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도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고성

2021. 9. 13. 03:00독일·오스트리아 2018/잘츠부르크

카피텔 광장(Kapitelplatz)에 내려와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올려다봅니다.

황금의 구체 위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든 모차르트가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호엔잘츠부르크 성으로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밤에는 성 외벽에도 불을 밝혀 두었네요.

다시 올려다 보아도 성은 전혀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긴 불빛은 늦은 시간에도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오르내리는 푸니쿨라 선로입니다.

 

할슈타트와 인근 소금 광산에서 캐낸 하얀 황금이라는 소금 덩어리 암염은

유럽 전체로 팔려가며 잘츠부르크는 돈 세는 일로 밤을 새웠을 겁니다.

돈을 세며 밤을 새운다는 말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곳 대주교는 소금으로 넉넉한 자금을 가지고 이 지역을 다스렸으니

호엔잘츠부르크와 같은 성을 건축하는 일이 별로 힘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조의 성이라는 노이슈반슈타인처럼

아름답게 짓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생산된 암염은 그중 루트 하나가 북으로 올라가며 우리가 며칠 후 찾아갈

체스키 크룸로프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영주는 또 소금 무역을 관리해 준다는 이유로

중간에 이익을 챙겼다고 했는데 그곳에 있는 영주가 머문 고성 안에는 지금도 당시

사용했던 소금창고가 있고 말을 관리해주었던 시설이 그대로 남아있지요.

 

이렇게 움직일 때마다 돈을 뿌렸던 하얀 황금인 소금은 체스키 크룸로프를 떠나

다시 북으로 올라가며 이번에는 지금의 체코 수도인 프라하로 옮겨지게 되었겠네요.

 

프라하는 이런 무역의 중계점으로 얻은 수익으로 한때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의 지위도

누렸고 성벽을 쌓고 많은 탑을 세움으로 소금이 준 영향은 우리 생각에 상상 이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프라하는 많은 탑이 있다고 백탑의 도시라고 하나요?

 

조조도 권력을 잡은 뒤 처음으로 염철 관영(鹽鐵官營)이라는 정책을 펴

소금과 철을 아무나 팔고 살 수 없게 하고 소금과 철은 국가가 관리하는 정책을 폈지요.

조조가 누굽니까?

 

바로 동양권에서는 조조 같은 놈이라고 욕을 먹는 꾀돌이가 아닌가요?

조조도 소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니 인간세상에서 소금만큼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없지 싶습니다.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희망봉을 돌아서 동양으로 진출하며 후추를 비롯한 동양의 조미료나

향신료가 배를 통해 대량으로 서양으로 밀려들어가게 되며 서양인의 입맛을 바꾸었지요.

이것은 음식문화에 있어 촌놈들이었던 유럽인에게는 혁명적인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실크로드를 통한 소량의 향신료가 캐러밴을 통해 유럽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양은 미미했고 일부 권력자나 귀족에게만 소량씩 거래되었기에 일반 서민은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처지였을 겁니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그 목구멍 같은 이스탄불을 유럽인이 가장 싫어하는

무슬림인 오스만 제국이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들이 가격도 양도 마음대로 쥐고 흔들었을 겁니다.

 

그랬기에 오스만의 눈치만 보던 유럽에서는 바다로 대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저렴한 가격의

동양의 향신료가 유럽인의 입맛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겠지요.

 

그전까지는 유럽인에게는 맛을 좌지우지하는 향신료는 오직 소금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인의 음식은 무척 짭니다.

사용할 만한 조미료나 향신료가 없던 생활을 수천 년이나 해왔기 때문이지요.

 

당시 소금이 고가였기에 많이 사용하는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시절에는 음식에

소금을 많이 사용하는 게 미덕이고 자랑이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짜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야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겠네요.

 

우리나라는 음식에는 반찬 가짓수가 많기에 간을 맞추기 위해 모든 반찬에 소금을

사용하다 보니 전체 소금의 양이 자연히 많아지기에 소금 섭취량이 많다고 하지요.

 

유럽의 식단은 주로 단일 음식이기에 그곳에만 간을 해야 하기에 우리 입맛에는

더 짜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세에 그런 음식의 가장 중요한 소금의 산지는 돈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곳 소금 성이라는 잘츠부르크는 당연히 부유한 곳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돈으로 대주교는 이곳에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지었으니 그 말의 의미하는 것처럼

높은 언덕 위에 소금 성이 되었겠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내륙지방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지요.

그러나 공평하게도 내륙 한가운데서도 세상 얻나 쉽게 소금을 구할 수 있는

광산이 개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