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부는 바람

2012. 1. 30.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이제 우리는 베이징을 떠날 때가 거의 되었습니다.

베이징이라는 이름은 10세기 이전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연경(燕京)이라 불렀다는군요.

금나라에 이르러 中都라 불렀고 원나라에 이르러는 大都 또는 칸발릭으로 불렸다는군요.

그러니 북경의 지배는 거의 만리장성 너머에 살던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북방민족이었네요.

늘 북방민족에게 지배를 당하던 중국의 한족이 이제 힘 좀 써야 하지 않겠어요?

 

드디어 한족의 희망인 명나라가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도라는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며 평정했다는 의미로

北平이라고 개명했다는군요.

얼마나 철저하게 부숴버렸으면 이름조차 평평하게 폈다고 북평이라 했을까요?

한이 많은 이름처럼 들립니다.

 

그 이유는 한족의 처지에서 오랑캐라는 몽골이 도읍으로 삼았다는 생각에서 더 그렇게 파괴했을지도 모릅니다.

문명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한족이 오랑캐라고 비웃었던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지우고 또 숨기고 싶은 과거였을 겝니다.

속된 말로 쪽 팔리는 일이잖아요.

지금이야 같은 중화민족이라고 모두 안고 산다고 말로만 하지만, 예전에는 어림없는 말이잖아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그냥 황궁이고 뭐고 그냥 둔다면 다시 몽골이 힘을 키워 옛날이 그립다고

"아! 옛날이여~"하며 노래를 부르고 다시 슬금슬금 내려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요?

자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면 등어리에 식은땀이 흘렀을 겁니다.

 

그러다 명나라는 이곳으로 천도하며 영락제 때인 1403년 이후 지금까지 北京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합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아마도 베이징은 아직도 地氣가 도읍으로써 그 힘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로써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중국의 중심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려 합니다.

물론 한때는 세상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 여인 하나 때문에 살림이 거덜 나고 유럽의 열강에게 휘둘리고

모욕도 당했지만, 아직 땅의 기는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는지 웅비의 날개를 퍼뜩 거리고 있잖아요. 

 

베이징은 일 년 내내 바람이 부는 곳이라 합니다.

평지에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라 주변에 산조차 없으니 대륙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북경에 사는 사람은 이런 바람을 이렇게 말한답니다.

 

"베이징에는 일 년에 딱 두 번 바람이 분다.

한 번은 봄에 불기 시작해 가을까지 불고 또 한 번은 가을부터 불기 시작해 이듬해 봄까지 분다."

지금 이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장난하자는 겁니까?

일 년 내내 분다는 말이 아닙니까? 나 원 참!!!

 

그러기에 특히 봄에 부는 바람은 황사로 말미암아 눈을 뜨고 다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민폐는 우리나라까지 불어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날아간다고 합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다 보니 오히려 대륙성 기후로 말미암아 여름에 푹푹 삶고 겨울에는

세상을 꽁꽁 얼리는 곳이지요.

게다가 황사 철이면 미세먼지와 더불어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눈을 뜨고 다닐 수 없는 도시입니다.

 

요즈음 황사만이 아니라 산업화 하여가는 중국의 중금속이 함유된 미세먼지까지 한반도를 덮치고 있습니다.

아직이야 견딘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중국의 이런 먼지로 병이 들 지경에 이를 겁니다.

그러나 중국은 시치미 뚝 떼고 먼 산만 바라보는 나라지요.

대국이라면서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베이징은 평야 지대에 만든 도성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가까운 곳에 산다운 산이 없습니다.

뭐 인공적으로 땅을 파고 호수를 만들며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 있기는 하다는군요.

 

우리와는 다르게 배산임수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 무식하게 평평한 땅에 궁궐을 짓고 도시를 만들었지요.

중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보다 더 주역을 따지고 풍수지리를 따진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알면 알수록 더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워낙 평야 지대에 도시를 건설하다 보니 땅을 파고 호수를 만들고 그 흙을 쌓아 산을 만들고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오히려 인공적이고 계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 북경 지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게 중국인의 생각과 맞아 들어가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사람은 그곳의 모양대로 만들어지고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이런 기후에 살아가는 사람의 의식주는 또 이 사람들만이 지닌 지혜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요.

목까지 꽉 조여 매듯 한 옷차림이나 기름을 이용한 음식문화 그리고 사합원이라는 형태의 집 모양은

기후나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배타적이고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 등...

특히 사합원이라는 집 모양을 보면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만 하고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지요.

 

중국이 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 하지요.

사실은 살기 위한 방편으로 차를 마신 게 아닐까요?

세상에 물이 좋지 않은 곳일수록 음료 문화가 발달했잖아요.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포도주, 중국이나 베트남의 차 문화는 모두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들 속으로 다니다 보면 중국인은 누구나 신줏단지 모시듯 손에는 보온병이나 차를 담아 둔 물병을 들고 다닙니다.

