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린쿠유, 그 고난의 장소

2011. 5. 25. 00:04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소금 호수에서 잠시 쉬었다가 남쪽으로 계속 달려 악사라이라는 도시에서 좌회전하여 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우회전하여 데린쿠유라는 지하 도시(Underground City)로 갑니다.

지하 도시란 땅속에다 굴을 파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살아온

도시기능을 했던 곳입니다.

 

데린쿠유라고 하는 지하 도시로 내려가는 입구의 광장에 아주 오래돼 보이는 교회가 하나

있는데 이 교회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그냥 빈 건물이고 이곳이 1.800여 년 전 기독교도가

많이 있었던 마을이라 이런 건물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데린쿠유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데린이라는 말은 깊다는 말이고 쿠유는 웅덩이나 우물이라는 말이라 하니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며 이 지역에는 지금까지 지하도시가 36개나 발견되었다 합니다.

 

이 지역을 지배한 프리지어(Phrygia)인들이 BC 7-8세기경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해

지하도시에서 살았으며, 로마시대에는 종교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피신처로 숨어들며

먼저보다 더 확장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데린쿠유에 가까이 오니 이미 주변에는 척박한 돌산이 보이고

그 돌산에 여기저기 구멍이 보여 마치 벌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의 바위는 화산활동에 의한 화산재가 쌓이고 그 위에 용암이 덮으므로 단단하게 굳은

응회암이라는 바위로 별로 단단하지 않아 쉽게 굴을 팔 수 있는 특수한 지역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기독교도가 종교의 박해를 받으며 지하로 숨어들어 200여 년을 살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이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지하도시 데린쿠유입니다.

 

지하도시가 여러 개가 있지만, 그러나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지하도시는 데린쿠유라는

곳이라서 그런지 벌써 집의 모양이 역시 다르군요?

돌로 지은 집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무척 돌을 잘 다루었던 사람이 틀림없을 알려 줍니다.

여기도 양탄자를 팔고 있습니다.

혹시 옛날에 만든 플라잉 카펫이 있을까요?

 

단면도를 그린 그림입니다.

이게 개미집이지 어디 사람이 사는 집입니까?

지하로 지은 아파트처럼 보입니다.

 

일조권? 지하로 내려갔는데 당연히 없습니다.

용적률? 그딴 것 모릅니다.

층간 소음? 무조건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조망권? 그게 뭐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곳 데린쿠유는 지하 20층 규모의 도시로 돌을 긁어내고 지하에 길을 내고 방을 만들고...

기독교도는 종교탄압을 피해 숨고 또 숨어들었습니다.

페쇄 공포증이나 공황장애가 있으신 분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지하에 그들만의 세상을 건설한 것입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사실 이 지하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7-8세기 경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지하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아가다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기독교도가 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면서입니다.

 

우리가 들어가 보는 곳은 겨우 지하 7층 규모의 깊이입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20층 규모이고 아직 얼마나 더 깊이 또 멀리 가야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며 지하 도시 안에는 학교, 방앗간, 식품 저장소, 심지어 마구간까지 설치되어

수만 명이 살았을 거라고 추정한답니다.

이 안은 혼자 다니면 나중에 미라로 발견될지 모릅니다.

워낙 미로처럼 얽혀 있어 거기가 여기처럼 보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하수도처럼 생긴 곳은 환기구입니다.

이렇게 공기 순환장치를 했기에 지하에 들어와도 답답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밤에 코를 고는 사람이 있습니다.

터키에 사는 사람이라고 없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어떻게 하죠?

문짝도 없이 옆방에 사는 사람이 환장할 겁니다.

게다가 동굴과 같은 밀폐된 공간이라 그 소리가 아주 우렁차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가족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온 마을 주민 모두에게 심한 민폐를 끼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어 모두 지상으로 나와 살게 되었지만,

그들이 나온 후 시간이 지나며 이 지하도시는 사람들에게 잊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나라에서 발표한 종교 자유를 믿지 못하고 다시 박해가 시작되면

또 지하로 숨어 들어가기 위해 이 도시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았기에

점차 그곳에 살았던 세대가 사라지며 세상에서 잊히게 되었답니다.

