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열전 1 -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

2010. 5. 11. 09:13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사마천의 사기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치 않고 넓은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모두 품는다는 의미지요.

정말로 멋진 말이죠?

모 항공이 중국 취항을 본격화할 때 광고 카피에 나왔던 말입니다.

그때 광고의 배경화면으로 위의 사진처럼 주전자 주둥이처럼 생겼다는

후커우(壺口:호구) 폭포가 나왔지요.

 

원래는 "泰山不辭土壤 故 能成其大(태산불사토양 고 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 故 能就其深(하해불택세류 고 능취기심)"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데

이 말을 풀이하면 "태산은 작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거대함을 이루었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 깊음을 이루었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바로 오늘부터 이야기할 이사(李斯)가 한 말이라는군요?

이사는 광고료나 제대로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사가 이 말을 진시황에게 했다는데 초나라 출신인 이사를 면직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이사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태산과 하해를 빗대어 진시황의 넉넉한

포용력을 발휘해 다른 나라 출신도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미로 했던 말이지요.

 

당시의 진나라에서의 분위기는 우리가 이미 여불위 열전에서 잠시 보았던 노애로 인해

어수선했던 시기였답니다.

여불위도 진나라 출신이 아니었고 그 밑에서 빈객으로 지냈던 많은 사람이 사회 여론 형성의

주류인 오피니언 리더로 지냈기에 이사와 같이 타국 출신의 출세한 관료를 모두 추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에 진왕 정은 축객령(逐客令)을 내려 타국에서 온 자들을 쫓아내려 하는데

이사가 이를 반박하면서 이른바 '간축객서(諫逐客書)'을 올렸을 때의 상소문이라고 하네요.

 

역시 이사는 라이벌 한비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유도하고는 자기는 살아남겠다고

이런 글 질을 했나 봅니다.

사실, 한비자가 말더듬이만 아니었다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텐데...

 

하늘은 이렇게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는 몰아주지 않나 봅니다.

시황제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일이 한비자의 죽음이었다고 합니다

 

진나라 왕인 정은 이사의 이 글을 접하고 얼마나 뻘쭘해졌겠어요?

밀어내자니 밴댕이 속 같고 그냥 두자니 찝찝하고...

진시황을 도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그 중심에 섰던 이사(李斯)는 진나라 사람이

아니라 초나라 출신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멋진 말이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군요.

 

바로 여불위 열전에 잠시 여러분에게 인사 올린 화양 부인이 초나라 출신으로 진시황 아비인

이인이 자신의 이름을 초나라의 자식이라는 자초라고 까지 하면서 마케팅에 이용했던 나라입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나라라는 의미가 강하지 않았기에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기웃거리기도 했고

장사도 하며 다녔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공자님도 벼슬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기웃거리며

상갓집 개처럼 다니기도 했다고 하니...

물론, 애국심이 강해 상대국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와신상담하며 살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는 중원은 그게 하나의 조류였다고 봐야겠네요.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출세하면 자신이 태어난 나라까지 절단 내며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앞장서 도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나라 간에 국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나라를 옮겨 다니며 벼슬도 하고 장사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갔다는 의미겠지요.

 

그가 진나라의 시황제라는 영정을 도와 기원전 221년 마지막 남은 제나라를 함락함으로

비록 중원이지만, 마침내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고 대대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과 지역마다

됫박의 크기가 달라 분쟁이 심했던 도량형 등을 통일시키는 대업을 완수한

중심에 섰던 인물이랍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함양으로 통하게 하기 위해 많은 도로를

건설했으며 심지어는 마차 바퀴의 폭도 천하가 일정하게 같아지도록 정했다고 합니다.

이는 천하를 통일한 후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함이지요.

이런 일은 칭찬받을만함 일이 분명합니다.

 

진시황 영정은 이미 여불위 열전에서 보았듯이 그의 아버지가 사실 안개처럼

희미한 불분명한 미스터리 인물이지요.

어미는 확실해도 아비는 글쎄요...

실제 사기에는 "姫自匿有身, 至大期時, 生子政" 그러니 만삭이 되어 조희는 아들인 政을

낳았다라고만 기록되었기에 누구의 자식이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많은 의문이 남은 시황제입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라고 알 수 있었겠어요?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사마천도 슬그머니 얼버무리고 끝을 내는군요.

이렇게 사마천도 佳人처럼 글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썼나 봅니다.

