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0. 00:13ㆍ터키 여행기/터키여행
1992년 8월의 어느 날
한 늙수그레한 노인이 보스포루스 해협 바닷가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동안 참고 참았던 두 줄기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내의 모습은 세파에 찌들어 힘겨워 보였고 차림은 꾀죄죄한 모습이었으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초리만큼은 매우 날카로웠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터키 이스탄불의 신시가지 보스포루스 해협에 자리 잡고 있으며 터키 공화국이 앙카라로
천도하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었으며 한때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를 영토로 하는
대 제국을 경영했던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 술탄이 머물던 왕궁입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지었다고 하여 화려함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화려함을 지녔다는
돌마바흐체 궁전입니다.
그 노인은 방금 이스탄불의 아타 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여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오던 중 보스포루스 해협 가에 자리한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이자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고 차에서 내려 돌마바흐체 궁전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의 눈에는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은 희미하게만 보입니다.
이미 너무 늙어 시야조차도 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시력이 나쁜 것만 아니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 출처 : Greatistanbul,com
그 노인은 83세로 68년 만에 그의 조국 땅을 처음 밟는 오스만 제국의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전 공항에 도착하자 정부에서 나온 경찰관이
"고국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했으며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여기가 내가 오매불망 꿈에도 그렸던 조국 튀르크라는 말인가?"
차를 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오며 하늘에 밝게 빛나는 태양에 비치어 보스포루스 해협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돌마바흐체 궁전과 그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아름답다는 돌마바흐체 궁전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사내는 경호원에게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을 했던 겁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차에서 내린 그는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그 모습을 영원히
가슴에 담으려는 듯 찬찬히 들러 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리고 길가의 흙을 한 줌 쥐어 손으로 비비며 냄새를 맡아 봅니다.
이 늙은 사내가 바로 영광스러웠던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었던 메흐메트 6세의 아들로
메흐메트 7세로 책봉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메흐메트 오르한(Mehmet Orhan)이었습니다.
지구 상에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나라는 어느 나라였을까요?
아마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다음이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
그다음이 튀르크 족이 세운 오스만 제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록 시작은 셀주크 튀르크의 부족국가의 하나로 시작했지만, 셀주크 튀르크가 멸망하자 서서히 아나톨리아를
평정하고 비잔틴 제국의 쇠퇴를 틈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 세력을 키워 갔습니다.
동유럽은 물론 아랍의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북단과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넓은 땅을 차지하며
600여 년의 영예로운 세월을 보낸 오스만 제국.
그러나 시작은 알고 있으나 마지막 이야기는 새로운 영웅에 환호하느라 누가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오늘 그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여러 번 청원서를 넣어 단, 5박 6일간의 방문이 허락된 그는 1909년 7월 11일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던 날 대 오스만 제국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았던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장식한 요람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하여 술탄 황실학교에 다녔습니다.
1922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은 독일의 패전으로 치명적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한 오스만 제국을 어떻게 요리할까
구상 중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궁전 안에서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궁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불안한
얼굴을 하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23년 3월 3일 오스만 제국에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바로 무스타파 케말 파샤에 의해 터키 공화국이 탄생한 것입니다.
15세가 되던 어느 날...
술탄의 아들이며 황태자인 메흐메트 오르한은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뜰 한편에 세워 놓았던 자전거를
끌고 와 막 타려고 하는 순간, 대신들과 함께 온 경찰청장이 다가와 서류를 내밀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하~ 대역죄인인 저희를 용서하십시오. 여기에 사인을 부탁합니다." 라고 합니다.
비록, 아직 어린 소년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만 압니다.
오르한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무 말 없이 서류에 사인하게 됩니다.
세상의 진리란 어느 것이나 융성함이 다하면 쇠잔해지는 법입니다.
소년은 물끄러미 궁전 밖 담장 밖으로 넘실거리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봅니다.
그날 따라 담장 위로 보이는 하늘은 바다를 닮아 왜 그리 푸르던지....
하얀 손수건을 던지면 금발 파랗게 물이 들어버릴 정도로 파랬습니다.
깨알같이 많은 글자가 적혀 있지만, 그 내용은 오스만 제국의 모든 왕족은 무조건 모든 재산을 그대로 두고
옷 한 벌만 걸치고 24시간 내에 몸만 튀르크 공화국의 영토에서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단, 술탄 무라트 5세의 딸은 홍역을 앓고 있어 20일간의 유예를 허용한 것을 제외하고...
