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길

2011. 7. 5. 08:59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이제 우리 여행 중 대부분의 일정을 끝내고 이스탄불로 돌아갑니다.

오늘 밤은 이스탄불에서 보내고 내일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면 우리 여행은 끝이 납니다. 

오늘은 아시아 지역인 랍세키에서 유럽지역인 게리 볼루라는 곳으로 버스를 배에 싣고 해협을 건너갑니다.

트로이에서 출발한 버스는 왼쪽으로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해협을 따라 달립니다.

 

트로이라는 유적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무척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그 실체를 직법 보면 무척 실망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알려진 이름보다 더 멋진 곳이 있지만,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나 봅니다.

그게 세상일이 아닐까요?

 

우선 지도부터 살펴보고 가지요.

이제 트로이를 떠나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로 갑니다.

마르마라 해와 에게 해 사이의 좁은 해협을 다르다넬즈 해협이라 부른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대륙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지금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곳임은 분명합니다.

동서양의 문명이 서로 상충하고 더군다나 아프리카나 중동의 세력마저 지근거리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튀르크가 주인이지만, 그래서 여러 차례 손바뀜이 끊이지 않았나 봅니다.

튀르크라는 돌궐족...

정말 멀리도 왔습니다.

그래도 기후가 온화한 이곳까지 흘러와 한때 세상을 호령하는 대제국인 오스만 제국을 세우고...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고대도시를 차지하고 관광수입까지 차지하고 있네요. 

 

우리가 탄 버스는 왼쪽으로 해협을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갑니다.

바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저곳이 유럽 대륙인 셈이죠.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이어주는 좁은 해협을 따라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해변을 달립니다. 

 

터키는 전력생산에 무척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집집이 지붕에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했고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을 따라

풍력발전기를 많이 설치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보다는 좋아 보입니다.

 

그래도 이런 아파트에는 석탄을 때나요?

굴뚝이 있고 시커멓게 그을었습니다.

 

워낙 모슬렘에게는 음주문화가 없기에 남자에게 저녁 퇴근 후의 시간은 무엇으로 보낼까요?

집집이 위성 안테나가 보입니다.

그래서 터키 남자는 축구 중계에 환장하나 봅니다.

아무리 시골에 있는 집이라도 지붕에는 태양열 집열판과 위성 안테나가 있습니다.

 

랍세키라는 작은 항구에서 차를 싣는 페리호를 타고 해협을 건너 게리 볼루로 건너갑니다.

다르디넬즈 해협은 보스포루스 해협과 더불어 아시아와 유럽을 갈라놓는 해협입니다.

길이가 62km 정도이고 가장 좁은 곳의 폭은 1.2km로 빤히 바라다보이는 가까운 해협입니다.

 

우리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정확히 배가 출발하는 시각에 항구에 도착하여 조금도 기다림이 없이

버스를 배에 올려버립니다.

 

모두 버스에서 내려 승객 대기실인 2층으로 올라갑니다.

1층은 차량이 탑승하는 공간입니다.

 

승용차, 버스, 화물차...

도로를 달리는 모든 운송수단은 배에 올려놓으면 바다를 건너갑니다.

 

다르다넬스 해협...

그리스에서는 이 해협을 헬레스 폰투스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는 그리스 영토였으니 그렇게 불렀나 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헬레가 빠진 바다라는 말이라 합니다.

 

원래 꿈속에서 살았던 그리스 사람은 이런 해협을 그냥 두지는 않죠?

뭔가 또 신화를 꾸며 냅니다.

신화가 없는 그리스는 상상하기도 어렵잖아요?

심심한데 이야기나 듣고 갈까요?

 

유럽에서는 제우스의 아들인 다르다노스에서 유래했다고 다르다넬스라고 부르고 터키 사람은 차나칼레라 부릅니다.

원래 여러 나라가 차지했던 땅이라 이름 또한 지배세력에 따라 달리 불렸겠지요.

