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서서 터키를 느껴봅니다

2011. 5. 11. 00:05터키 여행기/터키여행

터키는 세계문화유산이 아홉 곳이나 지정될 만큼 역사적인 유물과 유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유럽연합도 이스탄불을 2010년에 EU 문화와 역사의 수도로 정할 만큼

풍부한 유산을 지닌 나라입니다.

연간 1.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나라라 하는군요.

 

오늘도 佳人과 함께 동서양을 넘나들며 산책이라도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음악도 들어가며 콧노래라도 불러가며 즐겁게 거닐어보면 어떨까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바로 아시아와 유럽에 양발을 걸치고 있는 도시라 하네요.

 

오늘 잠시 쉬었다 가시죠?

저요?

늘 언제나 님이 오시기를 길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세상을 살며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습니다.

함께 하신다면 영광입니다.

 

이스탄불을 "인류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다."라고 했답니다.

佳人이 한 말이 아니고 인류학자 토인비가 말입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곳에 서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뭐 토인비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곳에 서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데 바로 술탄 아흐메트라는 지역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지역입니다.

 

그럼 이스탄불 지도를 한 번 불러 볼까요?

둥그런 부분이 이스탄불 중에서도 유적이 모여 있다는 곳이 술탄 아흐메트라고 한답니다.

이 지역을 구시가지라 하고 바로 위에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라 부릅니다.

두 지역을 골든 혼이라는 만(灣)이 갈라놓았지요.

 

그리고 오른쪽에 마르마라 해라는 바다가 있고 바다 건너가 아시아 땅입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는 다리가 위편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군요.

이렇게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하늘을 향해 솟은 미나렛(Minaret)이라고 하는 첨탑이 무척 많다는

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스크가 많지 않기에 여기에 와서 본 첫인상은

자미의 첨탑이 눈에 띕니다.

자미란 모스크를 지칭하는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대부분 모스크에는 첨탑의 숫자가 많지 않지만, 이곳에는 4개짜리는 물론 6개짜리도 있습니다.

 

4개짜리는 술탄의 모스크이고 6개짜리는 메카에 있는 것만 6개를 세워야 하는데

여기에 말귀 어두운 건축가가 잘못 알아듣고 세우는 바람에 이스탄불에도

미나렛이 6개짜리가 있게 된 변명 아닌 이유랍니다. 

 

술탄 아흐메트 안에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살았다는 대포의 문이라는 의미인 톱 카프 궁전이

있으며 그리고 이미 우리가 둘러본 동로마 때 만든 성당이며 나중에 오스만의 침공 때

술탄이 그 모습에 경탄하고 부수지 말고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라고 했던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 있습니다.

 

맞은 편에 아야 소피아를 보고 기죽기 싫다고 이슬람의 모스크인 첨탑 6개짜리 블루 모스크와

지하 물 저장시설인 예레바탄과 옛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거대한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가 모여 있습니다.    

 

이스탄불의 위치는 정말 묘한 자리에 있습니다.

도시의 가운데를 에게 해에서 흑해로 이어지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어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고 이번에는 골든 혼이라는 금각만이 도시 가운데를 가로질러 들어와

유럽지역의 이스탄불을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눕니다.

 

하나의 도시에 구도시와 신도시 그리고 동양과 서양이 함께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문화뿐 아니라 문물이 늘 교통 하는 곳이 되어 항상 흥청거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정말 목 좋은 곳에 있었으니 좌판만 벌이면 떼돈을 벌던 곳입니다.

 

규모도 크고 역사도 오래된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가 이스탄불에 있지요.

과거 실크로드를 따라 낙타를 몰고 다닌 대상이 마지막 짐을 부린 곳이

바로 그랜드 바자르라는 시장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처음에는 그리스가 지배하며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그 후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수도로 정하며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가 중앙아시아에서 슬금슬금 세력을 키우며 이 부근으로 내려와 모여 살던

돌궐족이라는 튀르크에 의해 만들어진 오스만 제국이 접수하며 이슬람의 땅이라는 의미인

이스탄불로 문패를 바꿔달고 지금에 이르렀답니다.

 

터키는 그들 스스로 튀르크라고 한다는군요.

튀르크는 우리가 부르는 돌궐이라는 민족이고요.

돌궐은 중앙아시아에서 만주까지 넓은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족이라고 하네요.

 

넓은 지역이라 같은 민족이었지만, 동, 서로 각각 분리되어 두 나라였다고 하네요.

나중에 동돌궐은 당나라에 의해 멸망되며 없어지고 서돌궐이 이슬람을 믿고

점차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하며 1.299년 드디어 오스만 제국을 세웠다고 합니다.

 

과거 수나라는 동서의 돌궐을 이간질하여 동돌궐을 약화시키고 군신관계로 만든 후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나라까지 거덜 내는

웃기지도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지요.

 

동돌궐이 강력한 시기에 중원에서는 당이 나라를 세웠으나 처음에는 강력한 돌궐에

대항하기보다 엎드리는 전략으로 신하로 돌궐을 섬기는 일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중원의 당은 원기를 회복하고 북쪽의 돌궐은 내분과 자연재해로 다시 분열되며 반대로

군신의 위치가 바뀌는 관계가 되며 돌궐은 중원과의 대결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며

중앙아시아로 또 남으로 점차 이동하게 된 유목민족이라고 하더군요.

