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제국의 꿈

2011. 7. 8. 00:03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원래 자식이 장성하여 술탄에 오르지 못한 자식은 어머니와 함께 궁을 떠나야 하는데

록살라나는 그 후에도 술탄의 곁에서 생활했다고 하네요.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술탄의 여인으로 만들었을까요?

 

슐레이만 대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어화둥둥 내 사랑~ 나의 친구, 나의 존재,

나의 바그다드, 나의 술탄."이라고 노래했을 정도라고 하니 미쳤어, 정말 미쳤어~ 헐~

미인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슐레이만이 평생 허우적거리며 살았다고 하니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술레이만 1세의 시대는 그 영토가 북아프리카부터

유럽의 중앙부, 근동까지였으며 유럽인구의 1/3이 술레이만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네요.

그에게 하나의 약점이라면 바로 여자였습니다.

특히 애첩인 록살라나 말입니다.

아닌가요?

오히려 그의 힘은 바로 록살라나로부터 나왔나요?

 

그녀는 노예의 신분에서 출발해 본부인도 물리치고 왕비의 자리까지 오른 여인입니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고...

전처의 아들이 자신이 낳은 아들의 앞길에 당연히 방해됩니다.

 

그러면 어쩌나요?

그렇습니다.

방법은 단 하나..... 죽여야 합니다.

누가? 바로 칼리프인 술레이만이 스스로 본처의 아들을 죽이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손도 대지 않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결국, 자기가 낳은 아들을 술탄의 자리에 올리게 됩니다.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한 술레이만이 언제나 록살라나의 의견을 구하고

행동했다는 일은 아이러니하네요.

강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에게는 사실 자신이 약하기에 일부러 강하게 보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아야 소피아를 만든 유스티아누스 황제도 그의 부인은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천민 출신의

무희였는데 반란이 일어났을 때 황제는 피신하려 했지만, 부인은 황제의 붉은 망토를 스스로 걸치고

이 옷이 나의 수의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용병을 격려하며 난을 진압하게 되었지요.

 

얼마 전 방영된 동이라는 드라마...

황제도 사랑이라는 강은 건너기 어렵나 보네요.

새상을 호령하는 영웅호걸도 뒤집어 놓고 털어보면 가끔 이런 일도 있네요.

 

佳人이요?

사내가 쪼잔하게 이게 뭡니까?

佳人은 집에서는 황제입니다.

마누라! 나 잘했쪄?

 

당시 왕궁에는 처첩들 간의 자기 아들을 술탄에 올리기 위해 다른 여자가 낳은 아이를

무참하게 살해하는 일도 많아 이런 노래가 은밀하게 불렸다 합니다.

술탄의 여자가 머무는 하렘에는 수천 명의 여자가 있었습니다.

동진의 무제인 사마 요는 만 명의 후궁을 거느려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많은 자식을 두게 되고 그를 낳은 여인은 내 자식을 술탄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암투가 무척 심했을 겁니다.

 

중국의 강희제가 가장 많은 자식을 두었다는데 아들이 36명이었고 딸이 20명이었다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왕건이 29명의 부인으로부터 아들 25명에 딸 9명을 두어 기록이라 합니다.

왜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돌마바흐체 궁전 안에는 이런 노래가 은밀히 유행했다 하네요.

 

지난밤에 몰래나가 아이하나 손봐주고

살그머니 들어와서 이부자리 살펴보니

그사이에 어느누가 몰래몰래 다녀갔나

꼭꼭 잠근 내실문이 살그머니 열렸구나

내아들이 자고있는 금침이불 들춰보니

에고에고 어찌하나 내자식이 죽어있네

한평생을 소원하여 아들하나 낳았더니

에고에고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구나

 

정말 이런 노래가 불렸느냐고요?

佳人을 잘 아시잖아요?

무조건 아니면 말고입니다.

 

자기의 아들을 마지막 한자리인 술탄에 올리기 위해 다른 여인이 성은을 입어 생산한 아이를

정말로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합니다.

어느 후궁의 일기에 "다른 아이를 처리하고 돌아와 보니 내 아이가 죽었더라!"라는 글이 있었다 하니...

