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이제 그 뒤에 있는 공명의 사당으로 넘어갑니다.
공명은 당시 천하를 웃고 울게 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삶이 무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인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래를 읽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역지사지했던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현판에 명수우주(名垂宇宙)라고 쓴 겁니까?
천지간도 부족해 공명의 재기는 이제 우주로 뻗어 나가나 봅니다.
드디어 공명의 이름이 이제는 우주까지 드리우나 봅니다.
그럼 공명은 외계인이라는 말이에요?
어쩐지 우리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신출귀몰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중국인의 호방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액이군요?
호방은 뻥이라는 말과는 동의어입니다.
그러니 호방이라고 쓰고 뻥이라고 읽어야 합니까?
그러나 공명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어떤 칭찬도 아깝지 않지요.
손에 든 학우선으로 보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지요.
제법 살찐 모습으로 날카롭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사람의 모습보다 이웃 삼겹살집
아저씨 같은 모습인데 공명의 조소상은 1672년에 만들었다 합니다.
벌써 여기 모신 조소상이 340여 년이나 지났네요.
지금 이곳에 터를 잡고 새로 지은 것은 중원에서 오랑캐라고 비하했던 청나라 시기였다 합니다.
청나라가 중원에서 한 일을 보면 어느 민족보다 문화적으로 앞선 정권으로 보입니다.
옆에는 제갈 첨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이렇게 부모 곁에서 떠나지 않으니 효자로 보이네요.
첨은 등애의 군사가 검문관에서 막히자 음평이라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돌아 촉한의 황궁이 있는
익주를 공격하자 이에 맞서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공명의 손자 제갈 상이 있습니다.
제갈 상도 등애가 밀어닥치자 용맹하게 싸우다 죽었답니다.
그때 스무 살 꽃다운 나이였던 손자인 제갈 상은 공명의 아들이며 그의 아버지인 제갈 첨과 함께
모자란 황제를 지키려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합니다.
사내도 꽃다운 나이가 있걸랑요.
어린 나이에 죽는 바람에 조상에는 수염도 붙이지 않았나 봅니다.
이렇게 공명 삼 대가 모두 목숨을 바쳐 유비가 일군 촉한을 지키려 했지만,
촉한의 황제 유선은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하고 여생을 편히 지냈다는데...
보호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목숨까지 버린 공명의 집안만 바보 되고 만 꼴입니다.
그래도 명문의 가족이라 군대 면제받을 수 있었는데도 앞장서 싸운 제갈 집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족입니다.
이런 가족 흔치 않습니다.
역시 무후사인 이곳에서도 도원결의의 비중은 무척 높습니다.
공명의 사당 무후사 뒤에 삼의묘라는 사당을 만들어 도원결의한 형제 셋을 모셨습니다.
난세에 세 사람이 복숭아나무 아래 모임으로 삼국지라는 소설이 시작되었고 재미를 더해 갔으니
정말 대단한 형제들이죠.
당시 세 사람이 모여 꾸었던 꿈은 누가 보더라도 미친 짓이라고 했을 겁니다.
물론 한실 부흥은 허언이 되었지만, 그래도 유비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관우는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삼 형제 중 장비는 죽은 후에도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돼지고기에 술을 팔던
처지에서 볼 때 가문의 영광은 맞습니다.
지금 장비우육이라는 유명 식품의 영원한 CEO가 장비가 아니겠어요?
삼의묘 가운데에 유비의 조소상이 있고 왼쪽에 장비 그리고 오른쪽에 관우가 있네요.
유비는 이렇게 두 형제를 좌우에 두고 앞에는 공명을 내세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할까요.
유비는 죽어서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에 늘 이렇게 함께 지내나 봅니다.
이곳에 만든 조소상은 아주 잘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씩 살펴보렵니다.
우선 유비입니다.
아주 인자한 이웃 아저씨처럼 보입니다.
귀가 컸다고 하더니만 역시 포인트는 귀에다 두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장비입니다.
역시 털 목도리를 두른 듯한 수염이며 소 눈깔보다도 더 큰 저 눈알 하며...
