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2011. 5. 9. 00:06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오늘은 먼저 아야 소피아에 있는 모자이크로 만든 벽화부터 보고 가겠습니다.

아야 소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는 곳은

2층 중앙 복도 오른편으로 천국의 문이라는 곳을 들어가면 오른쪽 뒤편에 있습니다.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사진 촬영은 허락되지만,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안 됩니다.

곳곳에 경비가 지키고 서 있기에 플래시 없이 찍어야 합니다.

삼각대를 가져가지도 않았지만, 실내에서는 대리석 바닥이라 삼각대도 빼앗깁니다.

아야 소피아는 사전 지식 없이 덤볐다가는 佳人처럼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어느새

출구를 빠져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야 소피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심판의 날'이라는 제목이 붙은 모자이크 작품입니다.

가운데 예수님과 오른쪽에 세례 요한, 그리고 왼쪽에 성모 마리아가 모자이크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에게 佳人과 같은 죄 많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비록, 많은 부분이 없어져 버렸지만, 남은 부분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세기 후반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팔라이로고스 왕조 때의 것입니다.

우상을 없앤다며 모슬렘이 성당 안의 모자이크를 석회로 덮어버렸고, 후에 다시 모자이크를

복원하는 과정에 모자이크가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오른쪽 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제가 가까이 예수님을 모셔봅니다.

죄송합니다. 가까이 오시라고 해서요.

마치 사시처럼 흰자위가 많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정면뿐 아니라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예수의 얼굴을 바라보아도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No Flash가 요구됩니다.

여기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아예 경비가 눈을 부릅뜨고 옆에서 째려보고 있습니다.

그 경비의 눈도 눈동자에 흰자위가 많아 어디에 서서 찍어도 나를 감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 소피아 내부의 모든 모자이크는 바티칸 베드로 성당과 같이

황금과 자연산 색채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자이크에 사용된 대리석의 색깔이 무려 64가지 색이었다 합니다.

 

 

이 그림은 원래의 모양을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제 다시 원위치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요셉을 모셔 드리고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좀 더 자세히 보여 드리기 위해 가까이 모셨으니 佳人에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셨을 거라 믿습니다.

 

 

1층 입구에 있는 황제의 문을 통과하여 본당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설교단이 보입니다.

그 위의 천장을 바라보면, 까마득히 높은 곳... 그곳에 위에 보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오른쪽에 가브리엘 천사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어둡고 워낙 높아서 그냥 지나칠 수 있기에 일부러 찾아봐야 보일 정도입니다.

 

원래 왼쪽에 미카엘 천사가 있어야 하지만, 출장을 갔는지 소실되어 버렸네요.

아마도 1453년 5월 29일 난리 통에 이곳에 피신한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시민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다시 2층입니다.

가운데 군청색의 옷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는 이미 왼손에는 문서말이를 들고 계시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의 성호를 긋고 계십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왼편에는 황제인 요한 2세로 보입니다.

옷도 폼 나는 황금 옷을 입고 손에는 헌금이라도 내실 모양으로 지갑을 만지고 계시네요.

오른쪽에는 황후로 보이는 이레네가 뺨에 연지곤지가 아니고 부끄러움인가요?

손에는 두루마리 문서를 예수에게 전하는 모습입니다.

머리도 손질한 것으로 보아 아마 아침 일찍 미장원에라도 다녀온 모양입니다.

 

 

예수께서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는 성호를 긋고 왼손에는 책을 들고 있습니다.

이번 모자이크에 보이는 예수님은 조금 이상합니다.

다이어트 중이셨나 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예수의 왼편에는 콘스탄티누스 9세가 교회 헌금을 의미하는

복주머니를 바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표정이 헌금하기 아까워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는 황비 조에가 헌금을 완납했다는 문서를 들고 있습니다.

제날짜에 내지 않는다고 가산금 붙는 일을 없었을 겁니다.