남자는 50년, 여자는 28년 동안 튀르크 땅에 다시는 발을 디딜 수 없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잘났습니다. 정말 잘났어요.
이렇게 잘나도 됩니까?
누가요?
바로 지금의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 말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합니다.
힘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한 때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오스만 제국의 왕족이
간단한 종이쪽지에 불과한 명령서 한 장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로써 모든 왕족은 3월 5일 기차와 배에 실려 모두 튀르크 공화국 나라밖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메흐메트 오르한은 이날부터 68년간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가며 고국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자리에 오를 황태자가 아닙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왕족은 이미 눈치를 채고 미리 국외로 많은 재산을 빼돌려 그곳에서의 생활이 넉넉했지만,
메흐메트 오르한은 그야말로 빈손으로 나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저곳 다른 왕족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지만, 점차 그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바뀌니 언제는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던 대신들마저 또 대신을 따라온 궁녀들마저도 뱀눈을 뜨고
자꾸 번거롭게 찾아오는 오르한을 벌레 보듯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까지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한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아~ 과거의 영광은 인생무상이며 모두가 한 조각 흘러가는 뜬구름이요,
나뭇가지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황태자였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졌습니다.
17세가 되던 해 그는 큰 결심을 합니다.
"그래! 떠나는 게야,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멀리 떠나는 게야!"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을 떠나기로 하고 주머니에 남은 단돈 8프랑만 들고 브라질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브라질에 도착한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배에서 내리며 보아 두었던 화물 운반 일을 먼저 시작합니다.
그 일은 큰 기술이 없어도 건강한 육체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은 커피 농장에 가 포장하는 일도 했습니다.
돈을 조금 더 준다는 주석 광산에 가 일도 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세상에서 잊혔다는 생각에 이집트로 가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제국의 후계자에서 거지나 다름없는 빈손의 추방 객이 된 오르한은 오스만 제국을 떠나
이집트에 머물렀습니다.
이집트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르한이 가진 직업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가 이집트에 머물렀던 이유는 언젠가 터키로 돌아갈 수 있을 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이웃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오르한이 왕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집트인이 개인택시를 한 대 내주어 한동안 그걸 운전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뉴스에 "술탄의 황태자 택시 기사가 되다."라는 특종기사가 뜨자 오르한은 조국인 터키에
잘못을 한다고 생각해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프랑스에서 숨어 사는 동안 역시 오르한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택한 직업은 자동차 탁송업무였습니다.
그가 그 일을 택한 이유는 자동차를 배달하는 동안 그 자동차의 뒷자리에서 잠을 자며
숙박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쪼그리고 잤던 날이 더 마음이 편하기 조차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며 화려한 술탄의 아들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57세가 되던 해
파리에 있는 미군 병사의 묘소를 안내하는 일인 '미국 전쟁 기념회'라고 하는 단체에 취직합니다.
그래도 그곳에 근무하는 바람에 1974년까지 매월 190달러의 연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전거를 타고 놀던 15세 어린 소년이 그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쫓겨나다시피 추방당했습니다.
그가 다시 터키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50년도 훨씬 지난 그로부터 68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50년이 지난 후부터 계속 탄원서를 냈지만, 집권세력은 정치적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92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Turgut Ozal이 결단을 내려 그동안 꿈에서나 그리던 조국의 땅을
처음으로 밟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추방당한 지 68년이라는, 한 인간의 평생에 해당하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서야
겨우 자기 나라 땅의 흙을 밟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83세.
여론으로 말미암아 겨우 귀국하게 된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가 바란 것은 단 하나.
어린 시절을 보낸 돌마바흐체궁전에서 단 닷새만 묵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년 때 떠난 궁전으로 다 늙어서 돌아와 보내는 5일 동안 그는 궁전의 벽을 일일이 손으로
쓰다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감격으로 흘린 눈물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덮고도 남았을 겝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감추고 싶고 힘들었던 여러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나는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동안 눈물과 땀만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았지, 한 푼의 부정한 돈도 내 주머니에 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정이나 팁조차도 거절했기에 이 세상 누구에게니 빚이 없습니다.
나는 영광스러웠던 오스만 제국의 황태자로 제국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결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느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왕족 중 가장 장수하셨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마도 내 조국 튀르크 땅을 다시 밟고야 눈을 감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어떻게 소일하고 계셨습니까?"
