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협

2008. 12. 16. 00:12중국 여행기/서안 장가계, 계림 여행기

백장협 차창관광.....

우리는 이곳에 오늘 새벽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는 바람에 이곳의 일정은 원래 2일이었으나 하루로 단축하여 그냥 지나치는

관광이 되어버렸다.

 

우리 일행은 오늘 저녁 기차를 타고 마지막 여행지 계림으로 이동한다.

기차역을 향하여 가는 길에 백장협을 지나친다.

관광 설명에 차창관광이라고 써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차 타고 그냥 횅 하고 지나간다는 말이다.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게 섰다 가는줄 알았다.

그냥 쌩하고 지나치니 허망하기 짝이없다.

그래서 사진이 없어 다른곳에서 빌려 왔다.

 

백장협(百丈峽)이란 모양세가 그냥 우뚝 솟은 암벽이 있는 계곡이다.

이곳의 산은 그냥 하늘 높은지 모르고 무조건 빼족하게 솟아있다.

그 높이가 백장이라고 하여 백장협이라 이름 지어졌다.

 

장(丈)이란 길이의 단위로 한 장이 10자에 해당된다.

1자가 30cm이니 한장이 300cm로 3m가 된다. 

그러니 백장이란 300m이다.

높이가 300m란 이야기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니 佳人이 짜증이 조금 난다.

佳人이 화가나면 늘 태클 들어간다.

그래서 줄자 가져오라 했다.

정말 딱 300m가 되는지 한번 실측 해보자.

그런데 장가계에는 300m 줄자가 없단다.

그리고 중국 줄자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이곳은 협곡지역으로 길이 외길이다.

예전에 토가족들이 농민 봉기를 이르켰다.

도대체 장자방이 이곳 사람들 교육을 어찌 시킨거냐?

산적질하고 봉기나 일으키고......  

민병들이 이곳 백장협에서 관군들과 백번에 걸친 전투를 벌렸단다.

백번의 전투를 모두 민병이 승리함으로 예전에는 이 협곡에서 백번 싸웠다고하여 백장협이라고도

했단다.

지금 우리가 연전 연승 할때 백전 백승이란 말의 유래가 바로 이곳이다.

 

그냥 지나치는게 화가 치밀어서 또 태클 들어간다.

정말 딱 백번 싸웠니?

관군 대장을 골짜기로 불러 물어봤다.

아니란다. 그냥 10번 정도 싸웠는데 토가족 족장이 뻥을 쳐서 100번이란다.

중국 관군도 토가족의 허풍에는 혀를 내두른단다.

 

워낙 좁은 협곡이라 아무리 상대의 군사수가 많아도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 관군이라도 어찌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저녁 식사를 기차속에서 먹어야 한다.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장가계 시내 한국 식당 앞에 잠시 멈추었다.

 

사진에서 보듯 중국의 버스들은 리어 미러가 모두 저렇게 크고 굵게 만들었다.

이 사람들은 이것도 크게 만들었다.

버스들이 여러대 서 있는곳에서 쳐다보면 마치 로보트 춤을 출때 팔을 앞으로 꾸부정하게 뻗은

모습으로 우수꽝스럽기까지 한다.

 

도시락을 차에 싣고 장가계역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차를 멈추고 장사를 시작한다.


품목 : 우황청심환

제조사 : 중국 동인당 제약

수량 : 6丸/Pack

가격 : 한국돈 10.000원

 

여러 사람들이 산다.

원래 중국의 우황청심환은 한국 허준 선생의 처방과 다른 약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리고 판매는 가이드에게...

 

함부로 약은 사지 마라 그것은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특히 중국산은 아무도 모른다.

한약이란 물론 좋은 약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농약의 살포다.

잘못 먹으면 농약이 농축된 농약 덩어리를 먹는다.

  

중국사람 자신들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身土만 不二냐 藥도 不二인걸....


5시 40분 장가계역 출발 유주행이다.

계림으로 바로 가지 않고 유주로 가는 이유는 계림으로 가는 기차가  없기 때문이란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 앞으로는 직통 기차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법적으로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한단다.

예전에는 우리처럼 매장을 했으나 당산 대지진으로 20여만명이 죽자  당시 지도자인 주은래가

토지가 부족하다며 화장을 할 것을 지시하여 앞으로는 모두 화장할것을 명하였다고 한다.

중국이 땅이 넓다고 해도 인구가 많으니 넓은게 아니란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전대로 매장을 하는 민족은 장가계에 살고있는 토가족이란다.

왜?

흙 土를 쓰는 토가족이니까.....

 

여러분들은 윤회를 믿는가?

중국집 식탁모양 인생도 원처럼 돌고 돈단다.

 

우리가 매장이라 하는것을 중국에서는 土葬이라 하더라.

티벳의 일부 부족 중 鳥葬을 하는 부족 있다.

중국에서는 天葬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토막내어 높은 산 위에 둔다고 한다.

평소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독수리떼 등이 순식간에 처리하고 속 많이 썩힌 사람은 독수리도

외면한다고 한다.

사람이 독수리도 외면하게 살면 않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혼이 독수리와 함께 하늘나라로 간단다.

 

만약 佳人이 그 산에 오른다면 독수리들이 날로 먹으려고 할 것이다.

왜?

맛있게 살이 통통하게 붙었고 평소 맛 보지 못한 토종 한국산이니까.....

 

쿠스코 광장에서 점령군 스페인군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지막 잉카 추장인 투팍 아마루의

한이 서린 마추피추의 콘도르가 오늘 무척보고 싶다.

 

일단 역 앞에 도착하니 짐꾼들이 달려 든다.

우리 말로 1.000원을 외친다.

버스에서 대합실 5층까지 짐 하나 운반료가 1.000원이란다.

가방이 무겁지도 않고 해서 그냥 핸드 캐리했다.

 

그런데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화물 검색대를 설치하여 우리가 공항을 통과할때 처럼 화물을

검색한다.

참 쓸데 없는데 시간 낭비하고 인력 낭비하고 설치비를 낭비한다.

뭬가 그리 뭇 믿어서 시골 기차역에도 화물 검색을 할까?  

 

5층 대합실 풍경이다.

이 대합실은 일반실 대합실이 아니고 침대칸 손님 전용 대합실이다.

바닥은 붉은 대리석으로 깔아 놓아 다른 일반 대합실과는 차별화 했다.

지금 시각이 4시 40분이다.

한시간 후에는 야간 철마는 우리를 싣고 달린다.

이곳도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점령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역시 인민은 다 똑 같은 인민이 아니다.

돈 많이 내는 인민은 대합실도 다르고 대리석 바닥으로 된 곳에서 편히 기다린다.

다른 대합실을 쳐다보니 여기만 훨씬 못하다. 

침대칸 기차여행은 처음이다.

옛날에 우리나라도 침대 열차가 운행했으나 점차 속도도 빨라지고 다른 교통수단과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옛날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중국 민항기는 못 믿었지만 중국 기차는 어떨까?

중국 기차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하여 내일 佳人의 사진기로 들여다 보자. 

 

글쓴이 : 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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