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열전 2 - 화하일통(華夏一統)과 법가(法家)의 세상

2010. 5. 13. 08:38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사마천의 사기

당시 중국은 G7인 전국칠웅이라고 일곱 나라가 고만고만하게 서로 자웅을 겨루며 살았다지요?

원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중원에는 일진이라는 군주국이 하나 있고 그 아래 제후국이라고

여러 나라가 군신의 예를 갖추고 살았던 시기랍니다.

 

그러나 분명 나라가 다르기에 서로의 간섭은 크게 하지 않는 편으로 자율적성이 보장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나 일종의 조공처럼 군주국에 제후국에서 상납하기는 했다네요.

일종의 삥땅이라고 봐도 되겠어요?

 

동주가 사라지게 된 이유가 바로 군주국인 동주의 유왕이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자

괵석보의 제안에 따라 여산에서 봉화 놀이하다가 제후국에서 여러 차례 군사를 몰고

지원하러 왔다가 그 이유를 듣고 허탈해하며 돌아가기 수차례...

 

이렇게 자주 당하다 보면 이솝 우화에서 보듯이 "늑대가 나타났어요~"라는 이야기처럼

정말 변고가 생겨도 제후국에서는 똥개 훈련시킨다고 어느 제후국에서도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당시 여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제후국에서는 주나라 왕성으로 지원군을 보내는 시스템이었거든요.

나라가 사라지는 일도 이렇게 포사라는 여인을 웃게 한다고 불장난하다가

사라지는 해괴한 일도 있더라고요.

 

그런 시기에 순경(순자)이라는 사람에게 이사는 제왕학을 공부했다고 했나요?

그런데 순경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제왕도 아니면서 어찌 제왕학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

신통방통한 사람입니다.

 

이사가 진나라에 도착할 때쯤 시황제의 아버지인 장양 왕이 죽자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실질적인 영정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재상 여불위를 찾아가 그의 빈객이 되고

그의 현란한 혀 놀림에 반한 여불위가 그를 왕의 시종관으로 천거를 하며

그의 출세의 길이 열립니다.

 

당시 중국은 이렇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빈객을 모아 세를 불렸고 또 그런 사람의

문하에 들어가 빈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눈에 띄어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나머지 수천 명의 빈객은 그야말로 이름만 빈객이지 빈대처럼 권력자의 밥만 축내는

빈대의 생활을 했다네요.

 

지금 신세대는 빈대가 무엇인지 모를 겁니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빈대가 무척 많았습니다.

이 빈대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로부터 왔지 싶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빈대 맛을 보시려면 프랑스 생장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장장 800여 km를 걸어가는 까미노를 걸어보세요.

곳곳에 있는 알베르게라는 숙소에서 제대로 빈대 맛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도 빈대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 까미노에 있는 알베르게라는 숙소입니다.

 

이제부터 그들 빈객의 무기인 갈고닦은 세 치 혀로 권력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일만

남았는데 누가 얼마나 잘 꾸민 말로 군주의 눈에 드냐가 바로 출세가도의 지름길이죠.

이사는 바로 이곳 여불위의 빈객으로 들어가 여불위 눈에 띄어 출세한 케이스입니다.

 

지금도 정치판에서는 이런 부류의 빈대가 무척 많지요?

주군이 문제에 봉착하면 마치 호위무사처럼 눈에 불을 켜고 쌍심지까지 밝히며

게거품 무는 졸개들 처럼 검찰청 문앞에 도열해...

 

이사는 진나라 왕 영정에게 "이미 세상의 중심은 진나라에 기울었습니다.

진나라의 강대함과 폐하의 현명함을 합치면 컴퓨터에 잘못 쓴 글을 Delete 키를 눌러

지우는 것처럼 쉽게 제후들을 치우고 천하를 그대 손안에....."라고 예쁜 말을 합니다.

 

누가 들어도 아부의 극치가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난세의 영웅이라고 하는 진시황도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는 "무슨 당치도 않는 말을...."

이라고 하면서 돌아서지만, "허! 참... 그 녀석 제대로 세상을 볼 줄 알고

나를 이해하는 녀석이야~"하며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어서 "이는 만세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입에서 만 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자기가 만 년을 살며 해보기나 했답니까?

 

조조도 백 년도 살지 못했던 천문관이 천 년에 한 번 있을 일이라는 말에

낙양을 버리고 허창으로 옮기기는 했지요.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제후들이 힘을 키워 다시 합종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폐하와 같은 현명한 분이 그들에게 '알라들아~ 내 무릎 아래 꿇어!'라고 하신다면

누구도 기분 좋게 행복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 좋은 말입니까?

 

그러면 당연히 포상이 따르지요.

사실 진시황은 예전부터 이사를 진급시켜 더 가까이 두고 싶었습니다.

