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량촌의 고류유풍(古柳遺風)

2012. 5. 26.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이제 다시 걷습니다.

애상인가(崖上人家)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왼쪽을 내려다보면 궈량촌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마을을 대표하는 절벽 장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관경대가 서너 개 있습니다.

그 관경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모두 달라 하나씩 서서 바라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일 위의 사진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절벽장랑으로 올라오는 길입니다.

이런 모습이 여기에 사는 사람의 굴곡진 삶을 보는 듯합니다.

 

관경대의 모습은 마치 제사를 지내는 제단처럼 생겼습니다.

직벽 절벽 위에 기둥처럼 우뚝 솟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찔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곳에도 한글이 있습니다.

난간을 넘지 않도록 바란답니다.

난간을 넘으면 그곳이 바로 천애절벽인데 누가 감히 넘으려 할까요?

뽕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이곳 경관대에 서서 바라보는 광경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뿐입니다.

붉은 색깔의 석영 홍암이 만든 절벽은 장관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석양이 질 때, 이 자리에 서서 붉은 절벽에 비치는 저녁노을의 색깔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겠어요?

젠장! 오늘은 뿌연 운무에 덮여버렸습니다.

 

이곳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천지라고 부르는 연못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물이 많지 않아 그저 그런 풍경이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는

이 또한 대단한 장관이 아니겠어요?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릴 듯합니다.

그리고 절벽 위로 애상인가(崖上人家)라고 부르는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저런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오는 이 마을 사람이 대단합니다.

인간의 삶은 정말 위대합니다. 

 

먼 산의 봉우리가 중첩해 보이고 가장 높은 태항산 위로 장밋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라도 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줌이라도 저릴 만큼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이런 곳이 바로 해 뜨는 집인가요?

 

그 절벽 위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국에서 산다는 게 무슨 아크로바틱입니까?

애상인가(崖上人家)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벽 끝으로 갈라진 틈이 보이시죠?

그 위에는 관경대를 만들어 구경하는 사람을 식겁하게 하여 놓았습니다. 

 

10억 년 전에는 이곳은 바다였다고 하네요.

칫! 10억 년이라 해도 이제는 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우리 생각에 천 억년 전이라 해도 그게 그거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운대산 홍석협에서 본 것처럼 이곳도 붉은색의 석영 사암으로 이루어진

곳이기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천지개벽 한 곳이 무척 많습니다.

제법 이름난 석림이나 장가계 등 모두가 옛날에는 바다였다가 천지개벽해 지금은 육지라

한다는데 중국은 원래 바다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도 머나 먼 필리핀 앞바다까지 가서 그곳도 자기네 영해라고

힘을 앞세워 윽박지르고 있잖아요.

 

태항산 한쪽에 바라만 보아도 아찔한 절벽이 있었다네..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경이 있는 그곳에 바로 궈량촌에 있다네..

돌로 지은 집 위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감미로운 바람은 귓불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네..

농부는 애상인가(崖上人家) 위에서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간다네..

 

절벽 끝으로 슬그머니 다가서 아래를 흘낏 내려다봅니다.

저 멀리 아까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길이 보입니다.

오늘도 운무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을 바라보니 제법 많은 사람이 절벽에 낸 길을 따라 풍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흔히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태항산(太行山)은

많은 분이 아시고 계십니다.

특히 한국의 산악회에서 자주 트레킹을 오는 곳이기도 하다는군요.

여기도 태항산맥의 한 귀퉁이지 싶습니다.

 

궈량촌이 있는 마을의 산에는 신선(神仙)의 산이라 불리는 만선산(万仙山)이 있습니다.

신선이 하나만 있다면 그저 그런 곳이겠지만, 만선산이란 신선이

떼거리로 모여 산다는 산이 아니겠어요?

왜?

산이 기가 막히게 좋으니까 모여 살겠지요?

 

山不在高(산부재고) 有仙則名(유선즉명)
水不在深(수부재심) 有龍則靈(유룡즉령)

산은 높아서만 명산이 아니라네
신선이 살아야 명성을 얻고,
물은 깊어서 신령한 게 아니라네
용이 산다면 저절로 영험해지지.

 

바로 만선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절벽을 따라 만든 장랑을 오르면 궈량(郭亮 : 곽량)촌이

있으며 지금 위의 사진에서 보시듯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홍암절벽을 뚫어 길을 내고 절벽장랑이라 부르는 터널을 통하여 한참 오르다 보면

절벽 위에 마을이 있어 그 마을을 궈량촌이라 부릅니다.

우리 부부는 내일 아침 배낭을 메고 저기 보이는 절벽장랑을 걸어서

 구불거리는 저 길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여기에 구경 온 사람 대부분은 절벽 위 마을에서 잠시 가까운 절벽장랑을

걸어보고는 다시 올라옵니다.

 

아마도 예전에 사람의 왕래가 없었을 때는 신선이 가끔 이 마을에 마실 내려왔을 겁니다.

지금은 마을로 들어가는 절벽장랑 만들어진 후부터는 외부사람이 자주 찾아오니

신선들이 발을 끊었을 겁니다.

왜?

신선이 놀던 곳에 인간이 노니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요즈음 신선들은 이렇게 인간에게 숨겨놓고 놀던 곳이 대부분 들통이나

어디에 가서 노나 모르겠네요.

 

누더기처럼 보이신다고요?

개미집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보고 느끼면 그게 바로 이 마을의 모습이 되니까요.

 

이 마을을 찾아가시는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산악회 회원들로 주로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가기에 우리처럼 시외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가는 경우가 별로 없어

가는 방법이 많이 알려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배낭여행자가 시간을 내어 오지로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꾸 이렇게 알려지고 직접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방법이 알려지게 되면

많은 사람이 찾아가지 않겠어요?

