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종착역

2011. 5. 6. 00:16터키 여행기/터키여행

위의 사진은 우리가 타고 다닌 관광버스에 인쇄된 튤립을 형상화한 것과

터키라는 영문의 이미지입니다.

튤립과 어울린 터키라는 단어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터키를 운행하는 모든 관광버스에 사용된 로고로 보였습니다.

터키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입니다.

민족도 돌궐 족이라는 튀르크족이고 터키의 언어도 우랄 알타이 계통이라서

어순도 우리와 같다고 합니다. 

 

여행기를 쓴다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가면 눈도 침침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속도도 독수리가 할배라고 놀리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사진을 선택하고 그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인용해야 하고

거기에 본인의 생각을 곁들여야 그래도 어느 정도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가 높은 여행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佳人이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佳人 자신의 여행 기록이며

그때 보고 느낀 점을 혹시 글을 읽는 분이 조금이나마 함께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용감하게 도전합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남겨 온 그 모습이 매우 좋아 여기에 올려 봅니다.

터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더 많은 한국인이 다녀왔으면 좋겠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11시간을 비행하여 이스탄불로 갑니다.

이스탄불...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보다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이름이 이스탄불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AD 330년 이전까지는 그리스의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330년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는

비잔티움을 동로마의 수도로 정하고 그 이름을 새로운 로마라는 의미인 Nova Roma라 정했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따 애칭인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동로마가 튀르크 족의 오스만 제국에 멸망하며 이슬람 사람의 땅이라는 의미로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네요.

이는 동서양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이자 새로운 세계의 질서가 생기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니 그 기가 센 땅은 팔자도 사납게 그리스인에서 로마인 그리고 튀르크가 지배함에 따라

이름마저 바꾸며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번창했었다는군요.

이제 유럽 문명의 기초 위에 새로운 아시아 문명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비행기는 아침 9시 45분 거의 정확한 시간에 인천공항을 이륙합니다.

창문으로 서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지만, 바다와 하늘이 같은 색으로 하나로 보입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은 터키의 국부라는 아타튀르크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며 그동안

오스만 제국의 왕이라는 술탄에 의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며 그 오랜 세월

꿋꿋이 견딘 古都 이스탄불은 옛 유적이 많은 박물관과 같은 도시로 남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탄불은 고대 그리스 문명과 로마문명 그리고 오스만에 의한

튀르크 문명이 혼재해 있는 복잡한 곳으로 발전되었더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구경하는 유적 대부분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튀르크 족은

손도 하나 보태지 않고 1453년 어느 날 총칼을 앞세워 그냥 밀고 들어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말끔히 정리하고 점잖게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해도 세상은 힘의 역학관계로 언제나 재편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그냥 숟가락만 들고 반찬 한두 가지만 놓고 밥상에 앉아 관광수입을 올리는 나라가

터키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오스만 시대 이전에 만든 유적이 아직 성벽을 따라 굴러다니는 박힌 돌이

무지하게 많이 남아 있더군요.

 

왜 이렇게 유적을 관리하느냐고 물으면 발에 밟히는 게 유적인 데

어떻게 모두 관리하느냐고 할 겁니다.

문명이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이질적인 문명이 충돌하며 새로운 문명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그 문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아름다운 문명을 낳게 하나 봅니다.  

 

비행기는 서해를 건너 북서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베이징 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향하여 중국 상공을 날아갑니다.

 

어디 그것뿐이던가요?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 지역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고 영토를 넓혀갔더군요.

주변의 나라 중 오스만 제국에 한두 번 얻어터지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도 제일 가까이 있었던 그리스 말입니다.

먼저 문명을 꽃피운 나라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로 오랜 세월 지냈더군요.

 

신성 로마제국의 심장인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 말입니다.

합스부르크 家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오스만 제국에 두 번이나 얻어터졌다는군요.

한때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던 나라가 쥐여 터지니 어디에다 하소연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디 그 권력이 영원히 지속하겠습니까?

花無十日紅이지요.

