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카프 궁전으로 들어가 봅시다.

2011. 5. 17. 00:05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아침 일찍 서둘렀던 바람에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둘러보고 톱 카프 궁전으로 왔습니다.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보스포루스 해협 유람선 관광 후 이곳에 오니 거의 10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톱 카프 궁전이라면 바로 오스만 제국의 심장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돌로 포장된 길을 보면 왠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톱 카프 궁전을 둘러본 시간이 겨우 1시간밖에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여행사를 따라온 여행이라 어쩔 수 없지요.

뭐... 사실 더 오래 구경한다고 해도 우리 집도 아니고 아는 게 없기에 마찬가지겠지만요.

(이 궁전은 화요일은 휴관이랍니다.)

 

벌써 많은 관광객이 몰려 들어갑니다.

톱 카프라는 말은 튀르크 언어로 대포(톱)의 문(카프)이라는 말이라는군요.

예전에는 바로 이 문 앞에 대포가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연유는 정복자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던 때

원래 이 도시는 바다를 끼고 있는 아주 튼튼한 3중의 성벽을 만들어 요새처럼 견고한 곳이어서

 거의 2달간 공략한 후에야 겨우 함락시킬 수 있었답니다.

그것도 20만에 가까운 대군으로 겨우 7천도 되지 않는 용병으로 이루어진 수비수가 있었던 곳을 말입니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되기에 튀르크의 오스만은 옛날 옆 마을 사람이었던

훈족의 헝가리 사람에게 특별히 대포를 주문했었습니다.

돌궐 족 과 훈족은 크게는 같은 흉노족의 범주안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헝가리의 대포 제작 수준이 무척 우수했던 모양입니다. 

비록 그 대포는 사용하지도 못했지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이 궁전을 지을 때

왕궁 앞에 전시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궁전의 위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좋은 곳입니다.

오른쪽으로 마르마라 해가 있고 왼쪽으로 골든 혼이 있으며 앞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펼쳐져 있어

풍경이면 풍경, 전쟁이 나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절벽을 이루고 있기에 수비에도 그만인 곳입니다.

 

위의 사진은 바로 바다에서 배를 타고 톱 카프 궁전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골키퍼가 지킨다고 골이 안 들어가지는 않지만, 우선은 쉽지요.

좌청룡 우백호도 부럽지 않을 명당자리였던 모양입니다.

 

톱 카프 궁전의 위치는 바로 아야 소피아 옆에 있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군주 24명과 그의 식솔이 생활했던 곳입니다.

그러니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는 대부분 이곳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궁전인 돌마바흐체를 짓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사용함으로 오스만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톱 카프 궁전은 그런 대제국의 궁전 치고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술탄이 등극할 때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증축하다 보니 건물의 획일성이 없고 특징도 없는 그저 그런 궁전이 되어버렸기에

베르사유를 흉내 낸 돌마바흐체를 지었나 봅니다.

뭐 원래 출신이 유목민족이었으니 천막 하나 치고 살아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겠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톱 커프 궁전의 모형도에 표기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듯이 그냥 천막을 여러 곳에 쳐 놓은 모습입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네 번의 대화재가 발생했고 처음에는 신궁전이라는 의미로 "예니 사라이(Yeni Saray)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나 헝가리에서 주문하여 택배로 도착한 대포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늘 궁전 앞에 두다 보니 대부분 사람이

대포의 문이라는 톱 카프 궁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네요. 

 넓이만 7만 평이라 하네요.

 

톱 카프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흐메트의 샘이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술탄 아흐메트 3세에 의해 1728년 세워진 건물로 사방에서 물이 나옵니다.

아마도 그 의미는 신성한 궁전으로 들어오기 전에 몸을 정갈하게 하라는 말이겠지요.

 

궁전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황제의 문(또는 술탄의 문 Gate of Sultan, Imperial Gate)이라 부릅니다.

문 바깥에는 메흐메트 2세의 글이 남아 있습니다.

내용은 낙성에 관한 이야기로 1478년 완공했다는 말이라 하네요.

그러나 그 후에 보수를 여러 번 했기에 원형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제의 문을 들어가면 넓은 정원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궁정 수비대라고 하는 '예니체리'라고 불리는 근위대가 있던 곳으로 예니체리 마당이라고

불렀으며 일반 백성도 자유롭게 드나들었기에 지금도 이곳을 지나야 매표소가 있습니다.

들어가는 도로 왼편에 보이는 건물이 동로마 제국 때인 6세기에 세운 아기아 이레네(터키어로 Aya Irini) 성당과

화폐주조 소가 있습니다.

이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남겨둔 것은 궁전의 무기보관소로 쓰기 위함이었답니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봅시다.

가슴이 확 트이지 않나요?

바로 마르마라 해라는 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두 번째 문은 예절의 문(또는 경의의 문 Gate of Salutation)이라고 합니다.

이곳부터는 일반 백성이 드나들지 못합니다.

이곳에 매표소가 있고 관광객도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술탄과 그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술탄에 경의를 표하고 드나들었기에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경의를 표하지 않고 매표소 옆에 있는 무료 화장실이 있어 이용하고 들어갔습니다.

 

문의 모양이 마치 디즈니랜드를 상징하는 뾰족탑 모양입니다.

여기에 관광객이 휴대한 모든 짐을 검색대로 통과시켜야 들어갑니다.

왼편의 탑은 죄를 지은 고위관리를 구금시키는 감옥으로 이용했다 하네요. 

 

이 문의 천장이 아주 화려합니다.