정말 우락부락한 장비처럼 만들었습니다.
저 코에서 화만 나면 콧김이 씩씩거리며 나왔을 겁니다.
이번에는 관우입니다.
또 수염 자랑하려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수염에 포인트를 줍니다.
타협을 모르고 오만한 듯한 저 모습을 보며 누구는 성질 죽이고 싶어 이렇게 덜수처럼 사느냐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사실, 佳人도 성질이 있거든요.
삼의묘 뒤로 들어가면 도원결의 내용을 돌에다 새겨놓았습니다.
삼국지라는 이야기에서 도원결의는 삼국지의 서론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뒤로 정원이 보입니다.
그 정원의 이름이 도원결의를 한 것을 상상하며 만든 도원이라는 곳이지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곳입니다.
아! 멋진 돌조각이 보입니다.
물론, 저 돌도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작품이지만, 佳人 눈에는 그냥 돌입니다.
가만히 보니 색깔이 모두 다르네요.
그렇다면 사람 성격도 다르다는 말이 아닐까요?
엽육산이라는 조각가가 쓰촨성 여러 곳에서 생산된 돌로 만든 인물상이랍니다.
가운데 하얀 돌은 유비겠지요.
왜?
늘 유비는 좌장비 우관우를 거느리고 가운데에만 있으니까요.
그리고 늘 뽀얀 얼굴로 귀공자타입으로 표현하니까요.
사실 그랬을까 의문이지만, 황손임을 내세우기 위해 늘 귀공자 타입으로 그렸을 겁니다.
살아서도 그랬지만, 유비는 좌우로 죽어서도 그러고 싶었나 봅니다.
아니... 돌이 되어서도 좌우로 거느리며 폼 잡고 싶었나 봅니다.
하얀 돌은 마음이 희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나 佳人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렵니다.
사내가 뜻을 세웠으면 가장 적은 희생으로 이루어나가야 하는데 유비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는
생각이고 그러나 많은 희생이 따른 후에는 그 일을 모두 이루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유비라는 의미겠지만, 실제 유비는 능구렁이보다 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왜?
황실의 피가 조금 섞였다 하나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한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살았지만,
한실은 자신을 위해 구한 셈이잖아요.
짚신에 돗자리나 짜며 살다가 좋은 후원자를 만나 천하 제패까지 야무진 꿈을 꾸었고요.
오른쪽의 붉은 돌은 보나 마나 관우일 겁니다.
왜?
관우는 얼굴이 대추처럼 붉었다고 하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늘 술에 취해 산 것도 아니고 맨날 성질 내며 산 것도 아닌데...
늘 붉은 마음 일편단심으로 살아서였을까요?
그게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색인데 어쩌란 말입니까?
또 수염만 만지고 있네요.
그러니 짬뽕처럼 붉은색은 관우요 나머지 짜장 색깔의 얼굴은 장비가 맞을 겁니다.
시커먼스 장비.
아마도 장비의 모친이 장비를 가졌을 때 입덧이 무척 심했나 봅니다.
그래서 평소 먹지도 않았던 짜장면을 먹고 입덧이 가라앉았나 봅니다.
그래서 사내아이를 낳고 보니 피부색이 짜장 색깔로....
이 이야기는 우리 아들도 해당하는 실제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기 도원이라는 곳에는 뽀얀 우동 한 그릇과 그 옆으로 짬짜면이 있나 봅니다.
빨간 국물의 짬뽕과 새까만 짜장 말입니다.
그럼 공명은 어떤 음식일까요?
삼 형제 모두 두 글자니까 공명도 두 글자로 탕슉으로 할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 삼의묘 뒤에 있는 도원에서 우동 한 그릇과 짬짜면을 보았습니다.
역시 중국이라 얼굴 색깔도 중국 음식과 같습니다.
오늘 점심은 중국집에 청요리로 시켜 먹는 것은 어떨까요?
식성에 따라 우동을 드셔도 좋고 짜장면이나 짬뽕도 좋습니다.
함께 두 가지 다 드시고 싶으시면 짬짜면으로 하세요.
세트 메뉴로 하시면 탕슉도 포함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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