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은 살아있다.

2011. 12. 20. 00:01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장성을 오르는 길이 마치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부터 여러 곳에 장성이 있었고 그 장성을 하나로 이어준 사람이

진시황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장성의 대부분은 명대 이후에 건설한 것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장성을 건설하게 된 이유는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오랑캐(胡)라는 말을 믿고 만리장성을 쌓았고

훼손되어 없어졌거나 아직 만들지 않은 지역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진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북방의 오랑캐가 아니라 그가 가장 아낀 막내아들인 후하이(胡亥)였습니다.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 해도 되겠습니까?

기왕 알려줄 거면 제대로 콕! 찍어 알려줄 것이지... 진시황만 쪼다가 되고 말았잖아요.

 

천하를 거덜 낸 것은 胡가 맞기는 맞지만, 오랑캐가 아니고 가장 아끼고 사랑한 막내아들이라니..

천하의 진시황이 이런 단순한 이치를 몰랐다니 바보였나 봅니다.

옆에서 평생을 보필한 이사는 무얼 했답니까?

막판에 조고에게 얻어터지느라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얼마나 많이 많았는지 조고에게 진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물어보고 섰다지요?

나중에는 지록위마라는 말로 완전히 조고는 호해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고...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했다고 폼은 잡았지만 사실 중원 정도였지요.

사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당시 진나라의 인구가 지금 우리나라만큼 되는 5천만 명 정도였다니 대단히 큰 나라임이 분명합니다.

그에게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바로 북쪽에 사는 흉노족이었지요.

시도 때도 없이 가을 추수하고 타작할 때 천고마비로 말이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기에 말 산책이 필요하다고

무리를 이끌고 바람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작한 곡식을 훑어서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주로 기마민족이라 보병 위주인 진나라에게는 여간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마치 기계화 부대와 소총만 든 육군의 싸움처럼 생각됐습니다.

물론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것은 주변의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기마군을 일부 포함한 군사편제라 하더군요.

끄~ 하하하~ 작은 차별화가 천하를 얻습니다.

 

이렇게 대단하게 자랑스러워하는 만리장성은 사실 북방민족인 흉노에 대한 두려움과 수세적이고 방어만 하겠다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 후 당, 금. 원, 청나라에는 장성이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세력이 이미 장성 넘어까지 뻗어 있었으니까요.

집안 가운데 울타리가 있다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이들은 북방민족이라 여기도 고향이고 장성 너머도 고향이지요.

 

한나라도 사실 늘 북쪽의 흉노에게 시달림을 받기도 했잖아요.

오죽했으면 중국의 사대 미녀 중 하나라는 왕소군을 뇌물로 바치기까지 했을까요.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나라 시기에 살았던 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친구인 이릉 장군이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흉노족을 혼낸다고 의기양양하게 북으로 가더니만 전투도 변변히 못 하고 투항하고만 사건이 생겼지요.

 

그래도 사마천은 친구이기에 변호한답시고 한무제에게 변호하다가 무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고가 생겨 결국

사내로는 부끄럽게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라는 수치스러운 벌을 받았지요.

그러니 우습게도 세계적인 저서인 사기는 궁형을 당했기에 완성했는지도 모르겠네요.

한나라의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게 이렇게 심한 벌을 내렸나 보네요.

 

하지만, 소극적인 쇄국정책을 편 명나라는 내내 몽골과 일본에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정통제가 1449년 오이라트 부장인 에센(也先)과 허베이 성 투무푸(土木堡)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된 사건이 생깁니다.

명나라라고 하면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고 알려졌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결국, 포로로 잡힌 지 1년이 지나자 명나라는 새로운 황제를 옹립합니다.

그러면 몽골에서는 황제도 아닌 정통제를 더는 붙잡아 둘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돌려보내 주게 되었지요.

 

정통제는 장군의 말을 무시하고 환관 왕진의 말만 믿고 출정했다가 포로로 잡히고 다시 돌아왔지만,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는군요.

그런데 얼마 후 새로 옹립한 황제가 죽어버리는 행복한 사건이 생기며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복이 많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푸! 하하하~ 정통제는 다시 황위에 올라 시즌 투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정통제는 죽는 날까지 황제 자리에 있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하네요.   

 

이 사건이 아마도 대명제국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애들이 알까 봐 걱정입니다.

이 사건으로 명나라는 장성 건축에 올인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명대에만 약 200여 년간 총 14차례에 걸쳐 장성 증, 개축이 이루어졌다는군요.

 

명나라 200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장성을 만들었지만, 정작 명나라가 막으려 했던 장성 너머에 있는

만주족이 장성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이자성의 농민군과 내부의 손에 의해 산해관이 열렸잖아요.

