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禪讓)이라는 것...

2013. 2. 23.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중국인이 요순시대에 행해 젔다는 선양(禪讓)이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렵니다.

왜?

삼국지에도 선양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요.

삼국지 중 중국 후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인 유협은 9살의 어린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협은 왕 미인의 아들로 십상시 척결에 앞장선 하진의 여동생이 낳은 유변을 황제에

올리려 했지만, 결국, 동탁에 의해 하진의 꿈은 사라지고 협이 변을 제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미 나라는 거덜 난 상태고 지방은 황건적의 난으로 스스로 군사를 모아

자신도 지키기 어려웠지요.

위의 사진을 보시면 아마도 그 유명한 십상시일 겁니다.

벗겨보지 않아도 수염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그래도 명색이 漢 나라의 황제라...

 

즉위 다음 해 동탁의 주도하에 수도를 장안으로 옮겼지만,

동탁마저 여포에 주살 당하자 수도를 뤄양으로 다시 옮겨가게 됩니다.

그 후 허난성(河南) 쉬창(許昌)으로 옮겨 조조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다

결국은 220년 조조의 아들인 조비에게 한나라를 그대로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하며 산양공으로 봉해집니다.

 

 

선양...

정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선양이란 황제의 자리를 스스로 인척이 아닌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말입니다.

요즈음으로 친다면 능력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임시로 맡기는 게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넘겨준다는 말입니다.

왜?

회사란 나만의 회사가 아니라 전 직원의 회사니까요.

천하란 나만의 천하가 아니라 모든 민초의 천하라는 말이잖아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아무 조건이나 토도 달지 않고 말입니다.

중국인은 선양이라는 일에 대해 조상의 자랑 중 하나라 여기나 봅니다.

 

 

위의 사진은 헌제가 조비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무릎을 꿇고

조비 앞에 엎드려 제발(?)황제의 자리를 받아달라고 애원합니다.

혹시 거꾸로 생각하신 분이 계시면 옥좌에 앉은 사람이 조비고 그 앞에

머리 조아리고 엎드린 사람이 황제인 헌제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저때 조비는 뭐라했겠어요?

"왜 이러십니까? 황상!!! 저는 황제의 자리를 바라지 않습니다.

충심으로 제가 황제를 보필하겠습니다." 이랬으면 오죽 좋겠어요.

"하고 싶지 않지만, 간곡하게 맡아달라고 애원하니 그럼 맡기로 하지요.

싫은데, 정말 싫은데 여러차례 간곡히 애원하니 억지로 하는 겁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저 조비가 앉은 자세를 보세요.

 

그런데 헌제가 저 자리에서 선양하며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며

佳人에  뭐라고 중얼거렸을까요?

"지랄 같구나! 오늘에야 알겠구나! 요, 순 임금시대에 선양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오늘에서야 분명히 알겠구나~" 정말이냐고요?

중국어도 모르는 佳人을 그럼 정말 믿으셨단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주변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톱니바퀴 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게 바로 중국인들이 조상의 아름다움 미덕이라고 자랑하는 선양이라는 행위입니다.

한마디로 지랄 같은 아름다운 일인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중국 역사에 남아있는

선양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요?

개떡같은 짓이란 말입니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천하입니다.

영웅은 천하를 원하지만, 천하는 절대로 영웅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영웅 놀이에 민초가 너무 피곤하니까!

 

 

요는 천하를 순에게 넘겼고 순은 그냥 얻은 천하라 아무 조건 없이 다시 우왕에게

넘겼다고 자랑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더럽고 아니꼬와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말이지요.

오죽했으면 헌제가 조비에게 황제 자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양하며 중얼거렸던

저 말에 선양의 말 못할 사연이 있지 않겠어요?

오죽, 더럽고 치사하면 황제 자리를 그냥 조건 없이 던져버렸겠어요? 그쵸?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나라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양위하려 하자

순임금이 거절했답니다.

이게 생쇼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임금은 그냥 제위만 물려주려니 적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마트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하나 더하기 하나 행사처럼 덤을 더하기로 합니다.

