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량(郭亮 : 곽량)촌의 애상인가(崖上人家).

2012. 5. 25.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오늘도 이곳 궈량촌으로 오는 길은 짙은 운무 때문에 정말 속상하게 합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가장 짜증 나는 게 날씨였습니다.

2시 30분 산 위 마을인 궈량촌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후이시엔에서 2시간, 그리고 숙소인 운대산 안상촌에서 9시 50분에 출발하였으니

모두 4시간 40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부부를 버리고 도망간 빠오처 기사도 아마 이곳 어디엔가 손님을 내리고 돌아갔을 겁니다.

 

우선 여기까지 버스 타고 온 경로부터 살펴봅니다.

이곳까지 빠오처로 오는 차비로 두 사람 100원으로 결정했지만, 우리 부부 둘이서

이곳까지 온 총비용은 41원을 치렀으니 반값도 되지 않은 비용으로 온 셈이네요.

더군다나 들어오는 입장료마저 버스에 자빠져 들어오며 30원까지 절약했고 삔관 주인이

고맙게도 코스를 적어주어 가장 짧은 코스에 시간마저 허비하지 않고 제대로 왔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로 알 수 없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우연히 길거리에서 삐끼의 말 한마디가 

우리 부부를 알지도 못했던 미지의 세상으로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진을 통하여 보시는 모습은 눈을 의심케 합니다.

만약, 이 근방을 지나시는 여행객이라면 이곳을 한번 들려보시기를 권합니다.

최고의 여행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마음에 남는 여행지가 될 것입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입니다.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누더기처럼 생긴 도로가 절벽을 뚫고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치 개미가 집을 지은 모습의 단면도를 보시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제부터 도착부터 우리 부부만의 1박 2일을 하며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하렵니다.

가능하면 자세하게 사진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산 아래서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궈량촌 주차장이 시끌벅적합니다.

이 사람들은 단체 여행객으로 관광버스로 산아래 도착해 우리 부부와 함께 셔틀버스로 올라와

잠시 구경하고는 바로 돌아간다 합니다.

 

우리는 우선 이곳에서 1박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을 방을 구해야 합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골목 안에 숙소를 구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방입니다.

하룻밤 자는 데 30원을 주었습니다.

이제 이런 시골 마을의 방값은 우리가 보면 대강 알 수 있네요.

이런 곳은 여권을 보자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숙소도 있더군요.

 

만선산(萬仙山) 기슭에 험한 절벽이 있고 그 절벽 위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궈량촌 사람들.

이런 멋진 곳임에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접근성에서

무척 불편하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인에게는 짧은 여행기간 동안 돌아봐야 할 곳이 너무 많기에

이런 오지까지 찾아간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곳이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백수 여행자에게는 딱입니다.

 

절벽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계곡에 홍석교(紅石橋)라는 작지만, 예쁜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이 아래를 지나며 계곡이 시작되어 엄청난 높이의 절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다리였다는데 국공내전 후 팔로군이 사용하기 위해 주민과 합작으로

돌로 다리를 만들었다 하는데 젠장! 이런 오지마을에도 내전의 상처가 남아있네요.

 

점차 계곡이 깊고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이곳을 오게 된 것은 우연입니다.

우리 부부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의 시간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우리를 버리고 빠오처 기사는 훌쩍 가버렸지만, 우리 부부 힘으로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이런 곳이 또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이곳을 찾으시는 분도 많아지지 않겠어요?

관광버스를 타지 않고 직접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서 말입니다.

그 사내는 우리를 배신했지만,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 이런 모습을 즐길 수 있게 하였으니

감사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사내는 전생에 우리의 은인이었을 겁니다.

 

이제 마을을 돌아다니며 묻고 따지고 공부해 보렵니다.

河南省 辉县市 沙窑乡 万仙山 风景区内에 두 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하나는 난핑(南坪 :남평)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궈량(郭亮 : 곽량)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위치는 산서성과 하남성 경계에 있는 만선산 풍경구 매표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주위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교통마저 불편한 곳입니다.

 

점차 이 마을의 모습이 얼굴을 나타냅니다.

정말 기이한 동네로 이런 가파른 절벽위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이들은 분명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네요.

