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에서 사라진 것과 남은 것

2017. 8. 26. 08:38이탈리아 여행기 2015/폼페이

이 녀석은 화산재에 묻혀 화석이 된 개일까요?

이 녀석아 언능 일어나!!!

지금 폼페이에는 이렇게 주인 없는 개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화석이나 된 듯 꼼짝도 하지 않네요.

 

그때 미처 피하지 못한 개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게으른 놈이 아닐까요? 아니면 유기견이었을까요.

아마도 주인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주인 곁에 함께한 충직한 개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폼페이에서는 사라진 것과 위의 사진처럼 화석으로나마 남은 것이 있습니다.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당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모두 화산재로 덮었습니다.

 

위의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것은 어느 집의 대문입니다.

대문에 붙은 화산재를 보고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상상합니다.

어두운 밤에도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는 마름모꼴의

반짝이는 하얀 빛나는 돌을 바닥에 깔아 두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날아온 것은 작은 화산재만이 아니겠죠?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돌은 화산 폭발로 이곳까지 날아온 화산 덩어리들입니다.

이런 엄청난 크기의 돌이 하늘에서 쏟아졌으니 살아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겠네요.

 

위의 사진은 폼페이 어느 집안을 구경하다 본모습입니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의 유골이 이 집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에 살았던 사람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라 합니다.

당시 이곳 인구가 약 3만 명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그중 10% 정도만 피신하지 못하고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답니다.

 

위의 집은 체이의 집(Casa dei Ceii)입니다.

이 집은 당시 체리우스 가문의 집으로 장사로 큰돈을 번 가문이라고 합니다.

집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집안 곳곳에 장식한 벽화나 스투코 장식이 유난히 많은 집입니다.

 

비록 장사로 돈을 벌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부유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우리말에도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고 하잖아요.

사냥하는 장면이 많은 것으로 보아 사냥을 무척 즐겼던 가문이었나 보네요.

아닌가요?

개같이 벌었기에 개 그림을 그려놓았나요?

 

위의 사진에 수도관이 보입니다.

이렇게 집안까지 벽 사이에 관을 묻어 수도를 연결해 사용했다고 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 듯합니다.

 

그뿐인가요?

이렇게 하수도관도 묻어 실내에서 사용한 물을 버렸다고 하니 지금의 생활과 다른 게 없습니다.

생활용수로 사용한 후 버려지는 물은 이렇게 따로 관을 묻어 버렸나 봅니다.

 

유럽 배의 집이라는 쟈르디노 카사 델라 나베 에우로파(Giardino Casa della Nave Europa )

이며 이 집에는 에우로파라고 쓴 배를 그린 그림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벌써 그때부터 유럽이라는 언어가 있었나요?

뒤로는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이 있네요.

 

이 집은 카스트리키오 거리에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로마 시대 주택의 특징인 아트리움이 없습니다.

그 안에 페리스틸리움이 있고 주변에는 방이 여러 개 보이는데 그중 하나의 방에

에우로페라고 쓴 낙서가 그려진 화물선이 보입니다.

이 배 때문에 이 집의 이름이 나바 에우로페라고 정했지 싶네요.

또한, 올리브 열매에서 씨를 제거하는 정교한 기계도 발견된 곳입니다.

 

이번에 구경할 곳은 카스카 롱구스의 집입니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 폼페이 유적지에 있는 로마 시대 개인 주택으로

카스카 롱구스라는 이름이 새겨진 탁자 받침대가 나와 이런 명칭이 붙었다 하네요.

 

집의 명칭은 정원에서 발견된 푸블리우스 카스카 롱구스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 탁자 받침대에서 유래했답니다.

소박한 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크고 문양도 화려해 보입니다.

받침대의 다리는 사자 발 하나에 사자 머리가 얹힌 모양으로 모두 세 개로 이루어졌네요.

 

탁자 상판을 얹기 편하도록 사자 머리 위가 사각형 판 모양인데 이곳에

P(UBLIUS) CASCA LONG(INU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푸블리우스 카스카 롱구스는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자 중의

한 명으로 알려진 사람이죠?

 

그러나 카스카 롱구스의 이름이 새겨진 탁자 받침대가 이곳에서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는

집주인이 롱구스의 후손이라는 설과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 암살에 참여한 죄인들의 재산을

경매 처분할 당시 누군가가 사들인 물건이 우연히 폼페이까지 흘러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유적이 온전하게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폼페이에서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사라졌고

그들이 살았던 곳의 모습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습니다.

당시 살아남았다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