 

그게 바로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공주를 그것도 둘이나 얹어서

왕의 자리와 함께 넘겨주니 기다리고 있듯이 금방 헬렐레하며 받더랍니다.

그러니 그냥 바로 받으면 남의 눈치가 보여 한번 튕겨보는 것인데 머리 나쁜

사람은 받지 않겠다고 그냥 도로 거두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평생 고통받으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죽은 경우도 있지요.

 

여기서 선양의 실체를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지요.

그냥 황제의 자리만 넘겨주지 않고 자기 딸을 둘씩이나 함께 넘겨주었다는

말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조조의 아들 조비가 바로 이런 전철을 밟아가며 헌제가 스스로

머리 숙이며 선양을 하게 합니다.

주변의 힘을 동원해 협박과 겁박에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요.

그래서 요임금이 했던 그대로 두 황녀를 조비에게 보냈으나 그래도 또 튕기죠.

뭐라고요?

"아니 아니 아니 돼 옵니다~ 황상의 자리는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만약, 이럴 때는 "정말 싫으면 고만 두고!" 라고 물리게되면

평생을 고통속에 살다 결국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됩니다.

일단 던지려고 마음 먹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 던져버리셔야

그래도 목숨만은 건질 수 있습니다.

 

 

드디어 딸도 보냈고 좋은 날을 잡아 직접 옥쇄를 들고 찾아가 프리즈를 연발하며

제위를 받아달라고 간청하여 마지 못해 조비는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어찌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쵸?


헌제는 당장 그 자리에서 돌아서 나오니 조금 전까지 황제니 뭐니 하며 굽실거리던

문지기도 헌제를 유 서방으로 불렀다잖아요.

"어이! 유 서방! 일 다 봤쪄? 이제 어디로 갈 꼬야~"라고요.

환장할 일이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사람이 잘나서가 아닌데 우리는 그걸 모릅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가지 않는다잖아요.

아랫사람이 굽실거리면 그게 내 의자 보고 절을 하는데 나 자신에 절을 하는지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의자에 늘 절을 하며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높은 자리 있어 사모님 소리 들으며 사는 사람도

자기가 정말 존경받는 사람인지 안다니까요.

 

 

선양의 조서를 낭독한 후 바로 "꿇어!" 단계에 들어갑니다.

무릎을 꿇자 조비는 워낙 정이 많고 후덕한 인물로 헌제를... 아니 유 서방을

산양공(山陽公)에 봉하고 멀리 떠나 여생을 편히 즐기라 목숨만 살려줍니다.

"떠나고 난 후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마~ 만약 어깨 너머라도 눈길 주면

그때는 죽을 줄 알아~"라는 눈 인사말도 빼놓지 않고요.

 

이렇게 헌제는 그날 저녁에 몇 사람의 식솔만 거느리고 당나귀를 타고 먼 시골로

내려가 버림으로 지금까지 황제라고 머리조차 들지 못하던 녀석들이 떠나는 황제에게

"어이~ 유씨!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 하지도 마! 알았쪄!"하며

윽박지르기까지 합니다.

그동안 나를 보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 내가 입은 곤룡포였습니다.

 

이렇게 400여 년을 이어온 한나라는 이제 폐업하고 만겁니다.

법정관리라도 들어가면 나중에 다시 희망이라도 있지만, 폐업하고 나니 모든 게 끝입니다.

그래도 동탁이니 조조니 하며 법정관리에 있을 때는 그나마 의인이 나타나 다시 가업인

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아!!! 오늘은 왜 이리도 조조가 그립습니까?

그래도 친척입네하며 종씨라고 교언형색을 했던 유비는 촉이라는 먼 곳에 짱 박혀 소식조차

없다가 내가 선양을 마쳤다는 소식에 며칠 우는 척 하다가 눈물도 마르기도 전에 저도

황제라고 바로 촉한 개업행사를 거창하게 하고 황제 자리에 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

모두가 비웃는 덜 떨어진 띨띨리우스인 아들놈에게 2세 황제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잖아요.