 

역사적으로 돌궐족과 우리 민족은 여러 차례 겨루기도 했고 또 서로 힘을 합쳐

중원에 대항하기도 하며 애증의 관계였나 봅니다.

한국전쟁이 아마도 마지막으로 한민족과 돌궐 족이 힘을 합쳐

중국과 싸운 동맹 전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후 우리와 직접적인 관심을 주고받은 가장 최근의 일은

2002년 서울 월드컵 준결승전이었을 겁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국의 국기가 게양되고 국기에 경례 할 때

우리나라는 언제나처럼 대형 태극기가 관중석을 덮었습니다.

일종의 상대 팀 기죽이기 전략이지요.

 

그런데 터키의 국가가 연주될 때 같은 크기의 터키 국기가 마찬가지로 관중석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상대 팀을 주눅이 들게 했던 우리의 전략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바로 터키를 우리의 형제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지요.

 

아마도 그 모습을 지켜본 세계인은 대단한 대한민국이라 감동했을 겁니다.

하물며 터키의 국민은 어땠을까요?

지금 그때의 감동은 간직한 그 터키의 국기가 터키의 축구협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스포츠로 말미암아 전쟁도 일어날 수 있는 경기가 축구라는 경기가 아닐까요?

그러나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두 나라의 경기는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축구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귀네쉬 감독도 경기가 끝난 후 조금이나마 보답한다는 의미로 대한민국 태극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섰지만, 거꾸로 들으셨네요.

사실 우리나라 태극기의 상하좌우는 외국인에게는 구분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에 아무렇게나 들어도 좋은 나라는 일본의 일장기밖에는 없습니다.

 

佳人도 터키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뭉클한 감동을 했는데

하물며 터키인들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패닉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15.000여 명이 참전해 7백 명이 넘는 젊은이가 한국땅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고 수천 명이 다쳐 불구의 몸이 되었지만,

이 장면으로 조금은 위로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터키 여행은 배낭여행이 아니라 여행사를 따라간 아주 편한 여행이었습니다.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한 여행이라 출발 1주일 전 여행을 결정했고 5일 전

우리가 결정한 날짜에 여행이 취소되었다고 여행 일정이 당겨지는 바람에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온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비행편은 아시아나 직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출발은 2011년 4월 16일(토) 출발하여 24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9일 일정이지만 실제적으로는 7일간의 여행입니다.

 

공항에서 버스나 트램이라는 전차도 이곳으로 운행되기에 배낭여행자도 쉽고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도 이 근처에 있고 식당도 많아

배낭여행을 오셔도 힘들이지 않고 며칠 즐기며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탄불의 도로는 무척 좁고 혼잡한 편입니다.

게다가 전차마저 다니니...

술탄 아흐메트는 유적이 많은 지역이라 도로를 넓힌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겠네요.

  

아타 튀르크라는 이름도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입니다.

공항에서 많은 볼거리가 모여 있다는 술탄 아흐메트라는 지역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동로마제국의 흔적과 오스만 제국의 화려함을 볼 수 있고 실크로드의

종착점이었던 그랜드 바자르도 둘러볼 수 있다고 하니 배낭여행자도 쉽게 둘러볼 수 있겠네요.

원래 구시가지라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나 배낭여행자에게 먹고 잘 수 있는 곳이잖아요.

 

여름철은 서머타임으로 우리나라보다 6시간 늦습니다.

겨울에는 7시간의 시차가 있고요.

그러다 보니 아침에 출발해 낮에 도착하게 되는군요.

 

화폐는 터키 리라로 1리라가 우리 돈 800원 정도 하며 유로와 달라도 유통되더군요.

나토 회원국이지만, 유럽연합에는 가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가입하지 못했다네요.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동남쪽 일부에 사는 쿠르드 족을 제외하고는 튀르크족이랍니다.

 

많은 여자가 히잡이니 차도르니 하는 것을 뒤집어쓰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배꼽을

드러내고 벨리댄스라는 배꼽춤을 황홀하게 추는 나라를 이해하기가 쉽지만 않을 것 같네요.

밸리 댄서는 배만 흔들지만, 바라보는 佳人은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흔들립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동서도 길고 감자처럼 통통한 형태의 나라로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이스탄불은 아시아의

신시가지와 유럽의 구시가지로 나뉘어 있는 경계에 있는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두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융합입니다.

 

이제 내일은 로마시대의 전차 경기가 열렸다고 생각되는 히포드롬이라는 곳을 찾아 니다.

혹시 그곳에서 미스터 벤허나 글래디에이터인 러셀 크로우를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내들의 땀 냄새와 거친 숨소리가 들렸을 그런 곳으로 가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터키인이라고 해도 얼굴이 많이 다릅니다.

오스만 제국 시절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와 유럽도 일부 경영하다 보니

많은 인종이 섞여 그런 가 봅니다.

아시아계는 우리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였습니다.

마치 인종 전시장으로 보였지만,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터키라는 용광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이 함께 녹아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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