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채로 그냥 두어 더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고성

2021. 6. 21. 03:29독일·오스트리아 2018/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 성을 구경하다 보면 이상한 점이 부서진 채로 그냥 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독일의 국력이나 독일인의 생각으로 이렇게 폐허처럼 방치해 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성은 반은 복원이 되어 멀쩡해 보이고

반은 그냥 부서진 채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처음 사진은 카를 블레헨(Carl Blechen)이 1830년에 그린 그림이고

다음 사진은 제가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위의 두 장의 사진은 그림과 현장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미 1830년에 지금의 모습처럼 부서진 채로 있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신, 구교 간의 전쟁인 30년 전쟁과 팔츠 계승 전쟁 등 전란으로

파괴되었고 화재와 벼락으로 파괴된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보입니다.

이렇게 부서진 채로 두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이델베르크 고성이었습니다.

 

이렇게 둔 이유는 오랜 기간 복원을 두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1868년 시인이었던 볼프강 뮐러 폰 쾨니히스뷘터(Wolfgang Müller von Königswinter)가

하이델베르크 성을 처음 모습으로 복원하자고 주장하며 복원 계획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응답하듯 바덴 대공국은 성 복원 사무소를 열어 본격적으로 복원 계획에 착수하게

되었다는데 철저하기로 유명한 독일은 1890년 독일 전국에서 모인 고성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한 결과 성을 완전히 복원하거나 또는 일부분만 복원하는 것보다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네요.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부서진 옛 건물을 두고 복원을 함에 있어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네요.

어느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복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고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실 이미 고성 안에는 들어왔지만, 그곳은 입장권 없이도 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탑 문이 보이고 탑 문 앞에 입장권 검사를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문을 통과해 다리를 지나면 시계탑이 있는 문이 또 하나 있어 외침에 대비해

제대로 만든 이중 출입문이네요.

 

다리 양쪽으로 내려다보면 물은 없지만, 위의 사진에 보듯이 일반적인 성처럼 깊이 파두어

다리를 지나지 못하면 함부로 내성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네요.

시계탑이 있는 탑 문은 40m 높이로 성을 지켰던 경비병이 거주하는 공간도 있다고 합니다.

 

1541년에 완공한 탑이지만, 1689년에는 불이 나는 바람에 모두 사라지고 1718년 선제후

카를 필리프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고성 내부는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복원에 제법 많이 되어 있습니다.

 

고성 중정으로 들어오면 위의 사진 왼편에 보이는 것이 프리드리히 건물(Friedrichsbau)로

이곳 또한 전쟁과 불이 나는 바람에 흉물스럽게 변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건물 뼈대 자체는

제법 온전하기에 다시 처음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해 1897~1900년 사이에

복원작업이 마무리되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네요.

 

입장료에 포함된 곳도 있지만, 내부에는 아무 곳이나 모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일부 내부는 별로도 돈을 내고 가이드를 따라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였던 건물 하인리히 관은 3층부터는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돈도 많은 독일에서 이렇게 부서진 상태로 그냥 둔 것은 완벽한 복원이 아니면

차라리 그냥 그대로 둔다는 독일 문화재 관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인 듯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네요.

 

위의 사진은 중정에서 방금 들어온 출입문 방향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사합원 양식으로 사방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중정을 중심으로 동쪽은 오토 하인리히 관과

북쪽으로 영국관이라고도 부르는 프리드리히 관이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프리드리히 관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폐허처럼 부서진 이곳에서도 제법 온전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프리드리히 관 건물 파사드에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선제후 16명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장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제후 중 선제후는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기에

정말 한세상 목에 힘주고 살았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은 선제후 대주교가 살았던 곳이었지요.

그러나 규모로 볼 때 황제에 버금가는 그런 규모가 큰 궁전으로 보였습니다.

중세의 권력이란 민초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하늘만 잘 섬기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한평생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