 

 

조에는 아버지 콘스틴티누스 8세는 아들이 없어 큰딸 조에가 로마누스와 결혼 해 그를 황제로

만들었으나 남편이 죽자 그날로 바로 젊은 애인과 결혼해 그를 황제로 만들었지만, 박복하게도

또 죽자 여동생과 둘이서 황제에 올랐다가 나중에 다시 결혼해 그를 황제로 만들었다 하네요.

그래서 이 모자이크는 남편이 바뀔 때마다 바뀌었을 거라 생각되며 마지막 서방인

모노마쿠스 얼굴만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박복하다고 했습니까?

풋! 아닌가요? 황비 조에가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웃을 행복한 일이었나요?

젊은 나이에 서방이 둘씩이나 왜 죽었을까요?

짐작하지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콘스탄틴! 예수의 품 안에서 신앙심이 깊고 경건하도다."

"조에! 믿는 마음이 무척이나 깊은 경건한 아우구스트여~."라고 적혀 있다고 하네요.

누가 적었을까요?

다 주최 측의 농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보석으로 장식한 옥좌에 앉아 오른손으로 축복의 성호를 그어줍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라고 쓰인 성경을 펼쳐 놓고 있습니다.

왼쪽 원 안에는 성모 마리아, 오른편 원 안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있군요.

 

아주 납작하게 엎드린 사람은 로마 황제 레오 6세입니다.

이 사진은 1층에 있는 황제만 드나든다는 황제의 문 위에 있더군요.

반원형의 모자이크 그림으로 말입니다.

 

 

쟤도 가까이 불러 보겠습니다.

레오 6세는 비굴하리만치 쥐포처럼 발아래 팍~ 엎드렸습니다.

아마도 율법을 어기고 아들을 얻기 위해 여러 번 결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에효~ 그놈의 자식이 뭔지...

청문회만 열면 자식 때문에 부모는 위장전입에....

그러나 레오 황제는 무릎 한 번 꿇고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사함 받았다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주장했을 겁니다.

순전히 그림으로만...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아기 예수에게 오른쪽에는 이 도시를 건설한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모자이크입니다.

성당을 지은 유스티아누스도 뭔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지금의 성 소피아 사원을

통째로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품입니다.

 

이 그림은 아래층 출구에 있는 2중 문 중 첫 번째 문 위의 바깥쪽에 있기에 나오다가

위를 바라보면 거울에 비치는데 뒤로 돌아보지 않으면 그냥 나오게 됩니다.

佳人은 드릴 게 없어 여러분에게 이 그림을 보여 드립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이에도 손에 무슨 책을 들고 계실까요?

성경은 아닐 테고...

이 그림이 알리려고 하는 것은 교회가 왕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출구로 사용하지만, 원래 이곳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예배를 볼 때

경호원이 대기하던 장소였다 합니다.

 

 

세상은 넓고 땅 따먹을 곳은 많다는 오스만의 술탄인 메흐메드 2세...

전쟁을 통하여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그 사람...

피 냄새를 맡아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젊은 술탄...

"피의 그믐달"이라고 부르는 1453년 5월 29일에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동안 갈고닦은

전쟁 기술을 통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접수합니다.

유럽은 지금까지 전쟁에서 이렇게 훈련되고 일사불란한 군대는 보지 못했을 겁니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을 제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김종서를

찾아가 철퇴로 내리치며 시작한 계유정난이 일어난 해였을 겁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메흐메드 2세는 제일 먼저 아야 소피아에 와

천장을 올려다보니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다녀온 사신에게 술탄은 아야 소피아가 어떻게 좋으냐고 물어보면

다녀온 사신마다 맨날 "좋은 데, 정말 좋은 데,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말로만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佳人이 올려다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소름이 돋았는데 술탄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술탄은 입장권을 끊지 않고 들어왔을 겁니다.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립니다.

"그래! 결심했어~"

옆에 서 있던 佳人이 묻습니다.

"뭘?"

바로 리모델링하여 재사용하는 걸 결심합니다.

