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6. 09:00ㆍ발칸반도·모스크바 2018/크로아티아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문은 이중으로 만든 필레 문 중 안쪽에 있는 문으로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생각되네요.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두둥실 떠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건물 사이로 곧장 뻗은 대로가 길에 이어진 길입니다.
바로 이 길이 플라차 대로입니다.
이곳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사람 중에 플라차 대로를 걷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비록 걸었을지라도 그게 플라차 대로라는 것을 알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라도요.
그러니 이 길은 두브로브니크의 대표라고 해도 되는 곳이죠.
구시가지에서 가장 번화하고 큰길은 필레 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플라차 대로 또는 스트라둔(Stradun)이라는 길입니다.
첫눈에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죠?
워낙 반들거려 마치 방금 왁스 칠을 했거나
물청소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반짝거립니다.
그래서 이곳 출신의 어느 시인은 이 모습으로 두고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인다."라고
했다네요.
그만큼 반짝거려 바닥에 비치는 주변 풍경이 마치 거울에 비치는 듯...
그랬습니다.
우리 집 거실보다 더 반짝거리고 깨끗해 보입니다.
그 시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위의 사진을 보니 정말 그렇네요.
서쪽의 필레 문에서 동쪽의 플로체 문을 잇는 길로 그 거리가 약 300m 정도 되는 대로입니다.
대로 양쪽으로 하수도는 없고 물길을 만들어 두었네요.
저 정도로도 빗물이 감당이 된다면 이곳은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곳이란 말인가요?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첫눈에 두브로브니크는 있어 보입니다.
이 길만 걸어도 두브로브니크의 절반은 본 셈이겠지요.
이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양쪽으로 좁은 골목길이 일정한 간격으로 보입니다.
아주 계획적인 설계에 따라 구시가지가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골목길은 모두 양쪽으로 오르막이더라고요.
원래 플라차 대로는 운하를 매워 만든 도로로 스르지 산이 있는 북쪽 방향은 육지였고 반대편 남쪽 방향은 섬이 있어
가운데 운하 비슷하게 물길이 있었는데 이 물길을 메워 길을 만든 게 바로 지금의 플라차 대로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을 통해 보면 중간에 좌우로 보이는 두 개의 탑 사이에 물길이 있어
위의 육지와 아래의 섬이 합쳐진 곳이라네요.
두 곳 중 오래된 곳은 육지가 아니라 남쪽의 섬이 있던 곳이 더 오래된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 섬이었던 남쪽에는 로마인의 후손이 주로 살았고 북쪽인 육지에는 남슬라브인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민족이었지만, 이들은 가운데 운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사이좋게 살았다네요.
나중에는 아예 가운데 물길을 메워버려 하나의 도시 공동체로 만들어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답니다.
따라서 가운데 물길이었던 운하를 메워 지금의 플라차 대로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플라차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으로 지형이 되어있네요.
그러니 이 도로는 바로 화합의 상징이고 협동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서로 간에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네요.
북쪽에서 내려온 슬라브족이 이곳 원주민이었던 사람들을 쫓아버리자 원주민은 지금의 성곽이 있는 섬으로
피신해 살았고 슬라브족은 스르지 산에 있는 북쪽에 모여 살았다네요.
원주민이 보았을 때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뺐다고 했지 싶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 점차 적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화합하고 나중에는 두 민족 간의 물길을 메워
지금의 플라차 대로를 만들며 하나의 도시인 두브로브니크가 되었다네요.
그러니 가운데 플라차 대로가 제일 나지막한 곳에 평지로 연결되었고요.
따라서 숙소를 잘못 얻으면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생을 하기 쉽겠더라고요.
올드타운 안에 숙소를 정할 때는 꼭 심사숙고하셔야 합니다.
플라차 대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길이라는 의미인 플라테아(Platea)에서
플라차((Placa)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베네치아 공국의 오랜 지배 아래 있었기에 베네치아 어로 길이라는 의미인
스트라둔이라고도 부르고 있지요.
구글 지도상에서는 스트라둔으로 표기되어 있더라고요.
300여m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길지 않은 거리지만,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모든 여행자가 걷는 길이기에 늘 혼잡하더라고요.
이 플라차 대로는 13세기경 처음 만들어졌다가 지금처럼 돌로 다시 포장한 해가 1468년이라고 하니
550년이 넘었네요.
그러나 1667년 지진이 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후 황폐해지다시피 한 이곳에도 새롭게 포장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모습은 바로 이때 포장한 모습이라고 하네요.
바닥이 윤이 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오가는 바람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비 오는 날에는 혹시 미끄러질 수도 있지 싶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지진 이후 복구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그동안 목청을 높여가며 힘깨나 썼던 라구사 공국이었지만, 점차 유명무실해지기 시작했다지요?
그러던 중 1808년 나폴레옹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에도 들어왔다고 하네요.
이로써 라구사 공국은 역사책 속에만 한 줄 남는 그런 나라가 되고 말았다네요.
당시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한 후 스르지 산 정상에 십자가를 선물로 세우고 갔다고 합니다.
나라가 사라지는데 누구 염장 지를 일이라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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