 

"예쁜 놈.. 너 관리의 우두머리인 장사를 하려무나." 하고 장사에 제수하고 모사꾼들에게

진귀한 보물을 주어 주변국을 돌며 회유 가능하면 선물을 주어 내 편으로 만들고

불가능하면 죽여버리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귀곡자 아래서 동문수학했던 장의와 소진이라는 사람이

이전에 했던 합종연횡의 기본이지요.

 

귀곡자 고리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업성박물관 부근에 있더군요.

합종연횡은 비슷한 의미지만, 아래 위로 모이느냐 아니면 좌우로 모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전국칠웅의 분포도를 보며 이야기해야 쉽게 이해가 되지 싶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이사를 그야말로 이사급인 객경으로 진급시킵니다.

진시황은 이사가 남자만 아니라면 애첩으로라도 삼고 싶었을 겁니다.

사실 시황제의 모친인 조희도 여불위의 애첩이었잖아요.

이사가 이사급인 객경까지 진급하는 데는 아우토반처럼 거칠 게 없습니다.

 

뭐 이사는 태어날 때부터 이사였기는 하지요.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잘 나가는가 하면 꼭 마가 끼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인물이 제일 왼쪽은 마부요, 가운데는 시황제 영정입니다.

그럼 시황제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이사가 아니겠어요?

 

왼쪽은 마부가 아니고 조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사는 진시황의 지근거리에 있어 언제든지 시황제가 생각하는 뜻을 펼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그 무렵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한나라 출신의 정국이라는 자가

대규모 관개용 운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라고 하면 G7이라고 하는 전국 칠웅 중 가장 작고 볼품없는 작은 나라로 바로 진나라 옆에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있는 것처럼 바짝 붙어있어 진나라 콧김만으로도

자빠질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사실, 정국의 이런 대규모 운하사업은 한나라 출신인 그가 조국이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더 오래도록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나라 재정을 파탄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이 운하로 군량미의 보급로로 사용되고 물류 및 관개용수로 사용됨으로

진나라를 풍요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아그라를 처음에는 심장약으로 개발했는데 부작용 중 하나가 바로 불끈 솟는

남자의 힘이 되었기에  때문에 부작용을 이용하는 게 더 큰 장사가 되니

정국이 만든 운하가 바로 이런 꼴이 되었습니다.

정국이 만든 운하는 바로 진나라에는 돈이 되는 비아그라입니다.

 

그러나 시황제 주변의 사람들은 정국의 이런 의도를 눈치채고 제후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 나라를 이롭게 하고 진나라를 파탄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라고

모두 추방하라는 왕에게 건의합니다.

명분은 그렇게 말했으나 사실은 밥그릇 싸움입니다.

 

자꾸만 다른 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인재가 나라의 요직에 오르니 자리가 없어지잖아요.

똥개도 동네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자리가 점차 없어지는데

반은 고사하고 굶게 생겼잖아요.

더군다나 진나라는 G7 중 가장 잘 나가는 나라이기에 인재 초빙이라는 광고를 하지 않아도

인재는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모이거든요.

 

실력으로 대결해야지 홈그라운드라고 심판을 매수하고 텃세를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중동은 툭하면 드러눕는 침대축구도 마다하지 않잖아요.

 

이거 큰일 났습니다.

축객령(逐客令)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이곳 진나라로 와 벼슬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백수가 되게 생겼습니다.

그 명단에 자신이 포함되었음을 안 이사는 재빨리 진시황에게 글을 올립니다.

 

선왕들은 제후국의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키웠으며 법을 받아들여 백성이 해피하고

지금 왕이 지니고 있는 진귀한 보물도 모두 제후국에서 가져온 것이고 등등등...

어차피 중원 통일을 하게 되면 화하족 모두가 폐하의 백성이 되고...

 

지금 폐하께서 그것을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온 보물은 소중히 여기고 인재는 우습게 여기신다?

이래서 천하 통일하겠소?"

 

사실 진나라를 G7 중 최고의 나라로 만든 사람도 진 효공 때 위나라 출신이었던 상앙이 아니겠어요?

상앙은 사실 진나라에 법가가 득세하게 했던 장본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진나라를 반듯한 반석에 올리는 기초를 닦았던 인물로 그 또한 진나라 출신이 아니고

위나라 출신이고 그의 노력으로 전국칠웅 중 여섯 나라가 같이 편을 먹고 진나라와 싸워도

진나라가 해볼만하다고 했으니까요.

 

마침 그때 여불위가 조희에게 상납했다가 부작용인 났던 노애 사건이 터졌으니 진나라 출신

은 이미 나라 곳곳에 똬리를 틀고 살아가던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 흘러온 사람은 벼슬자리에 등용하지 말 것을 결의한 상소문에

자신도 포함된 것을 알게 된 이사는 졸지에 백수가 되게 생겼습니다.

 

이때 이사는 후세에 길이 남을 모 항공사 광고의 카피에도 인용되는 멋진 말을 합니다.

바로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유식한 척 한자를 섞어 쓰면 더 그럴듯합니다.

