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진나시오 궁전은 구 볼로냐 대학

2016. 1. 21.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볼로냐

"Alma Mater Studiorum -  Università di Bologna"

이 말은 볼로냐 대학의 표어로 모든 학문이 퍼져나간 곳이라는 의미라네요.

교만해 보이지만,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볼로냐 대학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 이 교육기관은 "세상의 학문을 하나로 모았다."는 의미로

라틴어로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라고 했다는 데

이게 영어로 대학을 의미하는 University랍니다.

아르키진나시오 궁전(Archiginnasio di Bologna)을 찾는데 한참 고생했습니다.

궁전이라고 하지만, 사실 볼로냐 대학이 있던 자리로 지금은 캠퍼스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네요.

입구가 평범해 그냥 한 번 지나치기도 한 걸요.

입구에 방패 모양의 문양 안에 호빵처럼 생긴 여섯 개의 둥근 모양의 문장이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지 싶습니다.

 

동그란 것은 찐빵이 아니라 알약을 상징한다 했나요?

피렌체를 근거지로 번성했던 메디치 가문은 약사 출신으로 처음 약을 만들며 돈을 벌었기 때문에

문장에 알약을 넣었나 봅니다.

돈을 벌어 피렌체를 다스렸고 교황까지 배출한 대단한 가문이었다지요?

이곳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나요?

 

1년 전 스페인 여행에서 살라망카라는 작은 중세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살라망카 대학이 있었는데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대학이라고 들었고

그곳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이 볼로냐 대학이라고 알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는

볼로냐가 어느 나라 어디에 있었는지도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이 건물은 1803년까지 볼로냐 대학 건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교황 피우스 4세가 산 페트로니오 성당이 바티칸의 성당보다 크게 짓는다는 것을 알고

성당 공사를 중단시키고 이곳에 대학 건물을 짓게 함으로 지어진 건물이랍니다.

 

1563년부터 1805년까지 대학 건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시립 도서관으로

70만 권의 책을 소장한 곳이 되었답니다.

이 대학은 워낙 진취적인 도시 분위기에 편승해 당시 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인체 해부를 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당시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일이 아니었을까요?

여기도 화타가 있었나 봅니다.

 

당시 해부실로 사용되었던 테아트로 아나토미코가 위의 사진처럼 아직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가려고 했지만, 무슨 행사 때문에 오늘은 입장을 못 한다고 하네요.

 

당시 해부가 있을 때는 종교재판 담당 신부의 입회하에 공개적으로 해부하던 곳으로

신부는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해부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 교회의 힘을 엿볼 수 있네요.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이 대학에서 강의했던 유명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위의 사진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프레스코 타입으로 복도 벽에 현판을 걸고

그곳에 그림과 글로 감사의 마음을 남겼습니다.

위의 사진은 1601년에 만든 것으로 Lazzari 박사를 위한 것이라네요.

 

위의 것은 철학자였던 펠리체 카스텔리에 헌정한 현판입니다.

당시 대학은 변변한 건물조차 없어 교수의 집이나 셋방에서도 강의했다고 하지요.

오죽했으면 볼로냐의 포르티코라는 회랑이 학생들의 강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단한 스승이 있었다는 말이네요.

논문 대필이나 표지 갈이나 하는 그런 교수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또 이곳에서 공부했던 유럽 각지의 명문자제는 자신의 가문을 알리는 문장을

이곳에 빽빽이 남겨놓았습니다.

집안이 명문가가 아니면 왕따라도 시켰지 싶네요.

그리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기에 가문의 문장 하나는 걸려야 하지 않겠어요?

 

또 이곳 볼로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유명 교수들에 대한 감사의 현판은 물론

위의 사진처럼 그의 얼굴 조상을 만들고 유명 화가에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하여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럽 각지의 우수한 인재가 모여들어 강의받기를 원했기에

자연히 볼로냐는 유럽에서 학문의 중심이 되었지 싶네요.

 

여기에 가문의 문장 하나 걸지 못한 가문은 행세조차 하지 못하지 싶네요.

더군다나 이런 곳에 봉직한 기념으로 이런 헌장 현판 하나 남긴다면 가문의 영광이겠지요?

 

스투디움(Studium)이라 불린 이곳은 선생이 학생들에게 직접 수업료를 받아 교육하는

시스템으로 교육 시설이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볼로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답니다.

이런 시설을 단과대학이라는 콜레지오라고 불렀다지요?

 

콜레지오 중 제일 오래된 건물이 스페인 단과대학인 콜레지오 디 스파냐라네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볼로냐 대학 중 가장 오래된 단과대학이지요.

 

볼로냐 대학이 설립되고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은 주로 교회법과 민법 위주로 가르쳤다

하는데 아무래도 당시 시대 상황이 그랬지 싶습니다.

볼로냐가 공국에서 교황령으로 편입되며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단과대학을

바로 이곳 아르키진나시오 궁전으로 모았답니다.

 

바로 옆에 짓고 있던 산 페트로니오 성당이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보다 크게 짓는 것을

중단시키고 이곳에 궁전을 지어 볼로냐 대학으로 사용하게 했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그래도 이것 볼로냐 대학 출신으로 유명한 인물로는 신곡의 저자 단테, 페트라르카,

토마스 베켓, 교황 니콜라오 5세, 에라스무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등이 있다고

하며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들이네요.

 

 

이렇게 많은 문장이 남아있다는 말은 이곳에 문장 하나 제대로 걸지 못한 가문은

행세조차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이곳에 온 김에 佳人의 문장 하나 걸어놓고 갈까요?

그만큼 오랜 세월 유럽 전역의 현자를 길러낸 곳이라는 말이고

그들의 사상을 이끈 곳이라는 말이겠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구 볼로냐 대학 구내를 구경하다 보니 현판에 영문으로 D. O. M이라는 글자가 자주 보입니다.

이 말은 Deo Opitimo Maximo의 첫 글자로 지고지순하신 천주께라는 의미라 합니다.

고대 로마인은 주피터 신에게 사용하던 단어로 후에 기독교 성당 문이나 묘비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말로 사용한다 합니다.

여행하다 보니 별걸 다 공부하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