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베크 성령 양로원(Heiligen-Geist-Hospital)과 빌리 브란트

2020. 12. 7. 04:58독일·오스트리아 2018/뤼베크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길거리에 단체 여행객이 어느 건물 앞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성령 양로원 병원(Heiligen-Geist-Hospital)입니다.

건물 모습이 아주 독특한 곳이네요.

 

이곳은 중세 시대의 양로원 병원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양로원이라는 말이 아직도 마음에 쉽게 닿지 않는데...

중세 시대에 이미 이곳에서는 나이가 들어 병 든 사람을 이런 곳에 집단으로 수용해

돌보고 살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지금의 모습과 똑같은 성령 양로원의 모형입니다.

이 양로원 교회는 1260년에 처음으로 개원되었으며 이후 수차례에 걸쳐 보완되고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설은 복지와 연관된 곳인데...

 

지금은 최신시설과 좋은 여건의 양로원이 많이 생겼기에 시설이 낡아 낙후되어

이제는 더는 사용하지 않고 그 모습만 남아있는 곳이랍니다.

그러니 중세에 최첨단 복지시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박물관과도 같은 곳이겠네요.

 

1200년대에 이런 시설이 생겼다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하네요.

당시에 노후가 힘든 사람을 수용한다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겁니다.

더군다나 교회 시설에 병원 기능을 갖추고 이런 사회시설을 한다는 발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때가 아니겠어요?

 

중세의 교회는 권위적이고 왕권과 결탁하거나 대립하며 권력에만 관심이 많을 때잖아요.

그냥 양로시설만이 아니라 공동으로 돼지도 기르고 채소도 심어가며

일종의 협동농장처럼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점이죠.

 

그렇기에 건물에 붙은 안뜰이 있고 복도를 중심으로 교실처럼 꾸며 많은 사람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규모 있게 꾸몄고 방마다 침대와  책상과 개인 장을 갖추어 놓았네요.

위의 사진을 보면 마치 수용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방 안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독실도 운영했나 봅니다.

물론, 모든 방을 이렇게 꾸며놓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다인실로 보이는 모형입니다.

당시에도 경제력에 따른 계급제도는 있었나 봅니다.

그렇다 하더라고 이런 노후를 위한 시설이 800여년 전에 이미 이곳에서는

운영되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또 함께 담소도 나누며 공동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으니 지금 보아도

이 정도의 시설이라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되네요.

어찌보면 지금의 양로병원 시설보다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곳에 머물다 사망하면 바로 시신을 묻을 수 있는 묘지까지 갖춘 당시 최고의 시설로 보입니다.

지금도 우리 나이에 양로원에 간다고 하면 그게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라지요?

다만, 옛 설화에서 시작된 지어낸 이야기를 실제인 냥 부풀렸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그게 실제 있었던 우리의 풍습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여행을 제법 많이 했지만, 이런 종류의 건축물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위해 사람답게 살다가 갈 수 있도록 이들은 벌써 1200년대부터

시도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런 시설을 보면서 놀랍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제 함부르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분은 어디서 많이 보았던 분이 아닌가요?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총리로 선출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맞습니다.

 

그의 고향이 바로 이곳 뤼베크라서 이곳에 그를 추모해

빌리 브란트 박물관(Willy Brandt House)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모습이 보여 우연히 찾아들어 갔습니다.

그가 나치를 증오하고 반대하며 그는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지요?

 

박물관 안에 그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 보이네요.

장벽은 콘크리트로 만든 단순한 구조물이지만, 사람의 마음마저 갈라놓은 장벽이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새로운 장벽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께서는 위의 사진을 기억하십니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고 폴란드 전쟁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독일의 총리를 기억하십니까?

바로 빌리 브란트였습니다.

그가 한 행동은 마음의 장벽을 제거하는 위대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일본 총리라면 우리나라를 찾아와 젖은 땅 위에 무릎을 꿇고 과거에 저지를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이야기겠지요?

바로 이곳 뤼베크에는 그의 기념관이 있는 곳입니다.

서독 총리로 노벨 평화상을 탄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총리였지요?

 

그의 기념관이 뤼베크에 있는 이유는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도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한 나라의 지도자로 또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로 그는 우뚝 선 진정 용기 있는 영웅이었습니다.

 

함부르크로 돌아가려고 기차역 가까이 오니 청동 조각상 하나가 보입니다.

독일의 철혈재상이라는 비스마르크 청동상(Bismarckdenkmal)이네요.

열심히 뤼베크를 구경한 우리에게 잘 가라고 배웅이라도 하려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독일은 비록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지만, 독일 국민 모두는 그로 인해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행동에 모든 국민이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총리는 혼자 과거를 외면하고 일어섰기에 일본 국민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빌리 브란트가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을 때 당시 독일 국민들 사이에도 찬반 의견이

분분했고 반대하는 의견이 조금은 더 우세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빌리 브란트는 용기 있는 위대한 독일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