아니군요?

중국은 누구나 다 한자를 사용하는군요.

 

태산이 높은 이유는 한 줌의 흙도 움켜쥐고 있고 바다가 깊은 이유는 작은 개울물도

마다치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재들이 이곳으로 오는 길을 막는다면 인재들이 제후국으로 가고 제후국들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과 같은 이적행위입니다.

어쩌시겠수?

 

아! 요놈 보게?

제대로 한 방 먹였지요?

이사가 했던 말로 멋진 되치기 한 판이 먹히는 순간입니다.

 

진시황이 답변할 차례입니다.

"맞는 말이네? 명을 취소한다.

그리고 이사를 복직시킨다.

도대체 어느 놈이 이딴 쓸데없고 속 좁은 기안을 올렸느냐~"

장말 쿨한 진시황이죠?

 

그러나 사실은 진시황은 아버지가 초나라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자초라고 했기에 아버지를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던 할머니와 같은 화양 부인이 이사와 같은 초나라 사람이라

이사의 출신에 대해 눈을 감아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진나라는 마지막 제후국인 제나라를 함락시킴으로 맨날 회담이 끝나고

회식 때마다 부른 노래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완성합니다.

사실 노래만 하고도 통일된다면 매일 불러도 좋습니다.

 

화하일통(華夏一統)

황하 문명의 시작이라는 지금의 뤄양 부근 낙하(洛河) 지역의 華족과 장강 인근의 장강 문화에

살던 夏족을 함께 부르는 말로 華夏족은 지금의 한족과 비슷한 개념으로

오래전에 중원이라는 의미기도 하겠네요.

또한 동이라고 불렀던 민족은 만주지역에서부터 산둥반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외 넓은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었을 것이고요.

 

아마도 얼마 전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에서 살았던 민족이

동이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요하문명이 지금 중국에서는 중요한 역사왜곡을 하려고 작업 중이지요.

아마도 조만간 중국의 시원이 중원이 아닌 만주 일대로 바뀔지 모릅니다.

 

황하문명보다도 1.500여 년 이상 앞선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동북공정이 중국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지요.

지금까지 중원에서는 동이라고 오랑캐로 비하했던 민족이 중국의 시원이 된다면

정말 이런 코미디도 없지 싶습니다.

 

당시 기원전 228년 진시황은 어머니의 나라며 아버지가 볼모로 잡혀가 고생했던

조나라부터 접수하며 맨날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하며 노래만 불렀다가

이번에 제대로 아빠인 자초 이인의 한을 시원하게 풀어준다고 영정이 효자 짓을 했네요.

 

이때 연나라에서는 그 유명한 칼잡이 자객 형가를 진나라에 보내 진시황을 살해하려 했지만,

실패에 그쳤죠?

이 이야기는 사마천이 자객열전에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혹시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도 올려보고 싶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거로 생각됩니다.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음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 순으로 차례로 무릎을 꿇린 후

드디어 기원전 221년 마지막 남은 제나라까지 복속시키니 천하는 바로 영정의 발아래 있게

되었으며 이때 영정의 나이 39살에 Dreams come true 되었습니다.

그러니 華夏족은 물론 동이족의 일부까지도 진시황은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겠지요?

 

이렇게 기원전 G7이라고 어깨에 한껏 힘주고 살았던 전국칠웅 중 위의 지도를 보시면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제일 힘들게 살았던 작은 나라인 한(韓) 나라로 기원전 230년

제일 먼저 진나라의 콧김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요.

 

한나라의 정국이라는 사람은 한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진나라까지 와 벼슬을 하며

진나라 경제를 파탄시키기 위해 삽질 공사라는 운하까지 팠는데 경제 파탄에 이르기는커녕

오히려 그 운하로 많은 물류가 흐름으로 도리어 진나라 경제에 이바지한 꼴이 되었으니 

그 운하가 바로 비아그라처럼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의 나라입니다.

 

진시황은 '천하를 내 품에' 했는데 호칭도 달라져야죠?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 중 숫자 삼과 오를 빼고 남는 것....

네 바로 황제입니다.

황제(皇帝)라는 호칭은 이때부터 사용하게 되었지요.

 

진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황제라고 진시황이라고 부르지요.

치우와 탁록대전을 치른 한족의 조상이라는 황제(黃帝)와는 다른 의미지요.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왕을 황제라고 칭했지만, 왕이나 황제나 호칭의 문제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 싶습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이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승상으로 진급합니다.

그런데 이사라는 이 녀석은 입사할 때도 이사, 진급해도 이사입니다.

 

승상이 되면 더는 오를 때가 없습니다.

정혁(鼎革)이라도 해서 왕이 되기 전에는 내려오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그의 활약을 더 구경하고 내려가는 것을 구경하렵니다.

 

佳人과 함께 이사의 이야기를 조금 더 기웃거려보시렵니까?

그러면 다음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