 

이곳을 조사하다 밝혀진 일이지만, 만약, 이 지하도시가 발각되면 다른 곳으로

숨어들기 위해 여기서 16km나 떨어진 카이마크네라는 도시와 지하로 연결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공포 속에서 살아갔을까요?

 

그렇게 이 부근 사람조차 알지 못했던 지하도시가 우연한 기회에 근처에 살던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 마을 농부가 자기가 키우는 닭이 자꾸만 사라지기에 의심을 하고

하루는 닭의 다리에 길게 끈을 묶어 놓았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다리를 묶었던 닭도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끈을 따라 사라진 닭을 찾아가다가 보니까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외진 곳에

작은 구멍이 있고 닭을 묶어두었던 줄이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그 구멍은 동네 사람들이 쓰레기나 버리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농부는 하도 이상해 그 구멍을 파자 구멍은 깊이를 알 수 없어 돌을 하나 던져보았더니

한참 있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혼자의 힘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 농부는 지방 정부에 신고하고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런 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시골 마을에 오늘도 관광버스가 몰려오고 지하도시는

교통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혼잡한 곳이 되었습니다.

 

황금알을 낳은 그 농부의 닭에게 포상이라도 했을까요?

터키에서는 구운 요리는 무조건 케밥이라고 합니다.

닭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구우면 쉬쉬 케밥이라고 하더군요.

설마 그 닭이?

 

중국에서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진시황의 병마용을 발견했잖아요.

그 농부는 요즈음도 가끔 병마용 입구에 나타나 사진첩에 사인하고

다른 곳 보다 더 비싸게 받잖아요.

닭은 그리 할 수 없습니다.

닭은 사인할 수 없으니까... 

 

이곳은 지하 7층에 해당하는 깊은 곳입니다.

마을 주민이 모임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습니다.

 

여기는 교회입니다.

이곳은 땅굴을 십자 모양으로 파서 제법 많은 사람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자연히 시간을 많이 주게 되고

가끔 건너편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도 생기지요.

그런데 그 사람의 모습이 마치 기원전 1800년 전의 사람처럼 보여 식겁하기도 합니다.

 

여기가 우물이라는 쿠유입니다.

이곳에 밑으로 깊게 파고 샘물을 길어 지하마을 사람이 먹고살았을 겁니다.

 

이로써 만든 지 1.500여 년이 지난 1.890년이 되어서야 이곳이 한때 어머 어마하게

큰 지하도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고 이 소문을 들은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도가 성지 순례를 하며 이곳을 찾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이야 어디 성지 순례하는 사람만 오나요?

우리 같은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옵니다.

 

아마도 이곳에 불을 밝히기 위한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 안에서 살며 불을 피우게 되면 연기나 불빛이 밖으로 세어나갈까 봐 음식을

조리하지 못하고 주로 생식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가끔 익힌 음식도 먹었겠지요.

그들 중 일부는 드나드는 입구에 집을 짓고 기독교도가 아닌 척 살아가며

지하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식량을 준비해 주었을 겁니다.

 

위의 사진이 Stone Door라는 돌로 만든 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연자방아처럼 생긴 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만약 이 지하도시가 발각되었을 때 이 돌을 굴리기만 하면 바로 닫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은 각 층마다 만들어져 있고 장정 서너 명이 굴려야 움직일 것 같습니다.

 

문이 닫히면 그 사이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런 돌문이 중간마다 무척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하에 이런 어마어마한 돌로 문을 만들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까?

미닫이문처럼 생겨 그냥 스르르 굴리기만 해도 닫히지만,

반대편에서는 부숴버리기 전에는 여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돌 문의 크기는 1m 50cm는 넘는 그런 문이었습니다.

  

환기 시스템입니다.

이런 시설로 말미암아 지하도시의 사람은 답답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답니다.

우물도 있고 환기시설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에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전기시설을 하여 동굴 안을 밝혔지만, 그때는 어떻게 불을 밝혔을까요?

