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 두오모

2016. 4. 14.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라벤나

오늘 찾아갈 곳은 라벤나 두오모입니다.

두오모라고 하면 카테드랄처럼 대성당이라는 말이겠죠?

여는 성당과는 다르게 중세에는 이 지역의 맹주였던 대주교가 봉직하는 곳 말입니다.

 

영어로 두오모라고 하면 반원형의 지붕을 말하는 돔이라고 하지만, 이탈리아는 대성당을 두오모라 하나 보네요.

위의 사진처럼 천장의 모습이 둥근 공을 반으로 잘라놓은 그런 모습을 했기에 그렇게 불렀을까요?

중세 유럽은 두오모를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도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소가 두오모라는 말이지 싶네요.

 

라벤나 두오모 위치는 포폴로 광장을 중심으로 산 비탈레 성당 반대편 딱 그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라벤나는 아직도 중세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라벤나는 작은 중세풍의 도시지만, 지리학적인 이유로 역사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 곳이랍니다.

 

402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며 점차 강해지는 북쪽의 고트족에 대항하기 위해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우스 황제는 맞불작전으로 북쪽의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로 이곳 라벤나로 수도를 옮겼답니다.

그러니 뒤에 바다를 둔 배수지진이라는 말인가요?

 

라벤나는 그전까지는 아드리아 해의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랬기에 호노리우스 황제는 동생의 영묘는 물론 라벤나에 많은 건축물을 짓게 했다네요.

그의 독려로 라벤나는 천지개벽했지 싶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기든지 수도 이전이란 천지개벽의 수준이잖아요.

 

당시 황제가 거처했던 왕궁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왕궁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꾸민 별천지와도 같은 곳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남은 당시의 건물은 주로 종교시설 뿐이네요.

 

그런 이곳 라벤나는 베네치아처럼 늪지대로 수많은 말뚝을 박고 터전을 마련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려 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와 그의 여동생 갈라 플라치디아는 이렇게 라벤나를 수도로 삼기 위해

늪지대로 지반이 무른 라벤나에 말뚝을 박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북으로부터 서서히 밀고 내려온 고트족이 숟가락만 놓고 밥상머리에 들이대며 달려들었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치는 고트족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또 개발에 나서며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며 작은 해변의 척박한 마을이 두 나라의 도읍으로 영광의 시간을 보냈지 싶네요.

 

그러나 멀리 콘스탄티노플에 자리 잡고 방관자처럼 바라보던 동로마 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540년 이곳으로 힘을 뻗쳐 북으로부터 내려온 야만인이라고 했던 고트 제국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쫓아버렸답니다.

 

그때가 비잔틴 제국으로는 가장 넓은 영토를 장악했던 유스티아누스 황제 시기였다네요.

유스티아누스 법전 편찬으로도 유명한 황제지요?

위의 사진에 보니 금박 모자이크로 그의 얼굴을 만들었네요.

영광의 황제니까 금박 모자이크로 만들어도 되지 싶습니다.

 

시계방향으로 왼쪽 위의 그림부터 봅니다.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로마 제국 때 순교했다고 하는 성 크리스토퍼로 주로 아기 모습을 한 예수를 어깨에 올린

거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네요.

오른쪽 위의 그림은 라벤나 대주교 성 피터 크리솔로구스가 가운데 서 있고 왼쪽이 까마돌리 수도회를 창립한

로무알드가 앉아있는 모습이며 오른쪽이 까마돌리 수도사 피터 데미안을 그린 유화입니다.

아래 오른쪽 그림이 베드로가 아폴리나리스를 라벤나로 보내는 장면이라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 그림이 우르시치누스의 순교 장면입니다.

 

이곳 라벤나 두오모는 18세기에 지은 아주 평범한 성당이었습니다.

규모는 라벤나의 어느 성당보다 컸지만, 내부의 모습은 유화와 조각상 몇 개 외에는

격하게 우리 눈길을 끄는 게 없더군요.

라벤나의 다른 곳과는 달리 모자이크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佳人이기 때문일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나라의 모 교수가 쓴 서양사에 관한 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미지는 형태와 색채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역시 강렬한 색채 효과에서 온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라벤나를 방문하면 그 유명한 두오모를 찾는다 하자,

성당을 들어가는 이들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곧바로 색채의 공습에 노출된다.

벽면 전체를 장식하는 모자이크의 화려한 색채가 머리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면..." 이하 생략.

 

만약, 글쓴이가 라벤나 두오모를 직접 방문해 보고 썼더라면 이곳에는 모자이크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저서에 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