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성령 교회

2021. 6. 16. 03:31독일·오스트리아 2018/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Heiliggeist kirche)는 마르크트 광장 가운데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지요.

하이델베르크의 대표 교회라고 합니다.

본당과 첨탑은 만든 시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성령교회는 하이델베르크의 상징 중 한 곳으로 유명한 교회라고 합니다.

한때는 대학 소속의 교회였기도 했고요.

진보적인 도시였던 하이델베르크였기에 신, 구교 간의 극심한 갈등이 있었던 곳이라

교회의 역사도 파란만장하답니다.

원래 성 베드로에게 봉헌한 성당이었다고 하네요.

역사에 기록으로는 1239년에 작성된 쇤나우(Schönau) 수도원의 문서에

처음으로 성령교회가 언급되었다고 합니다.
 팔라틴의 선제후 루프레히트 3세(Ruprecht III)는 팔라틴의 위상에 걸맞은 교회를 하이델베르크에

세우기로 하며 시작해 150여 년간의 공사 끝에 1515년 지금의 모습으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교회와는 달리 교회 안에 진귀한 수천 권의 책을 소장한 교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가 대학 도시라 있어 보이려고 그랬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30년 전쟁을 거치며 책 대부분은 약탈당했다는데

그 후 돌려받은 책은 수백 권에 불과하다네요.

약탈당한 그 책은 흘러서 교황청으로 갔다고 합니다.

 

원래는 가톨릭의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나중에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다가 다시 바뀌기도 했고요,

어떤 때는 가운데 반을 갈라 각각 신, 구교가 성전으로 함께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개신교의 교회라네요.

30년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 중 한 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잖아요.

 

위의 사진은 현재는 호텔로 사용 중인 기사의 집(Haus zum Ritter)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오래된 집으로 한때는 시청사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지요?

많은 건물이 전쟁으로 대부분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이 기사의 집 만은 거의 훼손되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의 집이라는 이름은 기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다만 건물에

기사 상이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른 마르크르 광장 뒤로 칼츠 광장(Karlsplatz)이라고 또 있네요.

광장 한가운데 세바스티안 뮌스터 분수(Sebastian-Münster-Brunnen)가 있고요.

그런데 분수의 모습도 기괴하고 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바스티안 뮌스터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곳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한 학자라고 하네요.

히브리어를 전공한 우주 형상학을 연구했던 학자로 바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친 교수였다는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분수라네요.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하이델베르크 대학(Heidelberg University)이지요.

1386년 팔츠 선거 후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 설립된 대학교입니다.

그는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누스 6세의 허가를 받아 정식 대학으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이미 개교 600년도 훨씬 넘은 대학교입니다.

독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교라고 합니다.

이 대학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7명이나 배출되었다니 대단한 학교라는 생각이 드네요.

 

1803년 선제후 카를 프리드리히에 의해 최초의 국립대학으로 지정되었다네요.

따라서 우리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루프레히트 카를 대학교라고 합니다.

알프스 이북에서는 체코 프라하 카를 대학교와 오스트리아 빈의 빈 대학에 이어 세 번째이니

독일에서는 첫 번째가 되는 셈이지요.

 

광장을 사이에 두고 학생 감옥(Studentenkarzer)이 있는 북쪽 건물은 1700년대에 세운

구 교사이고 남쪽은 1931년에 세운 신 교사(Neue Universität)라고 하네요.

그러나 신 교사에서 마녀의 탑이라는 Hexenturm이라는 탑이 있는데

13세기에 세운 탑으로 그대로 보존해두었습니다.

1392년까지는 도시 요새 중 하나로 만든 탑이라고 합니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탑으로 마녀의 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450~1500년 사이에

요술쟁이로 고소된 여자나 죄지은 여자를 가두었던 곳이라 그리 부른답니다.

 

학생 감옥(Studenten karzer)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느낌이 드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사법기관의 결장에 따라 벌을 받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곳이 대학 감옥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대학은 당시에 치외법권 지역으로 죄를 지으면 대학에서 독자적으로

재판을 할 수 있기에 대학 안에 감옥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물론, 중죄인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받겠지만요.

그래서 유럽의 오래된 대학교를 방문해보면 대학 감옥이 모두 있었나 봅니다.

이는 당시의 사회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차이가 있네요.

감옥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게는 선뜻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잖아요.

 

원래 구 교사 지하에 있었으니 1778년 뒤에 있는 아우구스티너 골목으로 이전해 1914년까지

학생을 구금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보통 죄를 지으면 죄의 경중에 따라 1일부터 30일까지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한때는 학생들은 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진정한 학생이 아니라는 풍조가 있어

이곳에 들어가는 일을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했다네요.

또 사식을 먹을 수 있고 술도 반입이 허용되었고 수업도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감옥은 아니었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