 

 

그러나 헌제는 귀향 도중에 바로 죽게 됩니다.

유비는 헌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천하가 울리도록 울지요.

왜?

천하가 유비가 슬퍼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조조도 아비가 죽었을 때 천하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고 서주를 침공해

쑥대밭을 만들고 자기 영역을 넓혔잖아요.

유비도 이제 황제에 오를 일만 남았다는 의미로 더 크게 소리 냈을 겁니다.

조조가 했던 일을 그대로 유비도 따라 합니다.

원래 유비는 따라쟁이입니다.

한중 왕에 오르는 일부터 유방의 일을 그대로 답습 마케팅에 열심이었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6개월 정도 지난 후 청두에서 황제에 바로 오르는

즉위식을 했다는데 사실 이런 큰 행사를 하려면 새로 즉위식을 올릴 누대도 만들고

하늘에 비는 행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6개월도 부족할 수 있지만, 일사천리로

진행하면 유비처럼 6개월 만에 가능하기도 하겠네요.

 

 

단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종불이천하지병이리일인(終不以天下之病而利一人)

우리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라 생각하는 요순시대에 요(堯)임금이 아들에게

왕위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순(舜)임금에게 물려주며 했다는 말입니다.

 

이를 일컬어 선양(禪讓)이라고 했던가요?

중국이 자랑하는 일 중이 하나이지요.

그런데 그게 누가 보고 기록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다만, 사마천의 사기 중 오제본기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사기를 쓴 시기가 한나라 시기였으니

개인의 주관적인 소설같은 이야기는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런데 다른 기록도 있다고 하네요.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 서진(西晉) 시대인 함녕(咸寧) 5년

(서기 279년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기 한 해 전입니다.)

하남성 급현(汲縣)에 있는 전국시대 위(魏)나라 양왕(襄王)의 무덤이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는데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죽간(竹簡)이라는 것에 쓴

죽서기년(竹書紀年)을 비롯하여 10만 자가 넘는 고서가 발견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죽간에 우리가 선양이라고 추앙하던 요순시대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답니다.

요 임금은 순에게, 순임금은 우에게 각각 살해당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남아있답니다.

 

 

순자나 한비자도 후자에 힘을 실었고 맹자조차 만장편에서 "요의 궁궐에 살며

요의 아들을 공격하니 이는 찬탈이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요임금도 순임금도 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동양인에게는 혈연에 대해 유난히 더 애착을 느끼는 게 일반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감금당했고 아들 단주(丹朱)는 추방될 정도로 말년에

힘의 균형이 순임금에게 넘어갔다 합니다.

 

순임금도 마찬가지로 우임금에게 똑같이 당했답니다.

그 후 하왕조를 세운 우임금 때부터 아들에게 세습하는 일이 제도화 되었다고 하니...

우임금은 전대의 일을 자세히 보았기에 선양이라는 허울을 버리고 아들에게 양위했나 봅니다.

더는 쓸데없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제도화 시킴으로 말입니다.

위의 사진이 치수의 황제라는 우임금입니다.

 

 

중국의 황제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도 반은 제 명까지 살지 못하고

살해당함으로 일찍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고 하니 누가 세상의 중심인가 모르겠습니다.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이 한 사람을 위해 민초의 입을 묶어버린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찌 보세요.

뭘?

선양이라는 말 말입니다.

"저는 3D로만 봅니다."라고는 하지 마시고요.

 

내일은 예정에도 없이 소림사를 갑니다.

작년에 그곳을 지나며 시간이 없어 들리지 못한 곳으로 이번 여행에 쉬창으로 경로를

벗어나는 바람에 뤄양으로 가려다 중간에 있는 소림사에 잠시 들렀다 가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같은 민초는 경로당에서 친구와 장기를 두다 물려달라, 못 물려준 다로 다투었다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또 점에 100원밖에 하지 않는 고스톱판에서도 돈 잃고 속상하신 점은 없으세요?

그런데 통 크게 나라를 무상으로 물려준다고요?

적은 돈 잃고도 속 좋은 사람 별로 없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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