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점짜리 인생도 채워가며...

2010. 6. 5. 08:17동남아시아 여행기/하노이 방콕 배낭여행

사원 내부를 이곳저곳 돌아봅니다

볕이 무척 따갑습니다.

사원의 모습이 아름답기보다는 무척 화려합니다.

 

아.... 중생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눈물로만 채우는 일입니까?

 

스님~

사진만 찍지 마시고 제게 가르침을 주시지요.

마치 합장을 하는 듯 하지만 햇볕을 손으로 가리며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앞의 그늘진 곳에 스님이 "김치~"하시고 계십니다.

스님~ 깨달음이란 무엇이니까?

 

깨달음?

그걸 알면 벌써 큰 스님이 되셨다구요?

 

깨달음이란 멀리 있고 대단한 경지에 오르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잠자는

나 자신을 깨우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라굽쇼?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는 부처상이 많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유리창 안에 계시니까 무척 답답하고 지루하신 모양입니다.

둘러보고 있는 데, 위의 사진 중 제일 왼편에 계시는 부처상이 佳人에  대뜸

"왼손 올려"라고 합니다.

저요? 얼떨결에 왼손 올렸습니다.

 

조금 안으로 들어옵니다.

위의 계신 부처상은 저보고 "佳人아~ 오른손 올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약간 복부비만처럼 보입니다.

저요? 복부라면 저도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어쩝니까 오른손을 올렸지요.

 

이번에 계신 부처상은 큰소리로 "양 손 올려~"라고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양 손을 다 올렸지요.

 

그리고 그곳을 지나쳐 다른 부처가 계신 곳으로 오니 이번에는

 다시 "왼손 내려!"라고 하는군요,

더운 곳에 오래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제 머리도 혼란스러워 "손 올려 내려" 게임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도 심심하던 차에 게임을 이해하는 중생을 만나셨으니 얼마나 반가우셨겠습니까.

부처님이 달을 가리키면 佳人은 아직도 손가락 끝을 쳐다봅니다. 

 

그런데 '왼손 올려'와 '오른손 내려'의 차이는 무엇이니까?

그것을 알면 우리의 삶을 눈물로 채우지 않아도 되니까?

佳人의 우매한 눈으로 보았을 때는 같은 자세입니다.

부처상 찌찌의 표현이 너무 리얼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갈등 문제가 바로 '오른손 올려'와 '왼손 내려'와

같은 일이 아닐까요?

모두가 추구하는 생각은 같으나 방법의 차이.....

0.5와 1/2처럼 근본은 같음과 표기의 차이를 두고 서로 자기의 표기가 옳다고

사생결단하는 모습.

상대의 생각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만 강요하는 일. 

 

그냥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날도 더운데 잠시나마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웃자고 한 이야기를 죽자고 덤비시면 곤란합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오늘도 말이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깨우치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수행자와 신도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옳다고 얼굴을 붉히면서 핏대를 세우지요?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 모든 것이 각자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佳人같은 못난 사람이 자기 손바닥만 바라보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떠들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오늘도 열반에 드셔서 말씀이 없으십니다.

내 삶의 전부를 눈물로 채워도 답이 없으십니다. 

 

인생을 100점짜리로만 사시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무척 힘이 드는 일입니다.

어디 세상에 만점짜리 완벽한 인생만 살아가나요?

 

100점짜리 인생은 더 채울 게 없지만, 그저 조금 부족한 듯한 70점짜리 인생도

채워가며 살아가면 그것도 세상사는 맛이 제법 쏠쏠하게 좋은 겁니다.

세상을 사는 맛이 바로 채워가며 사는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0점짜리 인생이 자신의 현실에 더 채우려고 하면 그게 바로 탐욕입니다.

 

佳人 같은 우매한 사람은 채워가는 즐거움이 있어 오히려 70점짜리 인생이

더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틀렸다고요?

佳人은 40점 밖에 되지 않는다고요?

매일 해만 쨍쨍 비치는 좋은 날만 계속된다면, 세상은 이미 사막으로 변했을 겁니다.

비도 내리고 날 궂은날도 있어야 아름다운 무지개도 볼 수 있잖아요.

때로는 눈물로 채우고 살아도 나중에 웃는 즐거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잖아요. 

 

왓포는 무척 많은 탑을 품고 있습니다.

마치 부도탑처럼 말입니다.

공간마다 많은 탑이 있는 절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생로병사....

 

그러나 그 단순한 시간 속에 우리가 스스로 아주 복잡하게 만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에 복잡한 것이 아닐까요?

그게 욕심이고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브라흐마의 겨우 하루인 칼파의 시간 중 우리가 사는 시간은 찰나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러기에 세월이 흐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잠시, 아주 잠시 들렀다 가는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증오는 무엇이고 탐욕은 또 무엇입니까?

왜 우리끼리 서로 비아냥 거리고 미워하며 살아야 합니까?

결국은 내 자식들이고 형제고 우리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이곳은 중국 거상이 크게 시주를 한 모양입니다.

별도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그 사람 가족을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도 결국 갔습니다.

가고 나면 모두가 같아집니다.

 

바람은 숲을 만나도, 구름은 높은 산을 만나도 투덜대지 않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잠시 머물다 지나갑니다.

우리 인간의 삶도 바람이며 구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사는 도중... 하하 호호 웃으며 정겹고 즐겁게 살다 갑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왓장 시주를 하지요?

이곳 태국에서도 기왓장에 소원을 쓰고 시주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관리를 한단 말입니까?

그냥 돈만 받고 내버려 두어 깨져도 누구 하나 관리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래서야 누가 시주를 하고 싶겠습니까?

 

화장실 갈 때와 갔다 온 후가 다르다고 하지만, 이곳은 경건한 사찰이 아닙니까?

마음의 소원을 빌어 시주를 하였는 데 이렇게 무참하게 소원을 내팽게 치다니요.

깨알같이 적어 놓은 소망이 이제는 깨져버려 글씨마저 보이지도 않습니까?

깨어지지 않았다고 제가 태국어를 알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지붕에 올리는 기왓장은 별도로 제대로 묶어 관리를 하며 공사에 대비하고

있고 시주받는 기왓장과 실제로 지붕에 올리는 기왓장의 관리는 별개인 모양입니다.

 

아니면 시주를 받고 그냥 내버려 두다가 깨어지면 그게 큰 공덕을 쌓게 하는 방법이

태국식인가요?

아... 자연에서 온 흙이라 빨리 깨어져 자연으로 빨리 돌려보내려고 그런 모양입니다.

우매한 佳人은 아직 그런 깊고 큰 뜻을 모르고 오해했습니다.

이렇기에 佳人의 성불은 낙타와 코끼리가 동시에 가족을 데리고 함께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냉장고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열반에 드는 일과 같습니다. 

 

에고에고 너무하오, 이리하면 아니되오

우리자식 공부잘해, 전교에서 일등하고

하는사업 번창하여, 떼돈벌어 부자되고

가족모두 건강하고, 모든일이 만사형통

시주하고 빌고빌며, 정성으로 글을써서

두손모아 경건하게, 소원적어 주었더니

나몰라라 팽게치고, 뒷마당에 버렸다오 

돈낼때만 유효하고, 돌아서면 무효인가

받을때는 언제이고, 받고나면 나몰라라

두손모아 빌었더니, 쓰레기로 변했다네

기왓장이 깨졌다네, 내소원도 깨졌다네

원통하고 애닲아라, 두번다시 안할끼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름다운 것은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다만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주위에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세요.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