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2. 00:01ㆍ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이 어마어마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단순한 목적으로 만든 건축물이
바로 만리장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멋을 부릴 이유도 없고 왜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고 따질 이유도 없이 밥만 먹고 눈만 비비고 일어나면
장성 쌓는 일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며 만들었을 겁니다.
처음 장성을 만든 시기가 BC7세기라고 하니 무척 오래전부터 매달린 대공사였나 보네요.
이런 곳을 걸을 때는 휘파람도 불며 걸어보세요.
한결 더 느낌이 좋습니다.
또 누구는 황토 고원에서 만리장성을 바라보면 황룡이 누워 자빠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동쪽의 산악지대로 와 쳐다보면 청룡이 승천하려고 잠시 자빠져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산하이관에서 바라보면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갈증이 나 바닷물을 마시려고 엎드린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니 자빠지고 엎어지고는 했군요.
제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 투정 좀 부려보았네요.
이런 세계적인 건축물을 만들 민족은 중국인 외에는 없을 겁니다.
남고 넘치는 게 사람이었으니까요.
이것을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라 해야 하나요? 아니면 위대한 삽질이라 해야 하나요.
이렇게 대단한 만리장성일지라도 그 중요성은 오직 한족만이 생각하는 곳입니다.
만리장성의 목적은 바로 한족이 다른 민족과 편 가르기를 하자는 말이 아니겠어요?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한편으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극비란 봉소서(枳棘非鸞鳳所捿)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시덤불 속에서는 봉황이 살 곳이 아니라 했습니다.
어찌 세상의 문명국인 한족이 덤불 속에서 사시려고 이렇게 울타리를 쌓았단 말입니까?
대대로 중원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한족이야말로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로 쌓은 성이 아니겠어요?
역대 중원을 통일한 나라가 모두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관리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원래 만리장성 북쪽의 초원을 말달리던 만주족이나 몽골족은 따뜻하고 먹을 게 풍부한 중원으로 내려오는데
거추장스럽고 방해만 되었던 만리장성을 아예 허물어 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장성 북쪽에 살던 부족은 여름이 짧아 농사에 적합지 못한 곳에 살잖아요.
그러니 항상 곡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릿고개만 되면 걱정이 앞섭니다.
눈망울이 초롱거리며 쳐다보는 자식 놈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슬금슬금 장성 아래로 내려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곳간을 털기만 하면 곳간에 곡식이 그득한데
왜 장성을 넘어 내려오고 싶지 않겠어요.
장성만 넘어오면 아리따운 중원의 샤오지에도 많은데...
그러니 그런 부족에게는 장성이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잖아요.
옛날에는 그냥 넘어와 마치 맡겨놓은 곡식을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가져갔잖아요.
맞아요. 맡겨놓은 것 달라고 내려왔으니까요?
언제 맡겼느냐고요?
작년에 털다 다 못 털고 남겨놓은 게 바로 돌아가며 맡겨 놓은 것이나 진배없잖아요.
자꾸 털어가니 자구책으로 장성을 쌓았고 그러니 자주 내려오지 못하게 되자 한번 내려오면 더 많이 가져가게
되다가 이것도 피곤하다고 아예 중원으로 내려와 살림까지 차리고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게 천하의 좋은 특산품을
상납까지 받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곡식만 가져가니 미안한 마음이 들잖아요.
그래서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가게 되었고요.
후손까지 씨를 뿌리고 가게 되어 사실 한족의 의미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요?
만주족이나 몽골족이 중원을 통일하고 늘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가 남이가~"였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미 중원은 오래전부터 한족만이 살아온 곳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어울렁 더울렁 함께 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부터 중국인은 아비에 대한 존경이 없답니다.
어머니야 자기를 낳아준 확실한 사실이지만, 이렇게 수시로 북쪽에서 넘어온 북방민족이 바람 따라 내려와
전국적으로 씨를 뿌리고 홀연히 구름처럼 북으로 사라지고 그 후 무럭무럭 자란 씨앗은 자기 조상을
알 수 없게 되니 어따대고 존경합니까?