"내 유일한 낙은 아침마다 공항 라운지에 올라가 터키에서 생산된 커피를 를 마시며 내가 태어난 조국
튀르크로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언제나 내 조국의 품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금 그 꿈이 이루어져 사랑하는 내 조국에 방문을 허락해주고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고
돌마바흐체에 머물게 허락해 준 국민과 튀르크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국민은 이제 나이도 많은 그에게 영구 귀국을 허락해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게 하자고 했지만,
그는 "아니오! 절대로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튀르크 정부에 세금을 한 푼도 낸 적이 없습니다.
염치도 없이 어찌 그런 말을 입에 꺼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수백 번 국민과 터키 정부에 고맙다는 말을 하며 5박 6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그가 머물던
망명지 프랑스 Nice로 떠났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5박 6일간의 여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조국에 머물던 5박 6일간 눈물이 마르지 않아 연방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터키의 모든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즉위식 때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영면하셨습니다."
그가 매일 커피를 마셨던 공항 라운지의 종업원이 2일이나 오지 않는 그를 이상히 여겨 왕족인 다른 사람에게
알렸고 경찰에 연락해 달려가 보니 가슴에 손을 얹고 반듯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목욕탕에는 빨랫감을 담가 놓은 채로...
한때 용을 꿈꾸었습니다.
용이 되지 못해 이무기라도 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를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그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랬습니다.
이미지 출처 : Greatistanbul,com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산 이유는
자신의 후손이 자기처럼 평생을 숨어 살아가야 하는 게 슬펐고...
사라지고 없어져 버린 제국의 마지막 후계자를 자기 자신으로 끝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아름답고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바라보면서
佳人이 알았던 마지막 황태자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디 인생만 무상입니까? 권력도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오늘도 넘실거리는 해협의 파도와 무수히 오가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면 돌마바흐체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오늘도 푸른 보스포루스의 물결은 말없이 흘러갑니다.
그가 죽자 명목상으로 황태자 제위를 이어받은 또 다른 노인이 있었습니다.
에그투그롤 쇨칸 오스만이었습니다.
그는 퇴위 이전 선황제 손자로서 오르한 친척이며, 오르한이 죽자 가장 황태자에 가까운 관계였지만
당시 80이 넘는 할아버지로 미국에서 조용히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도 2004년에야 터키로 와서 궁궐을 구경했답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 2009년 97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르한이나 에그투그롤은 죽은 다음에서야 시신이 터키로 옮겨져 선왕 무덤가에 같이 묻혔다고 하네요.
에그투그올을 찾아온 미국 기자가 묻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복원을 원하십니까?"
"오스만 제국이오? 그건 아득히 오래전 사라진 이름일 뿐이오. 그걸 복원해 대체 무얼 하려고요."
아름답고 호화스럽다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눈이 시리도록 하늘을 닮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뒤안길에는
아름답지만 않은 슬픈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가끔은 화려함에 가려진 그 뒷면도 돌아보고 다닐 수 있기에 좋습니다.
권력이나 인생이란 참 덧없는 것입니다.
돌마바흐체 궁전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살짝 열린 문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입니다.
사람은 이런 짧은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고뇌 속에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숨 한 번 크게 몰아쉬고 눈 한 번 깜빡이면 지나가는 시간에 우주만물의 고민을 모두 안고 살아가나 봅니다.
아닌가요?
오늘도 쉬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돌마바흐체 궁전 앞의 시계탑 위로 흘러가는 구름 같은 것인가요?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리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조차 할 수 없는 게 인간이 아닌가요?
한 때는 맨손으로 세상을 때려잡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그렇게 믿고 사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세월은 언제나 한쪽의 편만 들어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위해 먼저 뜬 태양은 저무는 법입니다.
이미지 출처 : Greatistanbul,com
그 화려했던 동로마제국을 1453년 5월 29일 "피의 그믐달"이라 부르는 그날 조용히 역사의 뒷장으로 남겨두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의 성문을 열어젖히고 입성하던
날로부터 이제 600년도 되지 않아 또 하나의 역사로만 남았습니다.
아~ 제국의 영광이여...
제국의 꿈이여~
이제는 세월이 지나 제국의 심장인 돌마바흐체에 문이 열렸습니다.
佳人은 그 열린 문틈 사이로 잠시 들여다 보며 상념에 젖어 봅니다.
여행은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바라볼 수 있어 좋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 아무리 영광스러운 것도 모두 사라집니다.
한 때 세상을 호령했고 모두가 만나뵙기를 청했지만, 이제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고 반갑게 맞이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만나기를 피해버립니다.
누가 이 사람의 눈물을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월이 흐르면 이 눈물 또한 지나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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