 

이제 신화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마스는 왕비 네펠레와의 사이에 프릭소스와 헬레라는 자식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아타마스는 이웃 나라인 테베의 왕 가드무스의 딸인 이노에 반해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다시 결혼합니다.

그런데 이노는 전처소생의 두  아이를 시기하다 기근이 들자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도 우리처럼 콩쥐팥쥐 이야기와 비슷한 신화가 있었나 보네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 네펠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하게 되고 이 간절한 기도가 전령의 신 헤르메스에게

들렸고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헤르메스는 날개가 달린 황금 양을 보내 아이를 구하게 합니다.

위의 사진이 에페소스에서 본 헤르메스와 양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출연 예정이라 제가 말씀드렸지요?

헤르메스의 양 발과 지팡이에는 날개가 달렸습니다.

전령의 신이기에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오기 위해 날개가 달렸습니다.

 

헤르메스는 바람둥이인 제우스의 아들로 아비인 제우스가 이오라는 여신과 바람피우다 마누라인 헤라에게

딱 걸려 이오를 송아지로 만들었을 때 그것도 아비라고 부탁을 받고 이오를 꺼내 준 이야기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해 드렸습니다.

헤르메스는 주로 물 좋은 이 근방에서만 노는가 보네요.

 

황금 양은 아이를 등에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잠이 든 헬레가 그만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긴 겁니다.

어리삥삥한 양이었나 봅니다.

헤르메스는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는 덜수 같은 양을 왜 그리도 곁에 두었나 모르겠습니다.

 

바로 헬레가 떨어진 바다가 다르다넬즈 해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헬레가 떨어진 바다라는 의미인 헬레스폰투스라고 부른답니다.

그리고 헬레는 이름 때문에 바다에 떨어뜨렸지만, 프릭소스는 안전하게 데리고 아이에테스 왕이 다스리는

콜키스에 도착했고 제우스는 황금 양을 가상하게 생각해 하늘의 별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늘의 양자리가 되었다네요.

뭐 잘했다고 그런 자리까지 마련해 줍니까?

헬레도 바다에 떨어뜨린 책임을 물어야지요.

 

차나칼레라는 지명은 '도공들의 요새'라는 말이라 합니다.

아마도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나 봅니다.

이곳에도 신화가 전해 온다는군요.

예전에 아비도스라고 불렀고 건너편 유럽은 세스토스라 불렀습니다.

 

세스토스의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던 헤로와 아비도스의 미남 청년 레안드로스는 서로 사랑을 했더랍니다.

하지만 헤로는 결혼이 금지된 여사제인 까닭에 이들의 사랑은 밤에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 폭풍이 며칠 동안 계속 불었기에 두 연인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헤로가 등불을 들고 바닷가로 나갔고 그 등불을 본 레안드로스는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두 사람은 사고를 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풍랑이 높아 헤로의 등불은 보이지 않아 바다에서 레안드로스는 방향을 잃고 맙니다.

간신히 해안에 도착한 레안드로스는 기진맥진하여 추위와 저체온증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뒤늦게 후회하며 달려온 헤로는 싸늘하게 식은 레안드로스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슬픈 이야기는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영국의 계관시인이라는 바이런이 이 이야기에 심취하여 차나칼레의 바다로 뛰어들어

해협을 헤엄을 쳐 건너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레안드로스처럼 죽을까 봐 중간에 포기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옆에 선수를 거느리고

성공했다 합니다.

그곳을 헤엄으로 건너면 자기가 레안드로스라도 된답니까? 나 원 참!!!

 

만약 바이런이 심청전 이야기라도 들었다면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들 앞에서 물도 조심해 마셔야 합니다.

자꾸 따라 하니까요.     

 

차나칼레는 터키 사람에게는 무척 한이 맺힌 장소라 하더군요.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많은 연합군 병사가 터키로 진입했던 곳이 이 해협을 건너 넘어 들어오려고 했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터키는 이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겠지요.

 

건너오려는 연합군과 막으려는 터키군 사이...