 

오스만 제국도 점차 점차 세력이 약화하자 여기저기서 숨죽이고 살아왔던 나라들이

자꾸 독립해 딴살림하겠답니다.

환장하겠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오스만 제국은 독일 편에 섭니다.

이때도 줄을 잘 서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오스만 제국을 버렸나 봅니다.

 

우쒸~

전성기 때는 술탄의 정원을 모두 금잔디로 덮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별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은밀히 늙은 사자인 오스만 제국을

어떻게 요리하나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러니 제대로 딱 걸린 셈입니다. 

 

독일이 주축이 된 세력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자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는 너도나도

모두 독립을 하게 되고 게다가 오스만의 본점인 아나톨리아까지 외국의 군대가 점령을 하며

외국군에 의해 국토가 짓밟히는 치욕적이 수모를 겪자 한 때 유럽을 주름잡고 그 위용이

하늘을 찔렀던 오스만 제국의 왕인 술탄의 세상은 절단나 버립니다.

원래 대그룹이 부도가 나면 계열사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본점도

채권단에 의해 홍역을 치르잖아요.

 

아~ 한때는 유럽의 심장을 째려만 보아도 모두 벌벌 떨었지만, 이제는 콧웃음 칩니다.

제국의 꿈이여~ 튀르크의 기상이여~

이렇게 끝나버리나요?

 

식민지로 있을 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던 그리스마저도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도

옛날에 그리스 땅이었다고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위의 큰 형님들이 본토는 그냥 봐주고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있던 섬은

모두 그리스에 넘겨주라고 하니...

 

에고에고 속쓰려라

어이할꼬 튀르크여

한시대의 영광에서

쪽박차게 생겼구나

어이하다 요로코롬

이지경이 되었느냐

 

사실 아시아계의 민족으로 유럽의 간담을 서늘케 한 나라가 칭기즈칸과

오스만의 술탄이 아니겠습니까?

과거 문명이 앞서 있다고 늘 폼만 잡던 유럽인에게 파죽지세로 몰아붙인

몽골과 튀르크는 또 하나의 문명입니다.  

 

이제 벌써 몸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이륙 후 1시간이 지나니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장거리 비행기에서 먹는 일은 마치 사육당하는 느낌입니다.

한자리에 앉아 먹고 마시고..

그리고 잠시 쉬었다 또 먹고 마십니다.

 

한식은 그냥 쌈밥...

그런데 양식은 왜 저렇게 복잡합니까?

결국, 나오는 것은 작은 쟁반에 담긴 총량은 다 같은데...

 

소화도 아직 되지 않았는데 또 간식이라고 피자도 나옵니다.

예전에는 따로 돈 내라고 하는지 알고 점잖게 사양했지만, 지금은 비행기 요금에

포함된 것이라고 가능하면 먹습니다.

그러나 배낭여행이라면 먹을 수 있는 한 무조건 꾸역꾸역 밀어 넣겠지만,

여행사를 따라간 여행은 가끔 사양도 합니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때 하늘 정원에서 하는 멋진 식사라고 생각했지만,

헐~ 이제는 꾀가 나니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먹는 식사는 전혀 낭만적인 하늘 정원이 아니고

마치 우리에 갇혀 먹고 마시는 단순한 일입니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비행기 안을 어슬렁거리는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11시간을 가도 가도 해는 중천에 떠있는 대낮입니다.

 

심심해서 비행경로를 그려보니 위의 지도와 같더군요.

25년 전 오스트리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佳人도 옛날에는 어마어마했거든요.

 

그때는 유럽항로가 지금과 다르게 태평양을 건너 앵커리지에 잠시 내려 급유하고 다시

대서양을 넘어 19시간 만에 유럽으로 들어간 경험이 있어 장거리 비행에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11시간의 비행은 무척 힘이 들더군요. 

 

이제 이런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우리가 내릴 이스탄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은 바닷가에 있더군요.

   

지붕 모양을 보세요.

빨강 기와에 위성 안테나, 그리고 태양열 집열판이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냉큼 지붕에 올라가 앉아 있습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이기에 높은 건물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건물만 보입니다.

