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황후의 무한도전 7 -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2011. 8. 6. 00:11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율희가 거절한 이유는 장공주가 경제와는 우애가 좋아 후궁에 자주 드나들었고

여러 후궁들이 태자와 우애가 좋은 장공주에게 부탁을 하여 후궁과 경제와의 잠자리를

자주 연결시켜 주었기에 투기심이 강한 율희가 예전부터 장공주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공주는 후궁과 태자를 연결하는 부로커 역할을 했기에 율희가 평소에 싫어했던 겝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왕미인은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순번에서 9번째로 밀려 있지만 바로 넘버 1으로 올라가는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기에 그때부터 아들 유철을 고모인 장공주 집에 자주 놀러 보내고 어린 유철은 진아교와

사이좋게 지내게 하는데 어느 날 장공주가 유철을 무릎에 앉히고 묻습니다.

 

"너는 누구와 결혼하고 싶으냐? 골라 보아라."하며 마당에 있는 많은 여인들을 가르킵니다.

그러나 유철은 아교를 지목하고

"만약 아교를 부인으로 맞이한다면 나는 반드시 아교를 위해 금으로 지은 집에서

살게 하겠어요."는 말을 합니다.

그때가 유철이 7살 정도의 어린 나이입니다.

 

어린 녀석이 맹랑하게도....

그러나 사실은 왕미인이 여러 번 교육을 시킨 탓일 겝니다.

교육이란 이렇게 7살 어린아이 입에서 누구와 혼인을 하면 그녀를 위해 금으로 만든 집을 지어

살게하겠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게 됩니다.

이 말 한 마디가 유철에게는 평생을 좌우했던 말이라는 것을 유철은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장공주가 왕미인 거처에 놀러와 율희에 대한 험담을 마구 늘어놓자 드디어 왕미인이

장공주에게 "왜 제게는 아교와 같이 예쁘고 착한 아이를 며느리로 삼는 복이

주어지지 않을까요?" 하며 운을 뗍니다.

요런 앙큼한 것 같으니라고...

그렇지 않아도 유철이 아교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장공주는 "자네만 좋다면 Why not?" 합니다.

 

왕미인은 슬픈 표정을 짓고

"유철은 넘버 9입니다. 태자도 아닌데 어떻게 언감생심."이라고 태클을 걸자

장공주가 결정적인 암시를 줍니다.

 

"태자? 그거야 언제나 바꿀 수 있는일이지.

율희는 자기 아들이 지금 태자가 되었다고 곧 황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되게 두지는 않을게야! 웃기지 말라고 해"

옴마나~ 이 얼마나 듣고 싶은 이야기입니까?

 

그날 밤 왕미인은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얼마나 낄낄거리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넘버 9이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8명을 모두 제치고 제일 앞으로 나아가

넘버 1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중국은 일상생활에서 아직도 새치기가 빈번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열을 받습니다.

 

이제 왕미인이 듣고 싶은 답이 장공주 입에서 모두 나왔습니다.

그리고 결정타를 한 방 날립니다.

"율희 성님이 저리도 방자하게 굴면 저라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거예요!"

이제 두 사람은 의기 투합하여 결론을 거의 내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율희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하루는 경제가 율희에게 "짐이 나이가 많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만약 먼저 가더라도

과인을 대신해 후궁의 소생들을 잘 보살펴 주시게나."하자

속이 좁은 율희는 마치 아들이 이미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있는 듯 성질을 부리고

심지어는 황제에게 등을 보이는 무례를 범하자 경제는 부아가 나 일어서 나가는데

뒤에서 율희가 뭐라고 소리칩니다.

 

아마도 "계집만 밝히는 늙은 수캐"라고 하는 욕을 퍼부었을 겁니다.

경제는 대꾸도 하기 싫어 방을 나오며 결심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네가 황후에 오르는 꼬락서니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요.

사내는 누구나 이런 욕을 듣고 "그래! 난 수캐야~"하며 순순히 물러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 자리에서 대부분 요절을 내던지 아니면 경제처럼 속으로 복수를 다짐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조정의 예관이 이미 태자를 정했으니

그의 모친인 율희를 황후에 봉해야 한다고 합니다.

경제는 순간 화가 납니다.

이는 틀림없이 율희가 예관에게 시킨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어찌 네가 입에 올리느냐!" 라고 소리치며 예관을 옥에 가두고

태자를 폐위하고 율희를 모처에 감금시켜 버립니다. 

사실은 이 모든 일을 장공주와 왕미인이 사주를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는 사실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장공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왕미인이 황후에 봉해지고

물론 왕미인의 아들이자 장공주의 사위인 7살의 유철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왕미인이 바로 효경황후가 되었답니다.

유철이 바로 16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한무제입니다.

 

한무제...

그의 업적은 많은 중국사람이 자랑스러워하는 황제입니다.

더군다나 한족의 시작은 한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니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이 시대에 사마천이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했고 사기를 완성했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정확히 역사에 기록된 숫자가 진시황제부터 406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 아마도 한무제가 존경 받는 황제 랭킹에 1위에 오를 겁니다.

넘버 9에서 황태자의 자리까지 오른 한무제.

사람팔자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출생 내력을 보면 필부에게 시집간 시골 아낙이 자기가 낳은 딸 하나를 버리고

가출하여 집을 나와 유부녀의 몸으로 황실에 시녀로 들어가 타고난 자질과 미모로

동생까지 합세해 태자를 모시다가 넘버 원을 끌어 내리고 넘버 나인인 아들을

태자로 올리고 자신은 효경황후가 된 이상한 경우입니다.

 

물론 타고난 자질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공한 입지전적인 여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녀에게는 불가능이란 없고 다만 무한도전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