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산 페트로니오 성당과 마조레 광장 주변

2016. 1. 19.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볼로냐

이제 인디펜덴차 거리를 걸어서 마조레 광장까지 왔습니다.

볼로냐에서 구경거리는 바로 이 마조레 광장 부근에 모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은데 시간이 많지 않으신 분은 볼로냐에서 이 부근만 보셔도 되겠네요.

볼로냐는 유럽 북부로부터 고딕 문화가 동유럽으로부터 비잔틴 문화가 그리고 로마로부터

교회 문화가 들어오며 문화나 사상 그리고 예술 등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복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네요.

 

광장 남쪽에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이 어색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어색해 보이는 것은 짓다가 만 모습이기 때문이겠죠?

14세기에 처음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여태까지 끝내지 못했단 말입니까?

 

원래 처음 성당을 짓기 시작할 때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크게 지으려고 공사를 했다네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바티칸의 미움을 샀던 모양입니다.

우리말에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맞는 말일까요?

 

1561년 공사를 시작해 156년간이나 지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교황 피우스 4세가 공사 중단을 선언하고

그 옆에 대학 건물을 짓게 했다고 합니다.

그 대학 건물이 바로 볼로냐 대학으로 한때 사용되었던 곳이죠.

결국, 포기하고 말았겠지요.

감히 바티칸에 대항해 강행할 수 있었겠어요?

그래도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나요?

지금의 성당 규모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성당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 출입문 왼쪽의 조각은 에덴동산에서 이브의 추방을 그린 듯합니다.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상징이라는 종교의 본산이 참말로 속 좁은 바티칸이었네요.

오히려 미완성으로 남아 역설적으로 더 당당해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래야 오래도록 세상에 바티칸의 행위를 알릴 수 있잖아요.

대리석을 붙이다 만 모습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때의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네요.

 

볼로냐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지만, 대성당이 아니고 그냥 바실리카입니다.

볼로냐의 수호성인인 페트로니오를 모시기 위해 지은 성당이랍니다.

페트로니오 수호 성인도 바티칸의 압력에는 방법이 없었나 봅니다.

결국, 성당은 입구부터 중앙 제단까지만 완성한 셈이 되었답니다.

 

아래는 대리석을 붙여 그나마 보기 좋으나 위의 모습은 보기 딱할 정도입니다.

이곳 성당 안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는 것은 무료지만,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별도로 내야 합니다.

외부 파사드 사진은 무료입니다.

위의 조각은 왼쪽부터 예수께서 발을 씻겨주시는 모습이고 그다음이 최후의 만찬,

가운데는 의미를 모르지만, 천사로부터...

그다음은 유다의 입맞춤, 제일 오른쪽은 제사장 앞에 끌려가

판결받는 모습으로 생각되네요.

 

위의 사진은 왼쪽부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 아기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성 요셉으로 보이는

성 가족의 모습, 로마 병사 아기 예수를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제일 오른쪽 조각은 그런 소식을

먼저 천사로부터 들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당나귀에 태우고 황급히

이집트로 피신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위의 사진은 코뮤날레 궁전(Palazzo Comunale)이라는 곳으로 지금은 시청사와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입니다.
처음 이 궁전에는 프란체스코 다쿠르시오가 살았기에 다쿠르시오 궁전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유럽에서는 궁전이라는 표현이 많은 데 저택이라는 의미도 포함된 용어지 싶습니다.

 

미술관으로도 사용 중이라 하니 그림에 관심 있는 분은 들어가 구경하는 것도 좋겠네요.

특히 2층에는 볼로냐 화파의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있다고 하네요.

 

특히 전면에 보이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은 유명하다고 하지만..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밋밋한 붉은 벽돌로 쌓은 벽에 조각으로 장식했기 때문일까요?

 

위의 사진은 포데스타 궁전(Palazzo del Podestà)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파견했던 집정관이 거처했던 곳이었으나 1146년 볼로냐 시민이 궐기해

그를 이곳에서 쫓아내 버린 곳이라죠.

그때 볼로냐 시민들은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지금 쫓아내지 못하면 평생 거지꼴 못 면한다!"

 

이때부터 볼로냐는 자치적으로 시 대표를 선출하고 자유도시로 제법 오랜 기간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며 그때 도시 운영대표들이 모여 업무를 보던 곳이 바로 이곳 포데스타 궁전이라 하니

당시 정치의 중심이었다는 말이네요.

마조레 광장과 마주한 주랑이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 있는 주랑이랍니다.

옥상 꼭대기에는 아렌고 탑이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4.700kg이나 되는 큰 종을 매달아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군인을 소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정부 청사로도 사용되었고 재판소로도 사용되었다 합니다.

그때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집행할 때 위의 사진에 보이는 포데스타 궁전의 2층 발코니에서

했다고 하며 그런 날이면 바로 포데스타 궁전 앞에 있는 마조레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교수형을 구경했다고 합니다.

그날은 광장에 노점상도 재미를 봤지 싶네요.

 

위의 사진은 엔초왕 궁전(Palazzo Re Enzo)입니다.
볼로냐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전쟁을 해 승리한 후

그의 아들 엔초왕을 포로로 잡아와 유폐시킨 곳이며 1246년 지은 이 궁전에 1249년부터

엔초왕이 1272년 죽기까지 23년간이나 유폐시킨 곳이라 합니다.

참 오랜 세월 이곳에 가두어 두었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마조레 광장은 볼로냐의 중심입니다.

중세 도시 그대로 그때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건물은 모두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입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도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들고 외부에 흰 대리석으로 멋진

파사드를 만들려고 했으나 바티칸의 태클로 반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