가끔 미나렛(Minaret)이라는 첨탑이 보이고 돔 지붕을 한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가 자주 보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하늘 보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거나 삿대질한다고

경을 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터키는 인구의 98%가 이슬람을 믿는 회교국가랍니다.

삿대질했더라도 하루에도 다섯 번 하늘을 향해 머리 조아리고 빕니다.

 

얘야~ 빨리 방 빼라...

우리가 내려야 하지 않겠니?

 

이번 단체 여행의 우리 일행은 무려 41명..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입니다.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에서 즐거우려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어떠냐 와 가이드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입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많은 사람이 하는 여행은 자제해야겠습니다.

너무 일행이 많아 가이드가 유적을 설명하는 말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유적에 관한 설명도 대충하고 말았지만...

 

가이드 또한 많은 사람으로 쇼핑센터를 갈 때 목청을 높여 이야기하고 그다음은 진을

모두 뺀 탓에 매우 지친 듯 유적 설명은 귀찮은 듯 적당히 하고 넘겨버립니다.

가이드는 수준과 기대 이하였지만,

그래도 함께 여행을 한 모든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시는 멋진 분들이라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41명 중 남자는 11명이고 나머지 30명은 여자입니다.

대한민국의 성비는 남녀가 비슷하다는데, 왜 여행길에서는 일방적으로 밀립니까?

집에서 젖소는 남자만 키워야 합니까?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75세까지 다양했습니다.

맨날 부부 둘이만 배낭 짊어지고 다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여행도 재미있습니다.

 

요즈음의 터키의 환율입니다.

터키는 리라를 쓰고 TL이라고 표기하더군요.

달러화 대비 1.5이고 유로화 대비 2.2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원화는 1 터키 리라가 800원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전압과 전기 콘센트는 우리와 같았습니다.

먹는 물은 관광버스 안에서 1불에 2병씩 팔더군요.

그리고 터키 말로 물을 수(SU)라고 합니다.

물이 귀한 나라이고 화장실 사용도 유료인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간다면 아시안 하이웨이를 달려 그 종착역인 이스탄불까지 갈 수 있겠지만,

아직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자동차로는 가지 못한답니다.

일본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 부산 - 서울 - 평양 - 신의주 - 중국 - 베트남 - 태국 - 인도 - 파키스탄 -

이란을 거쳐 이스탄불까지 연결되는 도로입니다.

 

우리나라를 출발하는 아시안 하이웨이는 위의 노선인 AH1과 부산에서 출발하여

동해안으로 올라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스탄불로 이어지는 AH6 두 개의 노선이

있으며 이스탄불은 옛날에는 실크로드의 시발점과 종착점이었고,

이제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종착점이며 시발점입니다.

 

터키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8배나 되는 넓은 나라이더군요.

유목생활하다가 멀리까지 흘러가 한때 더 큰 영토도 취했지만, 그래도 평수 하나는

넓게 차지하고 살아가는군요. 

북으로는 흑해, 남으로는 지중해, 동으로는 대리석이라는 의미의 마르마라 해와 에게 해

그리고 보스포루스 해협이 이스탄불을 두 개의 대륙에 걸치게 했더군요.

 

그러다 보니 직접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가 동으로는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비롯하여

모두 8개국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닐 지역을 지도로 표시를 해보았습니다.

터키라는 나라 전부를 도는 것도 아니고 서부지역만 돌아보는 여행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계방향으로 돌아보는 거리가 무려 2.960km나 되는 대장정입니다.

장거리 버스여행에 단단히 대비해야 합니다.

 

동부지역은 아직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특히 이라크 북부와 터키에 모여 사는 쿠르드 족이 독립을 주장하며

딴살림 차리겠다고 갈라서자고 한답니다.

딴살림 차리라고 하니 땅도 달라고 하여 터키 정부에서는 못 들은 체하는 가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곳에 가면 친절하신 우리의 외교부에서 휴대전화로 위험국가라고 문자가

들어오는데 대한민국의 외교부가 하는 일은 문자질 외에는 없는 듯합니다.