무척 치열한 전투로 당시 이곳에 퍼부어진 총알과 포탄이 이 해협 양안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에 이곳에서만 50만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피아가 흘린 피로 차나칼레가 벌겋게 물이 들었고 양안에 떨어진 포탄과 총알이 산을 이루었다고 하니

무척 치열했던 곳입니다.

연합군이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작전이 이 지역을 포기하고 성공적(?)으로 후퇴한 작전이었다 합니다.

이때 터키군을 이끌었던 사령관이 불과 34살의 후에 터키의 국부가 된 케말 파샤였습니다. 

아마도 수 천년이 지나면 케말 파샤 혼자서 백만 대군을 이곳에서 무찔렀다는 신화가 탄생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나칼레를 건너 게리 볼루에 도착해 고등어 케밥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이름이 고등어 케밥이라고 거창했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생선구이입니다.

밥에 그냥 구운 생선 한 토막 얹어 먹는 단순한 점심입니다.

 

원래 고등어 케밥은 뱃사람의 음식입니다.

그냥 빵 사이에 구운 고등어 한 토막 집어넣고 채소를 듬뿍 넣어 먹는 음식이지만...

그래서 주로 고등어 케밥을 만드는 곳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 만들어야 하지만, 이곳은 식당에서 먹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려는 데 입구에 계신 구두 닦는 아저씨..

능숙한 우리말로 "빤짝빤짝 구두"라고 외칩니다.

처음에 3달러를 외치더니만, 나중에 1달러에 닦자고 덤빕니다.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머리처럼 빤짝빤짝 닦아 준다고 사진까지 찍어달랍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면 한국인을 상대로 구두도 닦으며 살아갈까요?

 

이렇게 해협을 건너 유럽 땅으로 넘어와 이스탄불을 향하여 북상합니다.

우리 여정은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돈 셈입니다.

여행사에 따라 우리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경우도 있다 합니다.

아직 아나톨리아 반도의 동부지역은 튀르크 민족이 살지 않기에 안전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가끔 소동이 일어나는 이라크 국경에 모여사는 쿠르드 족을 아실 겁니다.

 

드디어 저녁 즈음에 팬지와 튤립이 활짝 핀 이스탄불에 도착합니다.

역시 이스탄불은 큰 도시입니다.

더군다나 저녁 시간이라 교통체증이 무척 심합니다.

 

저녁 식사는 DOY-DOY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게 됩니다.

이 식당의 위치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중심인 술탄 아흐메트 지역에 있어 여러 번 지나다녔던 곳입니다. 

 

속에 잔뜩 바람만 든 빵입니다.

크기만 컸지 속은 비어 있기에...

이제 이 부근은 눈을 감고도 찾아다니겠습니다.

 

쉬쉬 케밥이라는 닭고기 케밥입니다.

우리 일행이 교통체증으로 예약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자리를 비워주어야 합니다.

정신없이 먹다가 일어났습니다.

함께 일정을 소화한 다른 여행사의 한국인도 또 만나게 됩니다.

 

이 집의 메뉴판을 찍어 보았습니다.

관광지라 10 TL 전후의 요금입니다.

우리 돈으로 8천 원에서 만원 정도이군요.

 

우리가 이번 터키 여행에서 마지막 묵었던 호텔은 라마다 플라자 호텔입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지 무척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도 또 일본 관광객을 만나고 다른 한국 관광객을 만납니다.

이번 터키 여행은 출발 비행기부터 도착 비행기까지 모든 한국 여행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식당, 관광지, 호텔

그리고 쇼핑센터까지 모두 같았습니다.

가이드와 여행사만 달랐지 똑같은 일정이었습니다.

다른 게 또 하나 있군요?

이렇게 같아도 여행 요금은 회사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

 

우리와는 다르게 욕실에 발 닦는 타월이 따로 생산되나 봅니다.

욕조는 유럽과 다르게 우리처럼 깊은 것이었습니다.

내일은 돌마바흐체 궁전을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우리 여행도 마지막 날을 보냅니다.

 엊그제 여기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돌마바흐체 궁전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우리 여행도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