 이야기도 엿들으며 가십시다.
인생 까이꺼 모 있어요?
그냥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방안도 기웃거리고 벽에다 귀를 기울이며
이야기도 엿들으며 가는 게지요.
내일은 진비라는 한 많은 여인을 만나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에 이슬만 먹어도 신선이 될 수 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입니다.
佳人도 울 마눌님 처음 만났을 때 이슬만 먹고살았는지 알았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 양푼에 남은 반찬 죄다 쓸어 넣고 밥을 쓱쓱 비벼 먹거든요.
이슬에 속지 맙시다.
승로대도 믿지 맙시다.
살아가는 일에 답이 있을까요?
바람만이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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