물론 해바라기 씨도 빠지지 않기는 하지요.

 

금수강산 우리나라...

사실 그냥 두레박에 우물물 길어 먹어도 좋기에 밥을 푸고 난 후 솥을 헹구기 위한 숭늉이 최고의 음료수입니다.

그냥 우물가에 바삐 먹지 말라고 바가지에 두서너 개 버들잎 따서 띄어주면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그 버들잎 때문에 왕건은 마누라 하나 더 얻었지요.

세상에 전쟁하러 내려왔다가 우물가에서 마누라를 건진 이는 왕건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나 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나라라고 했던가요?

여행자는 골목만 돌아서면 역사가 있고 마을만 들어가면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모퉁이 돌아가니 신비로운 자연이 있고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묘한 협곡이 있습니다.

없으면 중국인은 인공적으로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런데 다니며 보니 그곳에 있는 이야기가 우리 상식으로는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데 아직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니 佳人이 참 여행자가 아닌가 보네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베이징 올림픽과 연관된 전설까지 생겼다네요.

허베이성 은시 협곡에 가면 바위 모양이 성화 봉송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나무는 죽어 있다는군요.

그런데 그곳에 생긴 전설이 그 나무가 성화대에서 나온 불길에 의해 타버려 그렇게 되었다나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런 중국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번 여행 계획을 중국의 심장인 베이징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중국 여행을 네 번이나 다녀왔고 이번이 다섯 번째이지만, 베이징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佳人의 여행은 촌놈이 하는 변두리 체질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중국의 한 귀퉁이를 슬쩍 쳐다본 듯합니다.

이제 베이징을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 여행도 주요 도시만 정하여 놓고 그곳에 도착하면 어디를 갈 것인가 생각해 보렵니다.

숙소의 예약도 없이 지도만 복사하여 들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지난번 여행처럼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가고,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떠나겠습니다.

제 여행기는 지루하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진과 이야기로 써볼까 합니다.

그 이유는 혹시 저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다닐 초보의 처지에서 쓰기 때문입니다.

초보 여행자 여러분!

佳人이 배낭만 메고 가면 여러분도 가실 수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베이징의 내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지금은 내성에 있던 9개의 문 중 정양문과 덕승문 2개만 남고

외성의 7개의 문 중 영정문 1개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正陽門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宣武門, 阜成門, 西直門, 德勝門, 安定門, 東直門, 朝陽門, 崇文門이 있고

외성의 문은 永定門, 右安門, 廣渠門, 左安門, 廣安門, 東便門, 西便門입니다.

 

그러나 각 문의 역할에 따라 일반인에게는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겠지요.

물을 실은 수레가 드나들었다 하여 水文이라고 한 것도 있고 장례행렬이 드나든 死門, 변을 내갔다 하여 生門,

운하를 통하여 많은 물산이 드나들었다 하여 賣貨門, 평민이 장사하려고 드나들었다 하여 商門이라고

불렸지만, 신중국 건설과 문화 대혁명으로 대부분 철거되고 안타깝게도 지명만 남아 있습니다.

문의 이름으로 보면 주로 방향과 안정을 바라는 글자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대문은 인의예지신이라는 글을 넣어 흥인지문부터 시작해 동서남북의 문 이름을 짓고

가운데 보신각을 두어 믿을 信을 이용했지만...

 

북경의 지하철 2호선은 바로 내성과 일치하기에 내성의 성문은 모두 지하철 2호선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중 정양문은 우리나라의 남대문과 같이 남쪽의 출입문으로 각 성에서 온 관리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드나들던 문입니다.

북경에 당도하면 정양문을 통과하여 고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덕승문은 북경의 북문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북경뿐 아니라 중국 중원을 지키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문인 셈입니다.

軍門으로써 성루에는 수비용 병장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답니다.

전쟁을 위한 출정과 돌아오는 문이기에 승리를 얻는다는 得勝과 비슷한 발음이 나는

德勝門이라 지었는지 모릅니다.

 

정양문 앞에는 箭樓가 아직 남아 있고 덕승문에는 전루만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崇文門에서의 崇자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 崇禎帝의 崇과 같고

宣武門의 宣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宣統帝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왕조의 종말을 알고 이름을 지었단 말입니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완벽합니다.

 

모든 문물과 각 지방의 성에서 드나들었던 문인 정양문의 좌우에 있기에 왼쪽으로는 명을 멸망시키고 

오른쪽으로는 청을 멸망시켰다고 한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네요.

 

그러면 가운데 있는 문인 정양문은 다음 정권의 지도자 중 그 사람의 이름 중에 正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란 말입니까?

아니면 그 외곽에 있는 阜成門의 阜나 朝陽門의 朝라는 이름이 들어간 사람입니까?

문 이름을 지은 사람은 작두 정도는 가볍게 탔던가 봅니다.

신중국의 지도자가 되려면 위에 말씀드린 글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미리 개명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