중원은 수시로 전쟁을 하며 서로 땅따먹기에 골몰하여 전쟁이 휘몰고 간 마을에 남는 것이란
1년 후 아이들 울음소리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중요성은 어느 왕조는 중히 여겼겠지만, 다른 왕조는 아무 필요도 없는 곳이 이곳입니다.
중원을 통일한 왕조라도 지키려는 방어적인 왕조는 정성을 들여 보수관리에 증축까지 했겠지만,
북방 경영이나 세계화를 지향한 당나라나 북으로부터 내려온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요.
만리장성은 군사적으로 경계선인 동시에 국경의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런 군사적인 분계의 의미만 아니라 농경문화나 문자 등에서도 나뉘는 경계선이었겠지요.
이렇게 지금은 세계적인 건축물이 되어 무슨 불가사의니 뭐니 하지만, 과연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목적에
얼마나 역할을 했느냐는 평가에서는 대체로 아니 올시다가 아닐까요?
다른 말로 평가를 한다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삽질이며 단순무식의 대표라 할 수 있다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것이 불가사의니 뭐니 하며 국가재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상한 여자인 자희에 의해 군함 사 올 돈으로 만든 이화원이 지금은 중국 정부의 돈줄이 되듯이 말입니다.
아~ 만리장성(万里长城)
중국이 7개국으로 나뉘어 전쟁을 일삼던 전국시대에 각국은 서로의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선을 따라
용의 허리처럼 기다란 장성을 쌓았습니다.
이 장성들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에 의해 국경선을 따라 하나로 연결됩니다.
이후 장성은 중국에 등장한 통일왕조의 세력에 따라 중요도가 다르게 평가되었습니다.
당이나 원, 청나라와 같이 그 세력이 주변을 모두 능가하는 왕조 시기에 장성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장성보다 국경이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런 시기에는 장성이란 국경의 의미가 아니고 마을 안에 있는 동네를 구분하는 선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한족의 나라라고 하는 명나라와 같이 쇄국정책을 채택해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중원 수호에만
전력을 다한 왕조 시기에는 장성이 국경선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산하이관(山海关)에서 자위관(嘉峪关)까지 이르는 오늘날의 장성이 완성된 것이
명대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북서쪽 70km 떨어진 팔달령 장성
베이징 인근에서는 가장 험하고 높은 곳인 해발 1,015m에 장성이 있습니다.
이 산에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대단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황제는 무조건 튼튼하게 만들라고만 합니다.
벌써 장성 만드는 일에만 세월이 흘러 200년이 가까워졌습니다.
덜수는 아침 둥근 해가 떠오르면 치카치카도 못하고 모든 동료는 변변치 못한 옥수수 죽 한 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줄줄이 장성에 오릅니다.
배가 고파 투덜거리기라도 하면 아침은 거지처럼 먹는 게 다이어트에 좋다고 합니다.
왜 올라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무엇 때문에 올라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순이가 그리워 혼자 지난밤에 흘린 눈물이 베개를 적셔 마르기도 전에 오늘도 또 올라야 합니다.
떠나기 전에 자식 놈 하나가 덜수를 바라보며 어디서 배운 노래인지 종알거리며 부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젠장~ 장성을 쌓는 일이 아빠 혼자 힘을 낸다고 1-2백 년 안에 끝날 일입니까?
자식 놈이 있다고 애비 장성 쌓으러 가는 데 지들이 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 자식 놈도 조금만 더 크면 또 그곳으로 갈 텐데 말입니다.
그런 노래 만든 사람을 찾아가 3대를 모아놓고 주리를 틀고 싶습니다.
이곳에 쌓은 돌 하나에도 모두 사연이 있고 땀이 질펀하니 배어 있을 겁니다.
황제는 처음에 우리의 땀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다음에는 눈물도 내놓으라 합니다.
젠장, 마지막에는 목숨마저 내놓으랍니다.
이 장성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리고 땀 냄새가 납니다.
고통스러워 지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정말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곳에 올라보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는 인간의 거친 숨소리와 땀 냄새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눈물과 피로 얼룩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오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우두커니 서서 과거로 돌아가 보세요.
그나마 날이라도 좋으면 작업환경이 괜찮았지만, 비가 내리기라도 하고 눈이라도 내리며 성벽을 오르내리는 길은
미끄러워 또 몇 사람의 희생자가 생깁니다.
