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비 첫번 째 이야기

2008. 11. 25. 01:03중국 여행기/소주, 항주, 상하이 여행

이제 송나라가 자랑하는 명장 악비 이야기다.

오늘 이야기는 지루하고 길다.

역사 이야기 싫어하시는 분들은 패스~~

 

그는 송나라뿐 아니라 중국 모두가 충신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이순신장군 정도로 사랑받는 장군이다.

그러니 중국의 이순신장군이다.

왜 중국인들은 악비를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하는냐?

그는 중국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 한족 출신이다.

당시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키자 남쪽으로 망명온 송나라의 사람들이

남송을 건설하고 북쪽의 금나라와 맞짱 뜨던 시기였다.

악비는 한족의 나라 남송의 장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1126년에 유목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금(金)의 군대가 화북(華北) 지방을 침입하여 북송의

수도인 카이펑(開封)을 점령했다.

사실 금나라의 침공에 시달리다 못해 땅을 줄테니 제발 그냥 같이 살자고 했는데도 금나라는 

송나라의 모든것을 내 놓으라고 했다.   

금의 남하가 계속되고 있던 1125년에 휘종(徽宗)은 태자였던 흠종(欽宗:1125/26~27 재위)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 

아래 사진의 눈의 의미는 추운 북쪽의 금나라와 전투를 하는 의미다.

 

그러나 곧이어 휘종과 흠종은 금의 포로가 되었고 북송은 멸망했다.

그후 휘종의 또다른 아들이었던 고종(高宗:1127~62/63 재위)이 양쯔 강(揚子江) 이남지방에서

나라를 재건했는데 이를 남송이라고 불렀다.

 

고종과 함께 남쪽으로 퇴각한 악비는 절도사에 제수되었다.

그는 구릉지가 많은 강남지역의 지리적인 이점을 잘 이용하여 금의 기마공격을 막았다.

 

1137년 선무사에 임명되어 양쯔 강과 화이허 강(淮河) 남부 사이에 위치한 중원(中原) 지역의

회복에 진력했으며 이로써 금이 점령했던 일부 지역을 수복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금나라 군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북진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영토를 수복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주화파(主和派)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주화파의 우두머리였던 재상 진회(秦檜)는 더이상의 전쟁 수행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운래 나라가 어려우면 주전파와 주화파가 생기게 마련이다.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진회 등의 주화파는 조정에서 더욱 세력을 확대하여 1141년에는

주전파(主戰派)인 악비를 옥에 가두고 처형했다.

 

그리고 북방의 영토를 포기하고 금을 섬기며 조공을 바친다는 내용의 굴욕적인 화의(和議)를

맺었다.

자존심이 상한 한족들에게 그나마 여진족을 상대로 싸운 악비가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후 악비는 후세의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되었고 악비를 모함한 진회는 '반역자'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악비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투쟁한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한국에 이순신이 있다면 중국에는 악비가 있다.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의주로 도주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외로이

바다를 지키며 조선을 살려내고는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과 매우 흡사한 인물이 바로

중국 송나라의 악비다.
눈이 내리는 북쪽에서 금나라와 전투를 하다 악비가 큰 부상을 입는 장면이다.

 

송나라를 끌어들여 1125년에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바로 그 해 연말부터 동맹국

송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금나라 군대에 밀려 송나라는 황하도 빼앗기고 회수도 빼앗기고

이제는 양자강 유역까지 빼앗길 절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악비였다.

만약 금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악비도 그처럼 출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무명 장교로 일생을 끝냈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악비에게 내린 선물은 소속 부대의 궤멸이었다.

송나라 건염 1년(1127) 9월에 왕언이란 장군이 지휘하는 송나라 군대가 대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이 부대에 소속된 악비라는 장교가 패잔병들을 모아 독립적인 부대를 조직한 뒤에

조정의 명령을 받아 대금 항쟁에 나선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별다른 소득이 없던 악비의 부대는 이후 금나라 군대는 물론이고 국내의

반란세력들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송나라의 지배영역을 양자강 이북으로

또 회수 이북으로 또 황하 유역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