 

명품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명품도 아니면서 맨날 성형한다고 명품이 되겠습니까?

꾸미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도 명품은 명품입니다.

 

 

그 화려하고 웅장한 역사의 정수인 성 소피아 성당 앞에 선 메흐메드 2세는

성당의 위세에 흠칫 놀랍니다.

지금까지 들판을 누비며 주로 목축을 하며 지내던 유목민 출신의 튀르크 족이 아닙니까?

"이게 인간이 만든 성전이란 말인가?"

"술탄이시여~ 너무 놀라셨군요?

이거 사람이 만든 것 맞걸랑요!"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성 소피아 성당일 겁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념으로 제일 먼저 성 소피아 성당의 마당에 있는 흙을

한 줌 쥐어 자신의 머리에 뿌립니다.

왜 뿌리느냐고요?

그냥 폼나잖아요, 그리고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풋~

 

순간 그를 따르던 군사가 일시에 환성을 지릅니다.

술탄은 손을 들어 군사에게 한마디 했을 겁니다.

뭐라고요?

"인샬라!"라고요.

정말일까요?

佳人의 이야기는 아니면 말고입니다.

 

 

창문을 바라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약 두 달간의 지긋지긋한 전투가 이제 끝이 났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 남았기에...

그리고 손을 들어 군사를 향해 메흐메드 2세는 호기를 부리며 외쳤겠지요?

뭐라구요? 

"이제 기독교도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곳에 더는 없도다. 오직 알라만이 있을 뿐이다!"

"어른은 없고 알라들만?"이라고 佳人이 물으면 무식하다고 할 겁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나 봅니다.

인간이 신을 물리치기도 하고 모셔오기도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소리를 들으셨다면,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인도에는 신의 숫자가 3억 3천 명이나 되니...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했던가요?

이렇게 인간에 의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자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대접받기 위해 오히려 신이 인간을 잘 섬겨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래요... 누구나 보는 눈을 있어서...

비록 약탈과 피비린내를 맡아야 숙면을 취한다는 그였지만, 성 소피아 성당을 보는 순간 아마도

속으로 "우리는 전쟁만 즐기는 야만인이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다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위의 사진은 이슬람의 성직자 이맘(Imam)이 설교를 위해 오르내리는 Only Imam 계단입니다.

 

 

덜수 장군이 술탄에게 묻습니다.

"위대하고 전능 전지 하신 우리의 지도자이며 세상의 유일한 알라의 자손이며... 어쩌고저쩌고~

이 성당을 어찌하오리까? 빠샤 버릴까요?"

아! 우리의 호프 덜수가 또 나타납니다.

 

 

위의 사진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예배하던 1층 중앙 오른쪽에 있는 장소입니다.

세상의 중심이라 믿고 옴파로스라고 생각했던 곳.

그러나 옴파로스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어리석은 사람이었나 보네요.

 

 

푸~ 하하하~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바닥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술탄은 조금 더 높게 단을 만들어 저 위에 올라가 예배를 올리면 되겠지?

왜 그랬을까요?

답은... 폼 나잖아요~

세상에 모스크라는 자미에서도 무엇이 겁이나 혼자 독방 쓰고 있습니다.

술탄이시여~

그리도 암살이 겁이 나시더이니까?

밤에는 화장실을 어찌 가시고 어찌 주무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곳에서 비잔틴 황제가 예배 올렸던 곳을 내려다보니 시원합니다.

이곳에서는 동로마 황제의 대관식도 열린 장소라는군요.

여기가 세상의 배꼽이라고 말하는 옴파로스랍니다. 칫~

 

 

대장군 덜수는 술탄에게 성 소피아를 빠셔 버릴까요? 말 까요라고 물었겠지요.

술탄의 한 마디

"정신 나간 놈! 냅둬!"

사실 처남만 아니라면 술탄은 눈치도 없는 덜수 장군을 벌써 잘라버렸을 겁니다.

