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다음에는...

2010. 6. 14. 10:57동남아시아 여행기/하노이 방콕 배낭여행

여행은 우리에게 느림을 배우라 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게으름도 배우라 합니다.

 

그리고 여행은 우리에게 자연과 하나가 되고 그들 속으로 동화되라고 합니다.

그러나 佳人은 결국 바삐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정해놓은 시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사랑을 느끼라 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그들을 존중도 하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먹을 쥔 손으로는 그들이 내민 손도 잡을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佳人은 결국 나만의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탐욕을 버리라 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마음속의 편견도 버리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체온을 느껴라 합니다.

그러나 佳人은 결국 그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아름다운 샤오지에만 바라보며 돌아다녔습니다. 

 

자연은 우리가 토닥토닥거려 주지 않아도 자장가를 불러 주지 않아도 잠을 잡니다. 고운 꿈을 꿉니다.  

이제 우리는 거의 한 달간의 기나긴 여행을 끝내야 합니다.

인생은 편도표 한 장 들고 떠나는 여행길이라지요.

 

그러나 우리 여행은 왕복표를 들고 떠났으며 돌아갈 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결국, 우리의 여행은 그곳을 가기 위함이 아니고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것입니다.

 

불과 2년 전 처음 배낭여행을 위한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떠났던 여행길이 올해로 겨우 두 번째입니다.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안타깝기도 했으나 지금이라도 배낭 메고 다닐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함께 할 동행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축복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여행을 위하여 떠났던 배낭여행도 결국, 시간의 노예가 되었고 짜인 시간에 따라 움직였고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게 다녔다는 생각입니다.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었으나 절벽에 만든 새나 쥐만 다닌다는 조도서로(鳥道鼠路)와 같은 이런 길을

걸으며 마음 졸이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동행....

佳人이 그대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고 그대가 佳人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를 수 있는 사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동행이란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여행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비록 산길을 함께 걷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함께하며 격려해 주시는 님들이 계셔서 佳人은 행복합니다.

 

오늘과 내일 2회에 걸쳐 이번 여행에 머물렀던 곳에 대하여 잠시 회상해 봅니다.

이번 한 달간 여행은 제일 먼저 구름의 남쪽이라는 아름다운 중국 윈난(雲南)성을 돌아보았습니다.

 

높은 고도에 숨을 헐떡이며 다녔지만,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에서는 돌의 숲이라는 스린(石林)에서

아스마와 아훼이의 슬픈 이야기에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않은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슬픈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우시앙(九鄕)동굴에서는 우리가 다랑논이라고 부르는 그런 모습이 동굴 안에 있었으며 신들의 밭이라는

神田을 보았고 2억 7천 년만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도 했습니다.

태초의 모습을 보았고 시간이 정지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칼파의 세월 중 2억 7천만 년.... 부가세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동굴 속에 이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계단식 논과 같은 원시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서산 용문에서는 깎아지른 절벽에 수십 년간 사람의 손으로 정을 쪼아가며 만든 아찔한 길을 걸었습니다.

중국인의 길 만드는 기술과 무식함에 감탄만 나옵니다.  

 

샤관의 바람이 샹관으로 불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얼하이에는 달이 창산 위의 만년설인 하얀 눈을 함께

비춘다는 風花雪月로 설명되는 아름다운 도시라고 따리에서는 창산과 얼하이 호수를 보았고 백족의 나라였던

따리 국과 남조 국을 생각했습니다.

 

창산을 무식하게 넘어온 원나라의 쿠빌라이에게 남조 국의 왕궁이 잿더미가 되며 무참하게 왕궁이 불타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리지앙에서는 가장 고풍스러운 고을을 보았고 골목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며 꽃으로 예쁘게 장식한 마을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마방과 명월이의 애틋한 사랑도 몰래 훔쳐 보았고 나름대로 혼자 소설 속으로 빠져 들어가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습니다.

 

리지앙은 지금까지 본 어느 도시보다 아름다웠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치 마방이 되어 세월을 거슬러 이곳에 들어 온 느낌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마을 리지앙(麗江)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골목길에 깔려 있는 오화석판마저 아름다웠던 고을.....

 

산앤징(三眼井)이라는 독특한 우물형태에서 옛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스팡지에(四方街)에서는 수많은 마방이 이곳을 지나가며 느꼈을 삶의 애환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리지앙에서 본 것은 그냥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고을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며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나시족의 마을인 리지앙은 그냥 만들어 놓은 민속촉과 같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오랜 세월동안 호도협이라는 협곡에 말을 끌며 장사를 하기 위해 다녔던 천 길 낭떠러지에 만든 삶의 길,

하늘길인 옛 차마고도 중 겨우 일부분을 걸었지만 내 스스로 상상 속의 마방이 되어 그들의 삶도 느껴보며

걸어보았습니다.

 

장엄한 대자연 속에 佳人은 한 줌의 티끌임을 느껴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덧없는 것이라지만 그곳에서 바람과 구름과 물과 산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 마음속에 쌓였던 가득한 탐욕을 조금이나마 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운 여백에 무엇을 채우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갑이 아무리 무거워도 무겁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작은 지갑도 소용이 없었고 산행에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위험한 천 길 낭떠러지 길을 걸으며 간이 콩알만 해져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의 삶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의 길도 나 스스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샹그릴라에서 나라 잃은 티베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해발 3.200m가 넘는 고도에서 걷기조차도 숨이 차 힘들게 다니며 그들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이상적인 유토피아라도 그것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몫임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일 년에 수천 명의 티베탄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티베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처의 나라... 살아있는 생불인 달라이 라마가 다스리는...... 그곳에는 나라 잃은 슬픈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마니차를 혼자 힘으로 돌려 보기도 하며 그들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려고도 했습니다.

 

샹그릴라도, 다람살라도, 대형 마니차도, 달라이 라마까지도 佳人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佳人은 알고 싶습니다.

여행이란 '때문에'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세상은 아무도 나를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佳人은 세상을 알고 싶습니다.

 

내일 마지막 이야기로 여행기를 끝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겸손이란 내 마음을 단단히 잠그고 있는 자물쇠를 푸는 열쇠입니다

나 스스로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여행을 하며 겸손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다가가지 않으면 느낄 수 없고 재미 또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