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음후 열전 4 - 화장지처럼 술술 풀립니다.

2011. 9. 16. 00:11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사마천의 사기

 

한신은 광무군을 향하여 "저는 북쪽의 연나라, 동쪽의 제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가르침을 주시지요?"라며 의견을 구합니다.

그러나 광무군은 "저는 쫄딱 망한 조나라의 패장이우, 패장은 용기도 없고

나라의 존망에 대해 언급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단지 포로에 불과한 데 어찌 천기누설을 할 수 있겠수?"

한번 빼보자는 게지요.

그렇다고 바로 답을 주면 천박해 보인다고 수군거리거든요.

 

한신은 속으로 '따식 빼고 자빠졌네!' 하지만 겉으로는 공손히 또 고사를 들먹이며 청합니다.

사실 의견을 구하는 것은 예를 차리기 위한 것이지 정말 길을 몰라 묻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속내를 감추고 서로 상대를 알아보는 중이지요.

 

"제가 광무군을 모실 수 있게 된 것은  멍청한 성안군이 공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만약 그 계책이 받아들여졌다면 저는 이미 사로잡혔을 겁니다.

Please~"하며 한 번 더 청합니다.

이때 더 빼면 한신이 혀를 빼버릴지도 모릅니다.

혀가 있을 때 잘해야죠?

사양한다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멋진 말로 해야지 나중에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 잘 써줍니다.

아니면 적당히 지껄였더라도 나중에 사마천의 손끝에서 멋진 말이 나오던가.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실수하고(천려일실:千慮一失) 미련한 덜수도

천 번을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습니다.

미친놈의 말도 성인은 가려듣는다 했습니다."

 

한신은 Yes No의 즉답을 듣고 싶은데 멋진 말도 섞어가며 더럽게 뜸 들이고 있습니다.

눈치를 챈 광무군이 답을 줍니다.

"저의 계책이 쓸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미련한 계책이나마 성의를 다해 Yes~~입니다. "

 

그러고는 한신 장군의 지금까지 업적을 나열하며 장황하게 떠듭니다.

한신은 칭찬에 빠져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듣습니다.

이런 시간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자기 칭찬을 하면 즐겨야 합니다.

 

"지금 장군의 이름은 온 나라에 자자하고 위력은 천하를 흔들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앞날을 분간할 수 없어 쟁기를 놓고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장군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무군은 정말 농부들에게 물어보고 이렇게 아부를 하는 겝니까?

세상에 어느 농부가 전쟁을 하러 온 상대의 장수에게 환호를 하고 명령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거짓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사람은 이상하게도 이렇게 긁어주면 헬렐레하며 좋아하지요.

 

"이 점이 장군의 강점이고 약점은 군사들이 너무 지쳐 피곤하여 연나라 성을 공략하기

어려워 시간만 끌뿐이고 그러면 사기도 떨어지고 군량미도 떨어지면 연나라도 제나라도

공략하지 못하고 유방과 항우의 싸움도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군사에 능한 사람은 불리한 것으로 유리한 것을 치지 않고 유리한 것으로 불리한 것을 칩니다." 

 

'그걸 누가 몰라!'라고 하고 싶지만 '나 안 해~' 할까 봐 한신은 참습니다.

얼굴을 아주 부드럽게 하고는 연인에게 묻 듯... "And?"라고 재촉합니다.

때로는 상대가 뻔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무척 흥미롭다는 듯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듯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말입니다.

 

"먼저 군사를 쉬게 하고, 조나라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고아들을 위로하고, 백 리 사방에서

미국산이라도 좋으니 소고기와 술이 들어오게 하시어 사대부를 대접하고,

장수와 군사들에게 싫건 먹인 후 북쪽의 연나라로 향하십시오.

그리고 사신을 통해 장군의 유리한 점을 보낸다면 연나라는 문을 열어 장군을 맞이할 겁니다.

그다음에 제나라로 말빨이 좋은 사람을 보낸다면 제나라도 제풀에 장군께 엎어질 것입니다.

 

이러면 천하를 도모할 준비는 갖추는 꼴이니 병법에 '소리는 먼저 내고 행동은 나중에'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서로 상처만 남는 전투보다 이렇게 싸우지 않고 이기면 좋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행동이 있습니다.

안다고 '그것은 나도 알아!'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지요.

 

"Good Idea!"라고 하며 앞에다 Great나 뭐 더 좋은 말을 덧붙이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광무군의 말을 모두 듣고 그대로 편지질만 하니 화장지처럼 일이 술술 풀립니다.

정말 지루하고 참기 어려운 시간이 흘렀지만, 효과는 만점입니다.

세상은 때로 남의 의견을 취하는 척하며 일을 도모하면 또 하나의 우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