마을로 올라오는 저 절벽을 누가 뚫어 길을 냈으며 언제 만들었느냐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런 깊은 오지까지 들어와 살았을 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겁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마저 삼켜가며 숨어 지낸 그 이유 말입니다.

 

우리 부부도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왔지만,

그러나 둘러보고 난 후의 소감은 우리에게는 경기를 일으키게 할 만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저 개미집처럼 생긴 길이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나 기계를 이용해 만든 게 아니라 마을 사람이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으로 쪼아가며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어디로 오르내렸단 말입니까?

여기는 타잔도 식겁할 높이가 아닌가요?

 

우리가 말로만 들었던 우공이산이라는 곳을 몸소 실천한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리석을 할배 우공이 미리 이곳에서 연습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우공 할배가 이곳의 모습을 보고 산을 옮기겠다고 칭얼거렸던가.

만리장성을 쌓은 민족이기에 이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니겠지만,

한국사람에게는 대단한 모습으로 보이네요.

 

사실 우공 할배는 삽질 몇 번 하지 않고 과아씨의 도움으로 산을 옮겼다고 후세에

이름을 남겼지만, 궈량촌 사람은 직접 손으로 정을 들고 몇 사람의 목숨까지 희생하며

바위를 깨며 저 길을 만들었기에 더 위대한 게 아닐까요?

순전히 말로만 생색낸 우공 할배는 이 마을에 오면 빠떼루 받을 겁니다.

 

여행이란 삐끼를 따라가기도 하고 우리 부부처럼 삐끼에게 버림받고 오기로 찾아가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길을 가다 사진 한 장을 보고도 찾아가고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보고도

 찾아가는 게 여행입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이 길을 보고 사진 외에는 설명이 없다면 남미 안데스 산맥의

어느 곳인가 했을 정도의 길이 아닌가요?

 

위의 사진을 가까이 당겨보았습니다.

중형 버스 한 대가 간신히 빠져 다닐 정도로만 굴을 뚫었네요.

저 길을 걷는 사람도 보입니다.

마을의 위치는 절벽 위에 형성되어 예전에 길이 없었을 때 어찌 오르내렸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 부부는 절벽장랑이라고 부르는 절벽에 만든 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관경대가 있는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우리 부부가 걷는 길 바로 왼쪽 아래는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곳과 마찬가지로 천애 절벽입니다.

지금 이 절벽 위에 사람이 사는 집이 여러 채 있습니다.

제일 처음 네 가족이 이곳에 절벽 위에 터를 잡았다 합니다.

 

여기에 있는 네 가구는 모두 백 년 이상 견디며 묵묵히 절벽을 바라보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명나라 말기에 짓기 시작한 집으로 이곳은 기둥만 나무로 세우고 나머지 벽이나 지붕은

주로 돌로 단순하게 지었다 하네요.

비록, 단순하게 지었다고 해도 무척 튼튼하다 하네요.

이 집은 백년고거 애상인가(百年故居 崖上人家)라는 이름의 집입니다.

글자 그대로 백 년도 넘은 집으로 낭떠러지 위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겠지요.

애상인가라는 말속에 많은 사연 또한 담고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이 사는 집은 내려다보기도 겁이 나는 낭떠러지 위에 지은 집이라는 의미로

애상인가(崖上人家)라고 부르나 봅니다.

높이가 해발 1.297m에 이르고 절벽 끝과는 불과 10m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명말 청초 시기에 애상인가가 나무와 돌로 세워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하네요.

물론 그 이전부터 이곳에는 아픈 사연을 안고 피난 온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는군요.

 

절벽 위 139m 높이에 집을 지었기에 애상인가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린다 생각되네요.

이 집의 형태는 전형적인 태항산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민거형태라 합니다.

그런데 밤에 등어리가 근질거려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요?

캄캄한 밤에 탁배기라도 걸치고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오다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내일도 또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혜란 평생 말을 하고 싶을 때마다 참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보낸 시간의 보상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佳人은 작은 일에도 이렇게 많은 말을 하며 살아옵니다.

그래서 佳人은 지혜롭지 못한 가 봅니다.

여기에 살았던 사람도 왜 사연이 없고 말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그 아픈 사연 모두를 그냥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고 조용히 살아왔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