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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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소중한 기억들.
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까요? 보고 싶은 곳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까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와 다른 곳을 찾아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공감할 수 있으며 무엇이 같은가 확인하기 위함일까요? 여행에 답이 어디 있나요. 그냥 떠나고, 그리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닐까요?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일인가 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이번 여행에 그 마지막 이야기를 계속하렵니다. 10월 28일 이른 아침에 후커우 폭포를 보고 린펀을 거쳐 허우마에서 진청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캄캄한 밤에 베이류라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내려 황청샹푸로 걸어 들어가는 도중에 다행히 빠오처를 타게 되었습니다. 중국을 다니며 처음 칠흑 같은 밤에 마을을 찾아 걸어보았습니다. 후커우 폭포의 위용은..
2012.08.08 -
취푸에서 톈진으로
2011년 11월 8일 여행 29일째 이제 우리 부부의 여행도 거의 끝나버렸습니다. 오늘은 공자의 고향 취푸를 떠나 우리가 이번 여행을 처음 시작한 톈진으로 갑니다. 모레 오전에 톈진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곳에서의 계획은 태산을 들렀다가 톈진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여행이 끝나가니 일정도 헝클어지고 톈진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하루의 여유를 가지려고 바로 올라가렵니다. 톈진에도 고문화 거리 외 볼만한 게 한두 곳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미리 하루 전에 도착하려고 합니다. 산동성은 유명한 사람이 많이 태어난 곳이라 하네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공자, 맹자, 손자, 제갈량, 왕희지, 안진경, 편작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실 어느 지방이나 워낙 ..
2012.07.27 -
공부(孔府)는 연성공부(衍星公府)라는군요.
공부(孔府)는 성부(聖府) 또는 연성공부(衍星公府)로 불린다 합니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연성공부라 불러야 한다는군요. 연성공부라는 공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의 집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어디 중국뿐일까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집안이 여기일 겁니다. 이런 집도 사회주의 정부인 신중국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빼앗아야 인민이 더 행복했나 봅니다. 2.500여 년간 전통을 지켜온 공부도 이제는 중국 정부 소유가 되었나 봅니다. 행복이란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없고 남의 불행이 바로 나의 행복이라고 했나요? 행복과 불행은 틀림없이 상대적이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남이 더 불행할수록 나는 더 행복해지고 남이 더 행복하면 상대적으로 나는 더 불행해진다는 말. 제일 처음 기원전 195년 ..
2012.07.26 -
꽁푸(孔府 : 공부)로 들어갑니다.
이제 공묘 구경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공부(孔府)로 갑니다. 공묘의 출구로 나서면 궐리라는 길이 나타나고 그 끝이 바로 공부의 입구네요. 공묘가 공자의 사당이라면 공부는 삼공(三孔) 중 공자의 후손이 일하며 살았다는 관청과 살림집에 해당하는 곳이라는군요. 물론, 뒤편은 살림집이지만, 앞쪽은 근무처인 관청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직장이 이렇게 가깝다면 정말 좋겠어요. 요즈음 출근길 정말 짜증 나시죠? 우리나라는 출근을 전쟁에 비유하잖아요. 佳人은 출근전쟁에서 이미 은퇴한지 제법 되었기에 이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곳 공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 제일 앞에 관청 격인 근무처이고 그 뒤가 바로 살림집인 안채로 구분할 수 있겠어요. 그다음이 내택이라는 안채 뒤에 ..
2012.07.25 -
공자 고택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이제 공묘를 오늘로써 모두 보고 가네요. 내용도 없는 이야기로 오랫동안 지루하게 끌었습니다.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하잖아요. 역시 佳人은 빈 수레였나 봅니다. 취푸는 그냥 가시기보다는 미리 알고 가셔야 더 좋을 듯합니다. 우리가 흔히 여행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우리 부부처럼 그냥 가보면 비석만 있고 문만 통과하다 보면 끝나버리는 곳이 이곳인 듯합니다. 제일 뒤쪽 북동 편에는 예전에 공자가 살았다는 공택(孔宅)이라고 부르는 공자 고택(孔子故宅)이 있습니다. 정말 공자가 여기에 살았느냐고 묻지 마세요. 예전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오랜 세월이 지났잖아요. 그래도 공자가 살았던 집은 사라졌겠지만, 자취는 남아있지 않겠어요? 아마도 공자가 ..
2012.07.24 -
대성전 뒷모습
이곳 공묘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많은 황제와 유명한 사람이 다녀갔네요. 저마다 여기에 얼굴을 비쳤다고 인증 샷처럼 증거를 비석이나 편액 등으로 남겼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사람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심어주고 황제는 덕으로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도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공자를 끔직이도 섬긴다는 말은 그만큼 민초를 아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많은 황제가 다녀가다 보니 가지 않은 황제는 무식하고 바보같이 취급받아 더 가게 되나요? 더군다나 오랑캐라는 손가락질받았던 북쪽에서 내려온 정권일수록 더 열심히 방문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만 다녀가면 모두 문명인이 되는 겁니까? 그만큼 공자의 덕이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성전 뒤로는 공자의 부인인..
2012.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