왜 앰뷸런스도 올라오지 못하는 이곳에 이런 이상한 성벽을 쌓으라 했을까요?
민초를 편케 하기 위해 그랬을까요?
아니지요,
황제가 천년만년 살고 싶어 그리했을 겁니다.
종묘사직을 영원히 계속되게 하려고 그리했을 겁니다.
그러나 민초에게는 그 종묘사직이라는 게 의미도 없는 말입니다.
평지에 성벽을 쌓아 올리는 일도 아니고 험악한 산악지대라 걷기조차 위험한 곳에 성벽을 쌓으라 합니다.
아주 튼튼하게 쌓으라 합니다.
이렇게 쌓으면 민초가 편안해진다 합니다.
그러니 민초는 나중에 편안해지기 전에 오늘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데 말입니다.
황제라고 하는 사람은 예전에 저잣거리에 떠돌아다니며 깡패짓만 하다가 어느 날 무리를 이끌고 황제라고 합니다.
누가 인정했고 누가 하라고 했나요?
저 혼자 하늘의 뜻을 받아 황제에 올랐다고 꿇으라 합니다.
이곳도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물들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바람만 막아주는 허름한 보금자리에 그나마 허리라도
눕힐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오늘 佳人이 바라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그들도 이 성벽을 내려갔을 겁니다.
지금 佳人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된 것을 감사하며 말입니다.
서산의 지는 석양은 민초들이 흘린 피로 말미암아 더욱 붉게 물들고 민초들이 흘린 눈물과 한숨 소리는
하늘 가득히 번져다는데...
시간을 거슬러 그들의 한숨 소리를 듣습니다.
지는 석양을 보며 함께 호흡해 봅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의 싱그러움을 느껴봅니다.
모두가 안전해진다는 믿음에 성벽의 돌을 쌓고 또 쌓았습니다.
이렇게 벽돌을 등에다 지고 오르내리면 고향에 다녀올 수 있다는 말에 힘들어도 등짐만 지기도 했습니다.
이게 미친 짓임에 틀림없지만, 후손은 입장수입만 해도 엄청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에 부쳐 비틀거리며 허약해진 몸에 며칠 쉬고도 싶었지만,
감시의 채찍에 무리하게 돌을 지어 올리다가 숨을 조용히 거두기도 했습니다.
2000년을 이어온 성벽 건설에 대를 이어 동원되었습니다.
평생에 걸쳐 벽돌을 굽던 사람은 벽돌만 구웠습니다.
돌을 쌓던 사람은 대를 이어 돌만 쌓았습니다.
규격에 맞게 돌을 다듬던 사람은 이제 돌의 모양만 봐도 어느 곳을 두드리면 쉽게 규격에 맞는지 압니다.
태어나서 이곳에 와 연장을 들고 기술을 배웠고 나이가 들어 장인의 솜씨를 뽐내다가
그리고 어느 날 마지막 순간 손에 든 연장이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뜨리며 죽어가더란 말인가요?
그 연장이 손에서 힘없이 툭 하고 떨어지던 날...
그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광의 대명 제국의 인민으로 살아오며 인간이 하는 일이라고는 태어나 돌만 지어 날랐고
돌만 다듬었고 쌓았습니다.
과연 그들이 영광의 대명제국의 인민이었을까요?
세상의 문명국이라는 나라의 인민이었을까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왔을까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건 미친 짓이야~
佳人 혼자만 하는 발칙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해가 떨어지고 날이 저물면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이곳을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과거의 이들과 헤어져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참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성벽만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툭~ 하고 칩니다.
돌아보니 마눌님입니다.
장성 쌓던 사람은 그냥 두고 우리끼리만 내려가자고 합니다.
자꾸 그런 생각만 하면 그들과 함께 여기서 장성 쌓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제 곰 농장 앞이라 합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아름다운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는 10월의 어느 날 장성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만 하고 걸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울타리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는 선입니다.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지만, 울타리는 시간이 지나며 나를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만리장성...
바로 중국과 이웃 나라를 나누고 중국인을 가두어버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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