 

그러나 아버지 자초 이인은 진나라 공자로 태어났지만, 우리도 아는 쭉정이였지요.

어찌 보면 용의 국물이 튀었다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차라리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행복을 누리다가 가는 게

더 멋진 삶일는지 모르겠네요.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개장 속에 구겨 넣어 팔려가는 개처럼 이웃나라에 끌려가

죽지 못해 사는 것보다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개에게도 인격이 있고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

죄송합니다.

개에게는 인격이 아니고 견격이라고 수정하겠습니다.

저 개들은 분명 부의족이 사는 동네로 가는 중이지 싶습니다.

부의족은 주로 돌로 집을 짓고 보신탕을 즐겨먹는 그런 민족이지요.

 

공자도 공자 나름으로 쭉정이 공자란 그야말로 쓸모없는 넘치고 처진 여분의 공자로

당시 나라 간의 전쟁방지를 위해 조나라에 볼모로 보내져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곳에서 그렇게 살다가 죽고 전쟁이 나면 화풀이 대상으로 제일 먼저 죽어야 하는

그야말로 죽기 위해 살아갔던 그런 어처구니없는 신분이었지요.

 

물론, 도망쳐 돌아와 제법 그럴듯하게 살았던 공자도 있고 대우받고 살았던 공자도 많을 겁니다.

이렇게 전국 7웅의 공자는 이웃나라에 가서 살며 같은 처지의 공자와 교류하며 카페를 만들고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처지를 이해하고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일도 이야기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랬다가 영정과 비슷한 처지로 살았던 연나라 태자 단(丹)은 영정이 진왕이 된 후 예전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고 자신을 학대하자 조국인 연나라로 도망쳐 온 후 앙갚음도 하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진나라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형가라는 자객을 고용해 진시황을 살해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나라까지 사라지는 황망한 사태로 번지게 된 일도 있었지요.

얼마나 사무쳤으면 자객까지 동원해 사고를 쳤을까요?

 

진나라  이인은 어느 날 거상 여불위 눈에 띄어 여불위의 작업으로 진나라 화양 부인의

양자로 들어가 졸지에 얼마 되지 않아 부지부식 간에 얼떨리우스 장양 왕이 되었던 인물로

여불위 애첩인 조희를 물려받아 황홀한 밤을 보낸 후 생산한 인물이 바로 훗날 진시황

영정이라고 죽을 때까지 믿다가 갔지요.

세상 일이란 그렇게 믿고 살다가 죽는 일이 가장 행복한 삶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비 세대는 흘러갔고 그전까지는 왕이라고 불렀으나 영정은 중원 통일을 이룬 후

황제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진시황이라는 새로운 간판으로 리모델링한 후 신장개업한

진나라의 승상으로 이사를 영입하게 되었다네요.

이사는 지방의 작은 말단 공무원으로 지내다가 여불위의 빈객으로 들어갔고 여불위에게

견마지로를 다하며 여불위의 추천으로 중앙정부의 정식 공무원이 된 경우라고 하네요.

 

이사가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는 것도 이상한 방법으로 알아갑니다.

젊은 시절 하급관리로 일하며 관청 화장실에 쥐들은 더러운 것을 먹다가 인기척이 나면

기겁을 하지만, 곳간에 사는 쥐들은 사람이 나타나도 느긋하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생활의 지혜를 터득합니다.

 

이렇게 쥐도 사람에게 지혜를 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도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한비자의 등용을 막고 결국은 그를 감옥에 들어가게 하고는

자결까지 하도록 유도했고 자신이 쫓겨날 처지에 이르렀을 때는 태산과 하해를 불러와

세 치 혀를 놀리며 버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봐야겠네요.

 

순경이란 사람에게 제왕학을 배우고 자신이 살던 초나라에서는 등용되지 못했고 진나라에

비하여 장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미래와 희망의 엘도라도를 찾아 진나라로 갑니다.

이사는 역시 미래를 예견하는 폭넓은 시야를 가졌나 봅니다.

 

살아가며 자기가 살았던 나라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말인데...

사실 중국 역사상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제갈공명도 앞날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북벌이 성공할 수 없음에도 주야장천 북벌만 하다가 과로사했으니까요.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잔도가 바로 북벌을 위해 오르내렸던 명월협 잔도입니다.

이런 이사도 진시황 사후의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지요.

뜻은 사람이 도모하지만, 그 뜻을 이루는 일은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다음편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