 

문제는 자유여행자에는 연결 교통이 좋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부부처럼 화가 나서 오기로 찾아간다면 몰라도...

그래도 의지만 있으면 이런 오지도 찾아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그런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잖아요.

그래도 어렵게 찾아왔지만,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천히 산책합니다.

도로 교통 안내판도 게으르게 걸으라는(?) 만(慢)이라 하였네요.

울 마눌님 보세요.

끄 하하하~ 뒷짐 지고 정말 아주 건들거리며 慢에 충실히 따르며 걷고 계십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아까 올라올 때 갈라진 마을인 난핑(南坪 : 남평)마을로 이어진다

하니 한 바퀴 원을 그리며 걸어보면 좋겠지만, 우리 부부는 내일 절벽장랑을 따라

걸어 내려갈 생각입니다.

배낭이 무겁지만 않았다면 걸어서 올라와 이곳에서 자고 다음날 이 길로 난핑마을로 내려가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후이시엔이나 신시앙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이 마을을 찾아오며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마을 한가운데 하얀 종이를 덮은

이런 모습의 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돌밭이라 이렇게 돌로 무덤을 만들었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덤 위에 하얀 종이를 덮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얀색이 죽은 혼령을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덮어 놓았나 봅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지역에 따라 노는 귀신도 이렇게 다릅니다.

 

우리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에 잠시 서서 생각해 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산속에 있느냐, 밭 귀퉁이에 있느냐 아니면 집안 가운데 있느냐입니다.

결국, 잠시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지 세월이 지나면 세상 어느 누구나 같아집니다.

죽고 나면 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습니다.

살아생전 움켜쥐었던 하찮은 어느 것도 저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머니조차 없는 수의에 무엇을 넣어가시렵니까?

 

권력의 중심에 서서 체할 만큼 주워 먹은 자.

그런 자에게 빌붙어 한쪽 다리 잡고 살았던 자는 지금도 털면 계속 나오는 친인척.

무능하면 깨끗하기라도 해야 하는 그런 무리가 그것도 권력이라고 저지른 부정에 뻔뻔스럽게

버티는 흉물들. 부디 마지막 가는 길에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기를 바랍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무는 이 마을에서 제법 오래된 나무라 합니다.

돌밭에서도 저렇게 오래도록 살아가네요.

그래서 이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었나 봅니다.

 

고류유풍(古柳遺風)이라고요.

그 의미는 오래된 버드나무의 남겨진 센스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얽힌 이야기나 듣고 갑시다.

물론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냥 맹숭거리며 걷기도 그래서...

 

아마도 서한(西漢) 말기 때였을 겁니다.

후에 광무제가 된 유수(刘秀)가 왕망과의 어느 전투에서 패하고 줄행랑을 칠 때라 합니다.

하늘이 지금은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몰래 태항산 줄기를 따라 줄행랑을 칠 때

유수는 우연히 이 버드나무 옆을 지나게 되었답니다.

 

이곳에는 버드나무가 많았으며 잎사귀가 무성한 버드나무 숲 속으로 몸을 숨기기가 무척 좋았겠지요.

숨어 지내기는 좋았으나 보시다시피 이 산속에는 돌산이라 먹을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하도 배가 고파 버드나무 잎을 따서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합니다.

과연 사람이 버드나무 잎만 먹고살 수 있을까?

중국이니까 믿어야 편하실 겁니다.

 

여러분은 저를 비웃었지요?

그게 이 버드나무라고 저보고 증명하라고 하고 싶은 거 잘 압니다.

물론 아니겠지만, 이곳에는 그런 사연이 전해진다 하네요.

이런 말을 이곳에 쓰고 있는 제가 저도 무척 밉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버드나무 잎을 따 바가지에 띄워 건네면 애정이 샘물처럼

펑펑 솟아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같은 버드나무라도 나라에 따라 이렇게 다른 해석이라니...

우물 가에는 앵두나무도 좋습니다.

동네 처녀 바람나게 한 나무니까요.

 

유수(刘秀)는 후에 왕망이 유현을 토벌하러 보낸 신나라 100만 대군을 곤양(昆陽) 전투에서

패배의 쓴맛을 안기고 다시 권력을 잡은 후 이곳에 있는 고류(古柳)인

버드나무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나요?

마땅히 그때의 공을 생각해 나무에 딱히 해 줄 게 없어 멋진 이름을 하사했다 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봉공류(奉公柳)라고요.

우리나라에도 속리산에 정삼품 송처럼 나무에 벼슬을 내린 곳이 있지요.

물론 중국인 여기에도 있더군요.

 

세월이 흐르며 버드나무도 점차 퇴색되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마을의 버드나무는 언제나 나뭇가지와 파란 잎은 한창때처럼 태평성대를

칭송하며 노래하는 듯하다고 하네요.

우쒸~ 정말 신통방통한 일이 아닙니까?

이 험준하고 척박한 절벽 위의 작은 마을에도 버드나무에 얽힌 사연은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전설의 고향 원조 나라임에는 틀림없나 봅니다.

 

이곳 태항산에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목줄을 끊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을 기리는 고개인 

왕망령도 있고 유방의 먼 후손이라고 우기며 왕망의 시대를 끝장낸 유수를 기억하여

이름을 붙인 유수 성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천하를 두고 옛날에도 싸웠지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곳에 이름으로 남아 서로 째려보고 있습니다.

다시 내일도 더 걸어 보며 궈량촌을 살펴보렵니다.

이 동네는 산책하며 다니기에는 그만인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이란 내가 걷는 만큼 내 여행이 됩니다.

내가 살아온 만큼 내 인생이 되듯 말입니다.

많이 걸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고

적게 걸으면 적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여행만 가면, 가능하면 많이 걸어 다니려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