가업을 잇는다고 자식 놈들 특채시키는 일에는 열심히던가요? 

 

터키의 튀르크 족은 흔히 우리가 아는 돌궐의 후예라고 했던가요?

돌궐이란 흉노족이라고도 하고요.

우리 선조인 고구려와 발해가 중원과 경쟁하며 살던 시절 돌궐은 중원의 북쪽에 살며 우리 선조와

가끔 연합하여 중원에 맞서며 살았기에 그래서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가 봅니다.

때로는 중원과 연합하여 고구려 원정에도 동참했다고 하니 우리와는 애증의 관계였나 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만주지방까지 워낙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살았기에 지금의 터키에 사는 사람이

직계 후예라고 할 수 없지만, 한국 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까지 한 나라이기도 하지요.

그때 파병 이유야 나토 가입 때문이겠지만, 작년에 자신이 돌보았던 "아얄라"라는

여자 전쟁고아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한국전쟁 파병용사의 말에 따르면

파병 사령관이 한국이 같은 핏줄이니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는군요.

 

그때 미국과 영연방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5.000여 명의 터키 군인이 왔으며

 공식적으로 721명 전투 중 목숨을 잃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혀 있는 사람이 4백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실종 175명, 부상 1.475명에 달합니다.

원래 유목민의 후예라 목숨을 잃으면 그곳에 묻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제의 나라라니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하나요?

 

터키 병사는 한 번에 5.000명 정도씩 세 번에 걸쳐 파병했으며 처음에는 후방 지원업무

만 하기로 했지만, 전선에 투입되며 튀르크의 용맹성을 인정받아

언제나 앞장서 최전방에서 싸웠다 합니다.

터키 전역에서 지원한 지원병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꼬레라는 나라가 알려졌으며

이들은 주민등록증에 제2 국적을 꼬레라고 자랑스럽게 쓰고 스스로 꼬렐리(한국인)라고 하며

한국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행 중에 만난 터키인은 정말 우리에게 먼저 미소를 보냈으며 한국인임을 알고

더 반갑다고 하더군요.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터키처럼 편안하고 즐거웠던 경험도 많지 않았습니다.

참전용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더 많은 사람을 한국으로 초청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도 터키 병사들은 전쟁 중 돌보기 시작한 전쟁고아를 돌보는

보육원과 학교 사업을 계속하며 더 여러 해 한국에 머물기도 하다가 철수를 했다고 하니

무척 정이 많은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무척 다정하게 먼저 인사하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고

꼬레라고 하자 꼬렐리라고 반갑다고 사진도 함께 찍자고 하더군요.

 

아닌가요?

이 佳人의 죽일 놈의 인기 때문인가요?

좌우지간 터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라 중 손에 꼽히는 나라일 겁니다.

터키 또한 한국인이라면 친척을 만난 듯 한 번 더 미소를 지어주는 다정다감한 민족입니다.

 

넓고 비옥한 땅에 농사와 주로 양을 키우며 살아가기에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지만,

아직 국민소득이 7천 불 정도로 다른 유럽에 비해 부자나라는 아닌 듯하네요.

기후가 나빠 농사라도 흉작이면 유럽의 농산물 가격이 들썩일 정도로 많은 농산물을

유럽으로 수출하나 봅니다.

 

주로 양을 키우지만,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에 돼지는 그곳을 드나들 수도

그곳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돼지가 얼마나 황당해하겠습니까?

삼겹살이 얼마나 맛이 있는데 튀르키에는 삼겹살 맛을 알 수 없을 겁니다.

 

일행 모두가 공항에 대기한 버스에 오르니 현지 시각 4시경으로 한국은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그곳 여행사에서 나온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구 시가지인 술탄 아흐메트로 갑니다.

그러니 한국시각으로 오밤중에 구경 다닌다는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두려움은 佳人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겠지만,

도전은 佳人을 자유롭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제가 글재주도 없으며 이렇게 여행기를 남기는 이유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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