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후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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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錦里 : 금리)거리와 티베탄 거리
무후사를 대강 보고 나왔습니다. 무후사란 삼국지 기행을 하시는 분에게는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크게 볼 것은 많지 않지만, 그 역사적인 장소이기에 중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모셔진 사람은 삼국지 중심에 서서 천하를 생각했던 사람들이니까요. 이제 무후사 바로 옆에 있는 금리라는 거리로 갑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희루처럼 보입니다. 연극 같은 것을 공연하는 장소 말입니다. 청두에는 변검이라는 유명한 공연이 있ㅈ요. 금리라는 거리는 그야말로 장사하는 골목이군요? 볼 게 별로 없는데 왜 이곳 소개가 많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건물이 청대의 건물형태라 하지만, 이런 모습은 중국 어디를 가나 마을마다 모두 있는 곳이 아닌가요? 아마도 변검이라는 연극을 하는 곳인가 봅니다..
2013.11.07 -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
이제 유비의 묘 혜릉(惠陵)으로 갑니다. 봉토의 높이가 12m이고 묘지의 벽 둘레가 183m나 된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223년 8월에 백제성에서 숨을 거둔지 넉 달 만에 이곳으로 옮겨 매장하였다고 기록했으며 감 부인과 오 부인도 이곳에 함께 합장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릉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바로 익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마도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출진을 말렸습니까? 원래 성공하면 소신이고 실패하면 똥고집인 게 현실이지요. 유비는 산전수전 다 겪은 영웅이라 생각하고 나라의 기둥뿌리까지 빠질 정도로 많은 군사와 식량으로 오나라로 나갔지만, 서생출신인 어린 육손에게 무참하리만치 깨졌으니 어찌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겠어요. 공명원을 벗어나 그 옆의 문으로 나갑니다. 중..
2013.11.05 -
파란만장한 공명의 삶
도원 왼쪽으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분재를 전시한 공간이 있습니다. 분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지만, 잠시 거닐며 분재 구경을 합니다. 중국의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이런 비슷한 분재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자주 봅니다. 중국에서는 입장료가 비싸서 그런가요? 이런 정원을 무척 잘 꾸민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많은 구경꾼이 몰리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을 분산하자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분재공원은 우리가 방문한 무후사와는 아무 관련도 없잖아요. 공명이나 유비가 생전에 분재광이었다는 기록도 본 적이 없걸랑요.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생각도 정리하고 갑니다. 숲이 우거져 연인과 산책하기 딱 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곳도 좋습니다. 그런데 울 마눌님은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 지금쯤 무후사 옆에 있는 금리거리..
2013.11.04 -
삼의묘에서 만나 삼 형제.
이제 그 뒤에 있는 공명의 사당으로 넘어갑니다. 공명은 당시 천하를 웃고 울게 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삶이 무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인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래를 읽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역지사지했던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현판에 명수우주(名垂宇宙)라고 쓴 겁니까? 천지간도 부족해 공명의 재기는 이제 우주로 뻗어 나가나 봅니다. 드디어 공명의 이름이 이제는 우주까지 드리우나 봅니다. 그럼 공명은 외계인이라는 말이에요? 어쩐지 우리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신출귀몰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중국인의 호방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액이군요? 호방은 뻥이라는 말과는 동의어입니다. 그러니 호방이라고 쓰고 뻥이라고 읽어야..
2013.11.01 -
촉한의 모든 것.. 무후사.
청두는 촉한의 왕궁이 있던 익주라는 곳이지요. 그러나 촉한이 있기전에 이미 이 지역은 촉(蜀)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역사 또한 무척 오래되었다 합니다. 촉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촉나라의 땅에 한나라를 계승하자는 의미로 촉한이라 불렀겠지요? 그런데 촉(蜀)이라는 글자는 사실 눈이 큰 사람이라는 의미의 글자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삼성퇴라는 유적이 발견되었지요. 그 유적에서 발굴 된 유물에서 보듯 지금의 중국인과는 얼굴 모습도 다르고 눈이 무척 큰 청동으로 만든 얼굴상이 많이 출토되었지요. 당시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아주 앞선 청동기문명이었을 겁니다. 그러기에 이곳을 지배한 민족은 지금 중국민족이 아닌 눈이 큰 민족인 이민족이 다스린 지역이라고 해 촉나라라고 했을 겁니다. 외계인이었을까요? 아니..
2013.10.31 -
출사표... 그것은 다른 의미인가요?
무후사. 여기로 걸어오며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보았습니다. 이렇게 혼자 하는 여행은 생각마저 자유롭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읽기에는 너무 엉뚱한 이야기라서 당황스럽겠지만.... 이제 무후사 입구에 도착했네요. 우리에게 무후사라고 알려진 이곳은 사실 촉한의 황제 유비의 무덤입니다. 대문 입구에 걸린 편액이 무후사가 아니고 한소열묘라고 되어있죠? 그렇습니다. 여기는 유비와 공명의 사당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살아서 수어지교(水漁之交)라고 하더니만 죽어서도 이렇게 함께 지냅니다. 왜 후세 사람은 황제의 무덤을 황제의 무덤이라 부르지 않고 그의 신하였던 공명의 시호를 딴 무후사라 부를까요? 유비를 찌질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유비는 살아생전 군자라 했는데 그게 가식적인 인물이라는 말일까요? 그래도 여기 무덤은 기본..
201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