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볼로냐 가는 길

2015. 12. 16.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베네치아

이제 곤돌라를 탔으니 베네치아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했네요.

사실 나이가 젊다면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았을 겁니다.

곤돌라가 다니는 수로 가에 있는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지나가는 배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냥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눈인사도 건넸을 겁니다.

 

베네치아에서 또 할 일 중 하나가 가까운 섬에 다녀오는 일일 겁니다.

무라노, 부라노 섬.

사실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배만 타면 다녀올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그런 섬의 모습이 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또 우리의 여행이 딱 3주간으로 다른 많은 곳이 남아있어 처음 계획에 이곳 베네치아를 사흘 동안

구경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시칠리아를 가보고 싶어 출발 직전 하루로 줄여버렸습니다.

베네치아만 아니고 피렌체도 하루로 줄여 덕분에 시칠리아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기 전 숙소에서 소개받은 리스토란테 디아나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 소개받은 곳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위치는 번화한 곳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어 조금 조용하고 수로 가에 식탁을 두어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여기 베네치아에의 일부 식당은 가격표를 100g당 가격을 붙여놓아(그것도 여행자는 쉽게

알 수 없도록) 식대가 200유로 정도 나와 곤욕을 치른 우리나라 여행자가 제법 많습니다.

여기는 제1 요리 파스타와 제2 요리 육류를 포함해서 모두 16유로/1인으로 조금 비싼 편이지만,

워낙 살인적인 베네치아이기에 중간 정도의 가격이라고 하네요.

 

파스타도 세 사람이 따로따로 여러 가지로 시켰습니다.

검은색은 먹물 파스타라고 하고 조개가 있는 것은 봉골레 파스타라고 하네요.

나머지 하나는 이름도 모르고 그냥 메뉴판에서 찍었습니다.

 

두 번째 요리는 생선과 닭고기 그리고 소고기였습니다.

소개받아 가게 되면 속이는 일이 없는 식당이기에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 어느 정도 맞았고 그렇게 짜지 않아 좋았네요.
다만,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을 수 없었답니다.

사실 소식을 하는 관계로 파스타만으로도 배가 불렀으니까요.

유일하게 배워갔던 이탈리아 말인 소금 적게 넣어달라는 의미의 "뽀꼬 쌀레"는

잊어버리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곤돌라를 타기 위해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 오늘 이동할 기차표를 발권했습니다.

장거리나 비싼 곳은 출발 두 달 전 저렴한 가격에 한국에서 예매했고

대부분 당일 출발 전 기차역에 도착해 발권했습니다.

이탈리아 대부분은 기차로만 여행이 충분했기에 이번 여행은 주로 기차를 이용했네요.

 

베네치아의 기차역을 산타루치아 역이라 한다지요?

산타루치아는 우리가 노래로 알고 있지요.

산타루치아는 빛의 성녀를 의미하는 말이라 하네요.

역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위의 사진처럼 이렇게 눈이 부셔 그랬을까요?

 

산타루치아는 나폴리의 수호성녀라 합니다.

그런데 나폴리보다는 이곳 베네치아가 더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바로 산타루치아 성녀의 유골을 모신 산타루치아 성당을 헐고 기차역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차역 이름이 산타루치아 역이라네요.

지금 그녀의 유골은 이곳 산 제레미아 성당에 모셔졌다네요.

 

기차표를 사는 데 말도 통하지 않은 창구보다 기계에서 씨름하는 게 훨씬 편했습니다.

이탈리아 기차역에는 아무리 시골 역이라도 자동발권기가 있어 영어를 선택한 후 편하게

발권할 수 있었으며 가끔 속을 썩이는 기계가 있었지만, 여러 개가 있어 쉽게 발권했습니다.

 

이탈리아 기차여행에 트렌 잇(Tren it)이라는 무료 모바일 앱을 내려받아 유용하게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열차는 자주 출발 플랫폼이 바뀌는데 이 앱에 바뀐 플랫폼이 바로 뜨기 때문에

걱정을 덜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곤돌라를 탄 후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볼로냐로 가야 합니다.

볼로냐행 기차는 12.1유로/1인이었고 이탈리아의 일반 기차는 같은 급의 기차를

일자나 시간 상관없이 탈 수 있다고 하며 가장 저렴한 레지오날레라는 기차표는

한번 발권으로 두 달 안에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승차 전에 위의 사진처럼 꼭 기차표를 체크하는 기계에 찍어야 한다고

하는데 만약 저 기계에 기차표를 찍지 않고 탔다가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이 나온다 하니

잊지 말고 체크해야 한다고 하네요.

이탈리아는 기차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어 당일 이동하는 기차는 쉽게 표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좌석은 여유가 있어 서서 간 일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볼로냐로 가는 도중 위의 사진처럼 우리 배낭을 의자 사이에 두었습니다.

기차 선반의 공간이 좁아 배낭을 올리기가 어려웠고 혹시 떨어질 염려가 있어서요.

그런데 앞자리에 함께 마주보고 앉아가던 중년 여성 두 사람이 중간역에서 내리며 한 사람이

佳人의 앞에 서서 시야를 가리고 다른 사람이 저 배낭을 꺼내 들고 나가려 하더랍니다.

 

다른 좌석에 앉아가던 울 마눌님이 기겁해 "노!!!"라고 외치자 그 여인은 웃으며 "쏘리~"라고

하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내려놓더랍니다.

佳人은 순간적으로 앞에 막아선 여인 때문에 그 장면을 볼 수 없어 나중에 기차 승강구로

내려가는 그 여인을 보고 "아줌마! 배낭보다는 차라리 날 데려가"라고 했지만...

우리처럼 백수 늙은이는 이탈리아에서도 선택받기 어렵겠죠?
멀쩡히 같이 마주 바라보고 앉아가던 사람이 내릴 때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행 시작부터 배낭을 통째로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나 원 참!!!!

그때 말입니다.

저 여인이 배낭보다 佳人을 선택했더라면 저는 지금 이탈리아에 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이제 이렇게 우리는 베네치아를 떠났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도시가 있지만, 베네치아만큼 독특한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베네치아는 세상에 유일한 최대의 수상도시였습니다.

 

섬이란 고립을 의미합니다.

더군다나 이 섬은 115만 개 이상의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돌을 깔아 지반을

단단하게 다진 후 건물을 지은 곳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들은 섬 사이에 실핏줄 같은 수로에 다리를 만들고 옮겨 다녔으며 육지와 바다를 잇는

무역에 앞장서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해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사람에게 섬이란 걸림돌이 아니라 이들은 디딤돌로 이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아가기 위한 배수의 진을 쳤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니 해상 무역대국으로 살기도

했으며 이제는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수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물밀 듯이 들어와

서로 다투며 돈을 쓰고 가니 살기 위해 예전처럼 도망 다니고 돈을 좇아 찾아다니며 목숨을 건

위험한 항해를 하며 살 필요도 없이 가만히 앉아 돈만 세고 노만 저으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숙박료는 물론, 음식값 등 다른 도시보다 엄청나게 비싸게 받고 있으니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기차표를 살 때 옆에서 도와주려는 사람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발권을 도와주고 잔돈은 순식간에 자기 주머니에 넣어버린답니다.

발권하는 게 어렵지 않고 카드로 해도 되니까 혼자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럴 때도 과감히 "노!"라고 외칩시다.

왜?

한국인은 혼자서도 잘하니까요.

그리고 카드로 하시면 원천봉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