퉁로마다 작은 홈을 만들어 놓아 그곳에 불을 밝힐 무엇인가 놓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문제는 햇볕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통해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없습니다.

햇볕을 받아야 피부에서 비타민 D가 생성되기 때문에 구루병이나

 골연화증이 무척 심하지 않았을까요?

근처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를 보면 틀림없이 뼈가 무척 약해져 있을 게 틀림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배설물의 처리였을 겁니다.

자주 내다 버릴 수는 없고 어디에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내다 버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돼지라도 키워 사람의 배설물을 제주도처럼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돼지 배설물은 사람이 처리해야 합니까?

 

이 근처에 지금까지 발견된 지하 도시만 36개에 이른다 하네요.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고 얼마나 더 많은 곳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이 지하도시를 기독교의 박해로 피신했다고만 보아서는 안 되고 고대 시대인 히타이트 시대

때부터 지하도시를 건설하며 로마시대, 비잔틴 시대를 거쳐왔으며 기독교의 억압으로

이 지하도시는 더욱 커지고 발전되었을 것입니다. 

 

내부를 둘러보며 곳곳에 딱 사람 두서너 명 정도만 누울 수 있는 방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 안에 살며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안에는 다양한 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부엌은 물론 거실에 작은 교회까지 마련되어 있고 포도주를 만들었던 곳도 발견되었습니다.

시신 안치소도 있었고 학교에 햇볕을 제외한 도시의 모든 시설과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부분 서서 다닐 정도의 높이지만 가끔 오리걸음으로 통과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밝은 세상으로 나와 방금 빠져나온 출구를 바라봅니다.

기독교도가 종교를 지키기 위해 숨어 살았던 곳인 그곳에도

알라만 유일신이라는 자미가 있습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는지, 얼마나 오래전부터 살았는지,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토사에 쌓여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기에 점차 밝혀지겠지요.

이런 게 불가사의가 아닌가요?

 

나중에 나와 살게 되며 가진 게 없는 기독교도는 집을 짓지 못하고 주변의 돌산에

구멍을 파고 살아갔으며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200여 년을 지하에 땅굴만 파고 살았던 그 실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런데 그 지하에서 파낸 흙은 모두 어디에 버렸을까요?

 

아무 곳이나 파면 집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도 어려운 계곡을 파면 집이 됩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이곳의 기술을 배워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차 농사를 짓고 돈이 모이자 그 근처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아마도 이 돌산 부근에 사는

주민은 당시의 기독교도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박해 속에 살아온 사람이 살았던 동네에도 세월이 지나니 이런 산비탈 마을에도

하늘을 향하여 기원하는 미나렛이라는 첨탑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도 열 가구에 자미가 하나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비록 음습한 지하도시에서 살았지만, 마음만은 늘 밝은 세상으로 나와

하늘을 걷는 꿈을 꾸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요.

밝은 해가 비치고 아름다운 풍경과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하늘의 산보였기를 바랍니다. 

 

튀르크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내...

우리 현지 가이드 Yasar pullu입니다.

사진을 보내주기로 이메일 주소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이스탄불을 다시 오게 되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전화번호까지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배낭만 둘러메고 다시 한번 가보렵니다.

터키는 여러 번 다녀와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야사르의 노래가 얼마나 구성지던지 그 앞의 가게에 있던 늑대 두 마리가 합창을 합니다.

워우~ 워우~~

혹시 야사르라는 이름이 인디언 말로 '늑대와 함께 노래'를 이라는 말은 아니겠죠?

 

늑대가 울부짖던,

야사르가 연주를 하든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데린쿠유를 나와 아바노스라는 마을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신앙의 힘이란 어떤 어려움도 이기게 하나 봅니다.

두려움에 떨며 지하도시에서 보낸 영혼들이시여...

이제 자유의 나라 튀르크의 하늘을 산책합시다.

모두 모두 손잡고 아름다운 들꽃이 피고 향기로운 바람을 느끼며 웃으며

노래하며 하늘을 산책하십시다.

佳人은 아직 신앙이 없어 세상을 적당히 요령껏 살아갑니다.

남의 눈치나 살피고 내 이익만 찾아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