그 안의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상은 2등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평창처럼 1등이 되어야 환호를 합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당시에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기에 이런 규모의 건축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함으로

오스만 제국의 숨통을 조여왔다고...

 

사실 오스만 제국은 이 궁전을 지을 시기에 이미 그 세력을 다하여, 지는 석양의 신세였지만,

그런 대공사를 함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속셈으로 시작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수명을 재촉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래도 지는 석양의 저녁노을은 무척 아름답지 않았을까요?

 

일찍 핀 꽃이 일찍 시든다고 했습니다.

이미 노회 한 대 제국을 어떻게 요리할까를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궁리하던 시기에

이런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지요.

 

사무실과 집무실을 포함해 방만 285개, 연회장이 43개, 건설기간이 11년이 걸린 대공사였습니다.

책가방 크다고 공부 잘합니까?

돌마바흐체 궁전 건설 책임자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카라바트 발얀이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그는 유럽의 궁전에 대해 연구를 했던 사람이라 하네요.

내부 장식에 쓰인 금만 14톤이었다 합니다.

 

이후 6명의 술탄이 이곳에서 지냈다 합니다.

보기는 좋아도 터는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완공된 해가 1853년이니까 메흐메드 2세가 20만의 대군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피의 그믐달'이라는 이름으로

함락한 지 정확히 400년이 지난해였습니다.

마치 400주년을 기념하기라도 하기 위해서...

 

내부를 둘러보면 그 화려함에 눈이 어지럽습니다.

집무실과 연회장 그리고 하렘 시설로 나뉩니다.

아무리 저무는 석양이라도 주변의 나라에서 집들이한다는데 모른 척 입을 닦을 수 있나요?

 

영국 여왕 빅토리아도 제법 큰 선물 하나를 보냈더군요.

바로 샹들리에입니다.

무게만 4.5톤에 보헤미안 램프가 750개로 대단한 것이라는 건 우리 같은 여행객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렘은 집무실 뒤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복도는 회랑으로 꾸며 오스만 제국의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여자들이 오스만 남자의 용맹함을

알고 있으라는 의미로 걸어두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많은 여자는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암투를 벌였으며 나중에 제국이 멸망하는 계기가 바로

이 하렘이라는 제도도 일조하였다 합니다.

네 명의 아내는 이슬람 율법에 허용하는 것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첩을 셀 수도 없이 둘 수 있는 게

이슬람 세계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하렘이라는 곳에는 많은 여자가 있었고 모두 성은을 받기를 고대하였을 겁니다.

어쩌다 천운이 닿아 성은이 망극하여 별이라도 따 새끼 술탄이라도 생산하면 당장 대우가 달라지지요.

처음에는 용인지 알았는데 나중에 이무기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겁니다.

한 마리의 잘 키운 용은 백 마리 이무기보다 더 좋습니다.

 

우리가 약 1시간 동안 장님 코끼리 만지듯 잠시 둘러보고 나온 것도 돌마바흐체 궁전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며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마치 옛날 고향 집에 돌아와 있는 듯...

 

쓰러져가는 제국을 추슬러 새로운 나라인 터키 공화국을 건설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돌마바흐체에 거주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로 여겨집니다.

그는 제국의 무능함과 잘못된 관행을 거부했던 인물이지만,

아름다운 돌마바흐체의 화려함과 안락함은 케말조차도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제국의 상징인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에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지만,

그가 이곳에서 외국 사신도 만나고 의전행사도 하며 말년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한 곳은 돌마바흐체였습니다.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근대 터키의 아버지라고 국회에서 이름 지어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아름다운 궁전인 이곳 돌마바흐체 궁전에 있는 어느 방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돌마바흐체의 모든 시계는 당시 아타튀르크가 숨을 거둔 그 시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영웅은 천하를 원하지만, 천하는 영웅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

민초는 피곤하니까...

모름지기 지도자란 국민에게 행복을 파는 장사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마다 민초를 피곤하게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화려함도 한 조각구름이었습니다.

막강한 권력도 깨어나 보니 일장춘몽이었습니다.

이곳에 법석이던 많은 사람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관광객만 혼잡스럽습니다.

꿈속에서 꿈을 꾸니 이 또한 꿈이었습니다.

세월은 세상을 한바탕 꿈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나 봅니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지나고 나면 캄캄한 밤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