아무리 철통같이 지킨다고 지켜지는 게 무엇입니까?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성벽이란 우선은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되지만, 이렇게 외부와 담을 쌓고 살다 보니 내부에서 곪아 터지는 겁니다.

명대에 쌓은 장성의 높이는 3-8m이고 폭은 지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넓은 곳은 열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걷거나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넓이라 합니다.

재질은 모두 돌이나 벽돌이 아니었고 진흙이 많은 산서성이나 섬서성에는 황토 성이고

북경 부근은 벽돌로 쌓은 전성이라는군요.

그 이전에는 주로 흙으로 쌓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토성이었고요.

 

축성의 원칙은 "지형을 따르며, 험한 곳을 이용해 장성을 짓는다.(因地形, 用險制寨)"라고 했다네요.

뭐 그게 기본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장성은 주로 능선을 타고 이어져 있으며 까마득한 절벽이나 협곡 등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지었기에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장성도 자연재해로 세월이 흐르며 자꾸 무너지고 또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사라지고...

현재는 약 40% 정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서쪽보다는 동쪽으로 올수록 장성을 쌓은 재료가 돌이나 벽돌로 더 튼튼하고 높이 지었다는군요.

이 의미는 북방 민족이라도 동쪽으로 더 강한 민족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인구가 많은 곳은 벽돌로 제법 단단하고 폼나게 쌓았지만,

사람이 별로 살지 않은 곳에서는 퇴비를 쌓아 올린 위에다 형식적으로 적당히 흙을 덮어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곳도 많다고 하네요.

원래 눈에 보이는 곳은 청소해도 반짝거리게 하지만....

 

재미있게도 중국이라는 나라의 문제는 우리와는 다르게 중원의 세력이 보통 200년 주기로 흥했다 망했다를

반복하는 단명의 왕조였기에 왕조 교체기에 접어들면 20-50년간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게 되며

이 시기에는 장성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겁니다.

관리하는 주체가 사라지면 그곳에 쌓아놓았던 장성의 벽돌이나 돌을 빼다가

자식 놈 집이나 지어주었다는 말이 되겠네요.

 

위의 사진처럼 문이 있는 곳에는 문턱을 만들고 문을 만들어 잠글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안에는 무기고로도 사용하고 병사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네요.

따라서 병사가 이곳에 주둔하며 지켰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이제 제일 높은 곳에 이르면 이곳은 무척 혼잡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걸어 올라온 사람과 위의 사진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사람과 활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이

모두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활차는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고 케이블카는 거의 정상 가까이에 내리는 곳이 있기 때문이죠.

탈것을 편도로 타고 올라와 걸어서 내려가는 방법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러나 장성은 걸어야 제맛입니다.

힘도 많이 들지 않고 걸으며 보고 느끼는 게 더 많을 테니까요.

 

벽돌이나 석재로 쌓은 구간은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 집이나 창고를 짓기 위해 수시로 빼내갔고 흙에다 짚이나

퇴비로 쌓아놓은 곳은 훌륭한 거름이 되기에 장성을 그대로 옮겨다가 밭에다 뿌리기를 반복했을 겁니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지금도 장성은 이렇게 사라지고 있을 겁니다.

 

최근에는 장성의 역사적 가치가 국내외로 알려졌기에 도굴하듯 장성의 돌이나 벽돌을 빼내 팔아먹기까지

하게 되었다네요.

박물관만 살아 있나요?

장성도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습니다.

나라가 평화로우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 장성은 지금도 아랫돌을 빼 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지만, 그 벌금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크기에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허물어지고 있을 겁니다.

 

목적이야 북방 이민족이라는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한 일이겠지만...

이는 권력을 쥔 자가 자기 권세를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닐까요?

원래 힘으로 유지되어야 할 권력이라면 불행한 권력이잖아요.

심지어 벽돌 하나가 사람 목숨 하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공사 도중 죽었을 겁니다.

 

정상 부근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많은 사람이 일거에 모이기에 무척 혼잡합니다.

누구나 이곳에 오르면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니까요.

이제 이곳에서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니 감시탑 꼭대기에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장성을 건설할 때 CCTV를 발명했다는 말입니까?

 

우리 부부도 잠시 정상 부근에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엄청난 사람의 인파입니다.

인해전술이 따로 없습니다.

중국은 만약 장성이 공격받을 때 이곳에 관광객만 집합시켜도 적의 공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겠네요.

케이블카는 바로 정상 부근까지 올라옵니다.

내일은 다른 길로 내려가며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요즈음 산책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강아지를 끌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들은 모두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더군요.

그게 영역이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강아지는 알지 못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여기 저기 표시하며 흘리고 다닌 흔적은 절대로 아닐 겁니다.

만약, 흘리고 다녔다면 집안에 흘린 자국이 되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