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폼페이 모습

2017. 8. 31.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폼페이

폼페이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에 위의 사진처럼 피라미드 형태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 많은 여행자가 앉아 그동안 불편한 길을 걸어와 피곤한 발을 잠시 쉬게 하고 있네요.

우리가 통합권인 아르떼 카드를 샀기에 이곳으로 들어올 때 그냥 들어오려다

2유로를 더 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네요.

 

피라미드 안에는 바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곳 유적에서 발굴한 주민의 처참한 모습이지요.

주변으로는 발굴 당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어 이해를 돕게 했네요.

 

지금은 바다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폼페이지만, 당시는 바로 폼페이 유적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포르타 마리나 앞이 바로 항구였다지요?

폼페이는 이렇게 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며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79년 8월 24일 그날까지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의 부호들이 휴양을 위해 즐겨 찾는 곳 중의 한 곳이기도 했다지요?

게다가 격자 모양의 반듯한 도시는 계획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풍요롭게 살아가던 그들에게 비극의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부터 보시는 사진은 당시에 살았던 폼페이 주민의 모형이 아니라 마지막 실제 모습입니다.

최후의 순간이라는 말이겠죠?

 

가운데 사진을 가까이 불러봅니다.

어린아이를 어르는 모습이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를 배 위에 올린 아버지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너무 무서워 엎드린 모습으로 죽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화산 폭발이 금방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잠시 엎드려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네요.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 죽어갔습니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을 때 한날한시에 가겠다는 약속을 했나 봅니다.

 

무서워 공포에 떨며 웅크린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산모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재앙은 산모도 가리지 않나 봅니다.

 

이 모습도 산모로 보입니다.

 

자는 듯 누운 모습도 보입니다.

정말 자다가 일을 당했을까요?

어쩌면 저리도 편안한 모습이랍니까?

 

두개골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렇게 이들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당시 처음 발굴 때의 모습이지 싶습니다.

이런 형태는 구멍에 석고를 부어 굳혀 만든 것이겠지요.

 

물론, 청동으로 만든 예술작품 같은 조각품도 함께 발견되었겠지요.

여기서 발굴된 유물 대부분은 인근 나폴리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고

현장에는 모두 모조품으로 비치해 두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집안의 내부는 화려한 그림을 그려 살았다는 게 그대로 알 수 있네요.

이 정도로 꾸미고 살아가려면 풍요롭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풍요롭게 살다 보니 화산의 전조증상이 있었는데도 피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바다를 메워버려

지금은 바다가 폼페이에서 멀리 떨어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화산재가 날아왔으면 바다를 메울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렇게 저주받은 땅으로 잊혔던 폼페이는 1592년 운하 건설로 발견되기 시작해 1748년 당시

나폴리의 왕의 명령에 따라 발굴을 시작하며 1861년 통일 이탈리아에 의해 드디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해

발굴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때 발굴 책임자로 고고학자인 주세페 피오넬리를 중심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