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더 징그러운 것이 情이더이다.

2010. 6. 15. 21:58동남아시아 여행기/하노이 방콕 배낭여행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렵니다.

아니 오늘 나만이 그리는 마지막 그림을 그려가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차 한 잔 마시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온종일 이야기하고 싶은 당신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내 이야기만 들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하며 담장 너머로 긴 목을 빼고

온종일 내 말만 들어주는 능소화 같은 당신이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여행이란 다녀와도 언제나 한구석에 그냥 빈듯한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당신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꽃길을 함께 산책하며 佳人이 수다라도 떨어도 흉보지 않고 빙그레 웃어줄

당신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흐엉 사(香寺)라고 하는 퍼퓸 파고다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베트남 사람의 탄생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판배를 타고 노 젓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조용한 강을 거슬러 다녀왔습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도 모두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고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강 위에서 멋진 저녁노을도 기대했습니다.

발이라도 물에 담그고 콧노래라도 부르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앞으로 남은 삶을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노이에서는 시내버스를 타고 실크 빌리지와 밧짱 도자기 마을을 다녀왔는데 800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옛 마을인 밧짱에서 예쁜 도자기의 세상으로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소리를 들으면 스스로 자비심이 생긴다는 도자기 풍경이 내는 청아한 소리를 듣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바쁜 걸음에 그냥 먼저 지나치기라도 했더라면 佳人이 당신의 손을

잡아끌고 함께 귀를 기울였을 겁니다.

 

태족의 마을 마이쩌우에서 1박을 하며 여행 중에 쉼표를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외국인과 함께 트레킹을 하며 비록 세대차이는 있지만,

그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방콕으로 넘어와 한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했던 시암족의 고도 아유타야를 돌아보며

세월이 흐르면 옛 영화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느껴보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세월이 흐르면 이와 같이 덧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이란 퍼즐 맞추기처럼 늘 우리에게 새롭게 맞추어 보라고 합니다.

간신히 맞추어 놓으면 흩뜨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맞추라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얄미운 삶을 언제나 토닥거리며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얄미운 삶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을 때까지.... 

 

기울어져 가는 나라에서는 그 많은 부처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좋은 시절에는 늘 공양하라고 하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시치미를 떼셨더군요.

 

우리의 삶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내게 투정하고 사랑해 달라고 하고는 내가 필요할 때는 나의 삶도 모른 척

외면했고 내가 힘들어 할 때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佳人은 아직 그런 나의 삶을 짝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칸차나부리에서는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를 떠올리며 옛날에 나라 잃은 우리 선조가

위안부와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이역만리 끌려온 억울함에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내게 분노라는 감정이 남아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여행이란 빈 종이에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잘 그렸던 잘못 그렸던 나름대로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 자체가 소중한 일이 듯 말입니다.

그렇지요? 부처님!

또 시치미 떼시고 누워계십니다.

 

내가 그린 그 그림은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비난받을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평가할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둘이서 함께 걷고, 눈으로 보며, 머리로 생각하며,

돌아와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행복이란 혼자일 때보다는 둘이 할 때 몇 배나 됩니다.

 

비록 겉모습만 스치고 돌아왔지만, 우리 마음에 각인된 것은 무한한 아름다움입니다.

볼 수 있어, 들을 수 있어, 그리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그들 속으로 녹아들어 가려고 했어도 우리 부부는 결국 이방인이었습니다.

 

두 눈이 있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두 귀가 있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두 발이 있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사람의 가슴이 있어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이렇게 부부가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두 사람이 사용한 비용은 비행기 요금 70만 원/2인, 한 달간 비용 95만 원/2인으로

총비용을 둘이서 한 달간 165만의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왔습니다.

비용이 적다고 보고 느끼는 게 적은 것은 아닙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적은 비용도, 언어도 즐기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佳人의 이야기는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에게는 정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佳人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오늘 살아가며 또 하나의 쉼표를 찍었습니다. 

거의 한 달간의 여행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여행 이야기는 사진 정리에서부터 6개월간이나 썼습니다. 

 

정말 놀랄 일은 우리의 언어수준과 체력에는 버거울 정도의 일정이었지만 무사히 완주를 했다는

것이며 그리고 형편없는 글솜씨에도 마지막 글을 오늘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집에 돌아와 배낭을 푸는 순간 다음에는 언제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하는 우리 자신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 자체가 여행길이니까요.

그동안 늘 함께 하시며 부끄러운 이야기에 격려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님의 격려가 오늘 마지막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이다음에 낯선 여행지에서 님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아니... 꼭 여행길에서 우연히 어깨라도 부딪힐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면 싸움이 되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맞추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면 더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수확한 행복은 내가 심은 나무에서 자란 것입니다.

내가 수확한 불행도 내가 심은 나무에서 자란 것이고요.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 그 자체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갑니다. 

 

부부만 둘이서 이렇게 한 달을 다니다 보니 서로 간 양보와 이해를 배우게 됩니다.

이제 이미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 나이가 지났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얄미운 운명이 한때 우리 부부 사이에 끼어들었을 망정....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더 함께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살아보니 사랑보다 더 징그러운 것이 情이더이다.

이제부터는 그 징그러운 情으로 살아가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내일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나간 어제가 이미 내 것이 아니듯이 내일도 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이 내가 생에 마지막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