잘하는 게 눈앞에서 비위 맞추고, 밥 먹을 때 제일 먼저 숟가락 드는 것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투 중에도 주색잡기에 빠져 아예 마르마라 해에 빠뜨려 버리고 싶었습니다.

술탄은 냅둬라는 말을 하고 佳人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나 어땠어? 잘했쪄?"

저요? 잘했다고 술탄의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밈바(Mimbar)라는 설교단을 만들고 미흐랍(Mihrab)을 메카 방향으로

틀어버리고 모자이크는 가려버리면 되는데 왜 또 돈 들여 새로 짓는단 말인가?

그동안 전쟁하느라 쓴 돈이 얼마인데 저놈은 눈치도 없이 부숴버리자고?

난 차라리 네 머리를 부숴버렸으면 좋겠네~~"

뭐 佳人이 옆에서 들어봐도 쥐 패고 싶었으니까요.

 

미흐랍은 위의 사진처럼 움푹 파인 것으로 그 방향이 메카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 차이가 10도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는 딱 10도의 차이만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 옆에 큰 촛대가 두 개 보이는 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이 헝가리를 정복하고

기념으로 가져온 것이라네요.

모든 살림살이가 다 전쟁만 하며 저절로 생기는데 왜 집에만 있습니까?

오늘도 보람찬 전쟁터로 나가야지요. 

 

그래서 처음 만든 성당의 문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설교단인 맘바는

메카를 향하게 하였으니 들어가 자세히 바라보면 어수선하여 방향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이래서 리모델링은 완전히 부수고 다시 짓는 재건축을 따를 수 없습니다.

 

 

원래 이슬람의 율법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곳은 3일간 약탈이 허용되지만,

그러나 성 소피아 성당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두라고 합니다.

메흐메드 2세에 의한 순간의 선택...

10년을 간다고요?

웃기지 마세요.

네~ 지금까지 1500년이나 가고 있습니다.

 

 

이로써 지금까지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입장료를 내니 후손이

관광수입을 올리는 즐거운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렇게 겨우 약탈에서 벗어나 살아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자~ 우리 여기서 한번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성 소피아 성당이 그저 그런 건축물이었다면, 과연 메흐메드 2세의 마음을 돌렸을까요?

처남인 덜수 장군의 말대로 팍~ 빠셔 버렸을 겁니다.

사람이나 건축물이나 잘생기고 봐야 합니다.

명품 가방 든다고 우리의 삶이 명품이 되겠습니까?

나를 위해 듭니까? 남의 시선 때문에 듭니까?

더 좋은 가방이 나오면 우짤낀데요.

 

 

냥이는 따뜻한 곳이 좋다고 합니다.

아주 믿음이 강한 고양이들이 이곳 아야 소피아에는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녀석들이 바로 황제만 드나들었다는 황제의 문으로 드나든 놈들입니다.

비잔틴의 황제는 고양이 황제인가요?

 

 

터키를 다니다 보면 거리에 개나 고양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슬렘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예언자 모하메드가 자신의 옷자락 위에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잘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이 잡듯이 뒤져 돈 될만한 것은 모두 챙기고 건물만 남겼겠지만....

그래도 껍데기라도 남겨두었으니 세상의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꾸역꾸역 밀려오고 입장료

수입만 후손이 챙기니 메흐메드 2세의 "냅둬!"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정입니까?

 

저기 보이는 달 항아리 말입니다.

예전에 문 앞에 두고 들어오는 참배객이 깨끗하게 씻으라고 했던 것을

지금은 실내에 들여다 놓았습니다.

보세요~ 달 항아리도 잘생겨야 실내로 들어옵니다.

 

오늘 아야 소피아를 끝장 보려고 했지만, 아직 사진이 남아 있어 내일 하루 더 연장합니다.

그냥 냅둬 버릴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랑하는 사람에 집착하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걱정이고

미워하는 사람은 또한 만나서 걱정 이리니...

세상은 그 자체가 걱정이고 우리는 걱정 속에 살아가느니

이 또한 살아가는 일이 걱정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