벽지만 바른 우리 집 거실의 천장보다 확실히 더 좋군요.

 

입장하는 모든 사람의 짐은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목에 건 카메라는 상관없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왼쪽에 디완이라고 부르는 건물이 있는데 대부분 국사를 논의 한 곳이랍니다.

국무회의는 오스만 제국 초창기에는 매일 열렸지만, 점차 늘어져 나중에는 1주일에 한 번 열렸다네요.

오른쪽 붉은 벽돌은 무기박물관이라 하네요.

 

옆에는 5-6세기경 동로마 시대에 만든 저수지 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워낙 물이 귀한 지역이라 물에 대한 저장 시설을 많이 만들었고 심지어 예바라탄이라는 저수조는

지하 물 궁전이라고도 할 정도로 대단히 크고 멋진 곳이지요.

이런 시설이 곳곳에 있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도 계속 사용하였답니다.

 

국무총리는 회의에서 논의된 모든 사항을 술탄에게 죄다 보고 해야 했다 합니다.

거짓으로 보고했다면 목숨도...

여행사 단체여행을 따라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일정은 우리의 생각 대로가 아니고 가이드의 생각 대로이기 때문이니까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가이드가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 건너편 즉 들어가며 오른쪽에는 커다란 공장 굴뚝처럼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공장이 궁전에 왜 있겠습니까?

회의하다 밥 먹고 하자고 주방 궁전입니다.

주방도 얼마나 큰가 주방 궁전이라 부른답니다.

 

주방 안의 모습입니다.

장금이가 어디서 나와 "앗! 나의 독무대예요~'라고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불쌍하고 선한 양만 하루에 200마리 이상 이곳에서 요리되었답니다.

 

식당도 3 군데로 나뉘어 장금이가 근무했던 술탄 전용 부엌과 다른 식구를 위한 부엌, 그리고 디저트만 전담하는

곳으로 여기에 주로 주방용품과 식기류가 보관되어 있는데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들이라 합니다.

20명의 주방장 아래 200명의 요리사, 행사가 있을 때 추가로 특별 요리사 100명 추가에 디저트 담당만 100명...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일에 30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부엌 궁전을 총괄 지휘하는 장금이 역인 마스터 주방장은 국무위원급에 해당하였다 하네요. 

 

그다음 마지막 문이 지복의 문(Gate of Felicity)이라 부르는 문입니다.

이 문은 술탄과 가족 그리고 최측근만 드나들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런데 佳人은 이 문이 무척 낯이 익었습니다.

저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지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천장에 추가 하나 보입니다.

가운데 늘어진 황금추가 보이십니까?

 

바로 그 아래 있는 신성한 표지석입니다.

중요한 날 가운데 국기를 꽂아 두었고 대관식이나 그런 중요한 행사가 열렸던 곳이라 합니다.

아마도 술탄은 이곳이 세상의 중심인 옴파로스라 생각하고 살았나 봅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 술탄이 아니라도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의 옴파로스는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여기서 한 가지는 더 보고 갑니다.

佳人이 예전에 사용했던 투우라라는 문장입니다.

일종의 옥새와도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 집에 오셨는데 그냥 구경만 하시라면 의미를 모르잖아요.

복잡해 보여도 별 게 아닙니다.

 

가까이 불러 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술탄의 문장입니다.

이 표시가 있는 건물은 술탄이 주로 기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문장은 술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이 문장이 가끔 보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가끔이라도 술탄이 머물거나 들렸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제3의 정원이 있고 문으로 바로 연결되는 곳에 건물이 이어져 있는데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알현실입니다.

특히 이 주변에 무척 많은 수도전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제3 정원으로 들어와 찍은 사진으로 왼편에 보이는 건물부터가 하렘이라는 곳입니다.

250여 개의 방이 있으며 금남의 구역입니다.

술탄은 비밀통로를 통하여 드나들었다 하며 한창 많은 때는 1.500여 명의 여인이 있었다 하네요. 

 

물이 귀한 유목민족이 깔끔 떠느라 수도전을 여기저기 설치한 게 아니라 일종의 도청방지시설로 술탄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수도꼭지를 틀어 물소리가 들려 말을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했다는군요.

유목민족이 천막생활을 하다 보니 사실 비밀이 천막을 통해 쉽게 이웃으로 전해지잖아요.

그런 습관이 이런 건물에서 살아도 버리지 못하고...

그런 의심병을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그 수도꼭지를 틀어봅니다.

지금도 물이 나오는군요.

지금 佳人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비밀스러운 말만 하고 살았나요?

그렇게 주위 사람을 믿을 수 없었나요?

누구도 佳人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고 佳人이 여행을 떠나 한 달이 넘어도 관심조차 없고

여행 떠났는지도 모르는데... 

 

그 영광스러웠던 대 제국의 영토를 표시했습니다.

지금의 터키는 가운데의 일부분이군요?

그러니 과거에는 이곳 톱 카프 궁전이 세 대륙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이스탄불의 중심인 셈입니다.

술레이만 대제 때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 였다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대 제국 오스만의 심장을 하루 만에 본다는 게 佳人에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를 둘러보며 자꾸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일은 제3정원과 보석관, 그리고 성물관과 제 정원을 둘러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나 봅니다.

파죽지세로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을 무릎 꿇리고 지중해 연안을 모두 식민지로 만들어 세상을 삼킬 듯

노도 광풍 같은 기세로 세상을 호령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박물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오스만 제국은 기후가 아주 좋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터를 잡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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