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프리오 분수와 프란체스코 수도원

2019. 8. 23. 09:00발칸반도·모스크바 2018/크로아티아

 

낮에는 엄청나게 밀어닥치는 많은 관광객으로 말미암아 필레 문은

사진조차 찍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면 이곳 두브로브니크도 조금은 한가한 모습으로 오늘은 필레 문에서

출발해 플라차 대로를 통해 걸어가며 보았던 모습들을 구경하려고 합니다.

 

 

워낙 입구가 혼잡하기에 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는 우측통행을 하라고 표시해

두었고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안으로 들어가는 제일 중요한 문인 필레 문 위로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조각상 하나가 보입니다.

이 조각상은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성 블레이세(또는 블라흐)의 모습입니다.

 

 

밝은 낮에 찍은 사진입니다.

성블레이세 조각상은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 안팎으로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는

수호성인으로 왼손에 든 것은 바로 두브로브니크의 모형으로 이 도시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시를 구한 일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헉!!! 수호성인 머리 위로는 대포가 보입니다.

 

 

필레 문을 통해 올드타운 안으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둥근 형태의 구조물로 구조물의 이름은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Fountain:Velika onofrijeva fontana)라고 부른다네요.

 

 

16 각형의 둥근 모습으로 수도꼭지가 있어 분수라기보다는 급수시설이라고 봐야

하며 16면에 각기 다른 모습의 얼굴 조각상을 새겨놓아

하나씩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두브로브니크는 바위 섬과 육지 사이의 좁은 해협을 메워 만든 도시로

식수 문제는 도시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겁니다.

따라서 이렇게 외부에서 물을 끌어와 수도시설을 만드는 것은 꼭 해결해야 할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이렇게 크게 분수를 만든 이유는 지역적으로 늘 물 부족이 있었기에 주민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라구사 공국 시절 만든 시설로 당시

상하수도 공사를 하며 물 부족을 염려해 만든 분수라네요.

목적이 미관상으로 만들기보다는 식수 공급이 우선이었나 봅니다.

 

 

분수는 여기 말고도 성벽 안팎으로 몇 개 더 있지만,

이곳 오노프리오 분수만큼 우리 눈을 사로잡는 분수는 없더라고요.

1436년 나폴리의 건축가 오노프리오가 만들었기에 그의 이름을 붙여 분수 이름을

정했다고 하고 지금은 집집이 수도시설이 구비되어 있기에 식수원으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먹는 물로는 사용하는 곳이라네요.

 

 

다른 말로 Jewish fountain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이곳에서 12km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물을 가져온다고 하며 16개의 노즐에서 물이 나오고 원래는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장식했다는데 지진 이후 아름다운 장식은 대부분 사라지고 개 한 마리의 장식만 보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돔 형태로 만들었고 하네요.

 

 

지금도 이 물은 식수로 사용되고 있는 분수라고 합니다.

이 플라차 대로 끝에 가면 또 다른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는데

그곳과 구분하기 위해 이곳은 큰(Large) 오노프리오 분수라고 부른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분수가 바로 작은(Little) 오노프리오 분수(Mala onofrijeva fontana)로

작지만,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분수를 만들지 않았나요?

이곳의 물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식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사자의 얼굴을 아주 예쁜 조각으로 멋을 낸 분수입니다.

이렇게 두브로브니크는 곳곳에 많은 분수를 만들어 이곳 주민이 물 부족으로

곤란을 받지 않도록 했다는 말이네요.

이는 라구사 공국 시절에 해상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요?

 

 

오노프리오 분수 바로 옆에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ziskanerkloster)이라고 있습니다.
필레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오노프리오 분수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죠.

입구는 위의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건물 오른쪽의 골목 안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그 계단을 지나면 성당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바로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은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고 수도원에 딸린 박물관을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을 들어가려면 두브로브니크 카드가 있어야 하며

없다면 따로 티켓을 사야 합니다.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프란체스코 수도사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며 환자를 치료했다고 하는데 이 수도원 이름이 프란체스코 수도원이라고 하는데

프란체스코는 길을 가다가 새들을 만나 설교를 했는데 새들이 헐!

프란체스코의 설교를 가만히 경청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지요.

 

 

이 수도원에는 박물관도 있어 두브로브니크 카드가 있다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죠.

1317년에 지은 아주 오래된 수도원 건물입니다.

그러나 원래 위치는 성벽 밖이었는데 외침에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워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는 곳이 말라 브라차(mala braća)라고 부르는 약국입니다.

그 의미는 작은 형제들이라는 의미라죠?

그런 의미의 이름을 정한 데는 불쌍하고 아픈 형제를 돕기 위한

 프란체스코회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이 약국은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네요.

따라서 약국 안에 들어가 보면 틀림없이 한국 여행자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여행자가 이곳에서는 유명하다는 장미 크림을 사더라고요.

 

 

그 외에도 장미 비누도 팔고 라벤더 크림도 팔고요.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예전에 부자 도시라 가장 부자 수도원이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도 약국을 열고 장사하고 있으며 발도 디딜 틈이 없이 혼잡한 약국이었습니다.

 

 

이런 제품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널리 알려졌기에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꼭 사야 하는 품목으로 알려졌지만,

우리처럼 나이 들고 볼품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이 약국은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오래된 전통이 있는 약국이라고 합니다.

처음 수도원을 지을 때 문을 연 약국은 아직도 그 전통을 지키고 운영 중이라고 하니...

물론, 크로아티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약국이기도 하고요.

 

 

수도원 내부는 크게 구경거리가 없기는 합니다.

다만,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의 기둥이 제법 보기 좋더라고요.

열주 사이로 보이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요.

 

 

회랑은 두 개씩 짝을 이룬 기둥 형태로 아치와 아치 위로 보이는 장식이 특히 눈길을 끌더군요.

위쪽으로는 사람이나 동물의 머리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요.
흑사병이 창궐할 때 이곳에서 질병 치료에 헌신했던 수도사들의 모습이

프레스코화로 남아있습니다.

 

대지진 때 두브로브니크 건물 대부분이 거의 파괴되었다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유독 플라차 대로에서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이는

피에타상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하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피에타상이 너무 안쓰러워 지진도 피해 갔나 봅니다.

양쪽으로 성 이반과 성 히에로니무스의 모습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에 많은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분수처럼 일반 주민을 위한 시설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만드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요.

이곳 두브로브니크는 이전에 라구사 공국이 다스렸던 도시국가로

해상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던 곳이라 합니다.

그랬기에 이런 분수 시설을 곳곳에 만들어 주민편의를 위해 시설물을 만들었지 싶습니다.

누구는 이 시설이 수도사가 만들었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