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홍구공원

2008. 12. 11. 00:32중국 여행기/소주, 항주, 상하이 여행

지금은 루쉰 공원(魯迅公園)이 되어버린 과거에는 훙커우 공원(虹口公園, 홍구 공원)....

홍구 공원의 홍(虹)은 무지개 홍자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님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른 역사의 현장이다.

 

이 공원은 1927년 아Q정전(阿Q正傳)의 작가인 루쉰이광저우에서 상하이로 이사를 하고 

이 근방에서 생활했으며 그는 생전에 이곳을 즐겨 산책하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1956년 다른 곳에 매장되었던 루쉰의 묘가 이곳에 이장되었다.

그리하여 공원 내에는 루쉰 기념관이 만들어지고 지금은 루쉰 공원이라 되어버렸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는 천황 탄생일 기념행사가 이곳 홍구공원에서 열렸다.

이른 아침 매헌은 김구 선생을 만나고 서로의 시계를 바꾸었다.

그리고 물병과 도시락 하나씩을 받아 들고 이곳 무지개로 들어가는 입구에

소풍 나온 손님으로 가장하고 일본인들 틈에 끼어 무사히 들어오게 되었다.

 

잠시후 축하행사가 시작되며 추최 측인 일본의 요인들이 단상에 자리를 잡는다.

식이 점차 고조될때 매헌은 가져온 물병과 도시락 중 물병을 귀빈석을 향하여 힘차게 던졌다.

 

매헌은 평소 늘 말씀하시고 좌우명으로 간직한 장부 출가 생불환(丈夫 出家 生不還)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서면 그 뜻을 이루지 않고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순간이었다.

 

이 지역은 이미 일본군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 상하이의 일본군과

거주민 위주로 홍구공원에서 대관식과 천황 탄생일 축하회를 거행했다.

사실 이 행사의 주된 목적은 상하이에서 승전기념 파티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군부 요인이 모였고 당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이었던 요시노리 대장은

테러를 우려해 꼼꼼하게 체크를 하였으나 매헌은 이것을 뚫고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총사령관 시리카와와 상하이 일본 거주민 대표였던 가와바다 등이 죽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국영사 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 인근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으며,

해방이 되기 까지 중국 남부를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매헌이 던진것은 물병이었고 도시락은 현장에서 체포될 때 그 자리에서 압수를 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도시락 폭탄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매헌이 던진것은 분명히 물병 폭탄이지 도시락 폭탄은 아니었다.  

 

지금 역사의 현장은 홍커우 축구장과 스포츠 구기장으로 변하고

공원의 나머지 부분은 그냥 아침운동이나 하는 평범한 공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안으로 들어 가자.

산책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앞에 인공 호수가 보이고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그곳 왼편에 작은 매표소가 보인다. 

공원 입장료는 없으나 이곳 기념관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 말고는 누가 오겠는가?

중국 정부는 이곳에도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 애국 지사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다.

15원.... 우리돈 2.500원 정도...

큰돈은 아니지만 상하이에 오는 모든 한국인은 이곳을 성지처럼 방문한다.

 

역사의 현장은 축구장이 되었고 달랑 기념관 하나 이곳에 따로 지어놓고 돈벌이를 한다.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가면 매헌 기념관이 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오는가?

정말 무서운 중국인들이다.

佳人이 보고 싶고 매헌의 정신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은 흔적도 없이 축구장으로 변하여 지금은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다.

 

 입구 바로 앞에는 이런 호수가 있다.

물은 오염되어 더럽기 짝이없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매정(梅亭)이라고 쓰인 현판에 2층짜리 작은 기념관 하나 달랑 있다.

대여섯 명만 들어가도 내부는 가득 찬다.

정말 작고 초라하다.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는 예전 건물이나 남았지.....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매헌 흉상이 있다.

그 옆에는 장부 출가 생불환(丈夫 出家 生不還)이라고 매헌께서 쓰신 글이 보인다.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서면 그 뜻을 이루지 않고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매헌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함축적인 말이다.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에 속상했던 마음이 금방 풀어진다.

佳人은 왜 집을 나와 이곳에 있는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는가?

 

너무 길어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줄인다.

내일은 매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한국인들이여~~ 손에 손잡고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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