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에 온 사연

2015. 12. 9.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만 안쪽의 석호에 있어 모두 118개의 섬이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이상한 물 위의 도시입니다.

그런 이유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며 물길만 있으면 세상 어느 곳이나 어디의 베네치아라고 하는 곳이죠.

처음에는 그냥 석호로 이루어진 곳이었지만,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외적으로부터 자꾸 침입을 받자 살기

위해 이런 석호 안의 작은 섬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함으로 지금의 베네치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네요.

 

점차 인구가 늘어나며 얕은 바닥에 말뚝을 박고 그 위를 돌이나 흙으로 메워가며

땅을 늘려가게 되며 지금의 베네치아가 되었다 하여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은 소문이 났지만,

처음은 살아가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트피플이 되어 살아갔던 곳이네요.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배수의 진을 친 대표적인 예라고 봐야겠네요.

 

그러나 지정학적인 위치로 무역을 통해 자립하고 세력까지 강해지며

점차 주변의 여러 도시를 거느리는 위치까지 올랐다네요.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15~16세기 경이라 하네요.

척박한 처지를 생각해 악착같이 장사하며 돈을 벌었나 봅니다.

래서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소설이 나왔을까요?

 

2015년 10월 8일의 이야기입니다.

베네치아는 카날 그란데라 부르는 대운하를 중심으로 실핏줄처럼 작은 수로가 얽혀있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워낙 복잡해 섬을 이어주는 다리와 골목길이 유명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가다가 막히면 돌아가면 되고 그 끝은 수로가 아니겠어요?

그리고 모든 건물의 정문은 수로를 향해 만들었고 수로 방향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했습니다.

아! 우리는 물 위를 걷지 못하네요.

 

위의 사진은 황금 저택이라고 부르는 카도로(Galleria Giorgio Franchetti alla Ca' d'Oro)입니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베네치아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이라고 합니다.

황금 저택이라고 부른 이유는 처음 이 저택을 지을 때 파사드에 금박 장식을 했기에 붙인

이름이며 역시 수로 쪽을 가장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1420년 콘타리니 가문에서 자신이 살아갈 저택으로 지었으나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답니다.

물 정면은 대운하인 카날 그란데로 나 있어 배를 타고 저택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산 마르코 성당입니다.

제일 위에 보이는 아치 위에 만든 황금 사자상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입니다.

산 마르코는 우리가 아는 성경 복음서 중 마가복음을 쓴 마가의 이름이랍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에 들지는 않지만, 사도 바울을 도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동행했던 사람이라고 하네요.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어머니 집은 초대 교회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산 마르코 성당 내부의 천장은 5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가 압권이라지요?

성당 내부 구경은 무료이지만, 옥상에 오르거나 박물관이나 보물실은 돈을 내야 한다네요.

황금색 모자이크가 유난히 돋보이는 성당입니다.

 

모자이크가 아름답지 않나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최후의 만찬"이

바로 마르코의 2층 다락방이었다고 하지요.

비록 열두제자에 들지는 못했지만, 어느 사람보다 사랑을 전파한 사람으로 알려졌다지요?

 

이교도들과 로마 병정이 들이닥쳐 마르코를 붙잡아 위의 사진처럼 목을 매고

길거리를 끌고 다녀 죽자 그의 시신을 불태우려고 했지만, 천둥 번개에 광풍과 폭우가 쏟아져

결국 혼비백산 도망함에 그의 시신은 아니아누스 집에 모셔지게 되었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 후 828년 베네치아 사람이 그의 유골을 훔쳐와 이곳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마르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은 후 그의 유골을 모시는 장면으로

그때 베네치아에서는 그의 유골을 모셔오기 위해 트리부노와 루스티코라는 두 명의 상인을 보냈으며

로 위의 사진처럼거적으로 싼 유골 위에 모슬렘이 혐오하는 썩은 돼지고기를 덮은 후

몰래 훔쳐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썩은 돼지고기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냄새가 고약하네! 빨리 치워라!"이런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지 않나요?

이런 소리가 들리면 佳人처럼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요?

 

오른쪽을 보면 유골을 운반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골이 방금 죽은 듯 아직 시신 상태로 전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유골의 모습을 그렸을 텐데 과장이 심하지 않나요?

 

왼쪽의 모습은 커다란 보자기 속으로 유골을 바구니에 넣어 담는 모습입니다.

확대하다 보니 사진이 거칠어졌습니다.

 

위의 사진은 아마도 마가의 유골을 옮겨오자는 회의를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유명한 도둑이라도 고용하자고 하는가 보네요.

전문가와 같은 사람을 선발한 후 몰래 보내 유골을 모셔오자고 말입니다.

그러니 베네치아의 상인이지 잡상인은 안 되겠지요?

 

원래 고양이 목에 방을 달자고 하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하지만, 방울을 직접 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갑론을박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뛰어난 전문가와 같은 도둑이 아닐까요?

 

그때가 828년이라고 하니 벌써 천 년이 넘었네요.

그래서 여기에 그의 유골을 모신 곳에 성당을 지었으니 그 성당이 바로 산 마르코 성당이고

베네치아에서 가장 넓은 그 성당 앞이 산 마르코 광장이라고 부른다네요.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가 지금은 베네치아의 상징이 되었다지요.

 

이 광장이 유럽에서 가장 멋진 응접실이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다지요?

역시 나폴레옹은 통이 큰 남자네요.

이렇게 큰 광장을 응접실로 사용하려 했으니...

나폴레옹은 성당 파사드를 장식한 네 마리의 청동상을 가져가 파리 개선문 위에

장식했다가 나중에 돌려주었다네요.

물론 지금 보는 네 마리 청동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마르치아노 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청동 말도 사실 베네치아에서 만든 게 아니라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으로 원래 그리스에서 만들어 마차 경주장에

세웠던 것이라 하니 도대체 누가 훔쳤고 누가 빼앗겼단 말입니까?

성당을 등지고 광장을 바라보면 ㄷ자 형태의 주랑을 지닌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왼쪽이 신청사고 오른쪽이 먼저 건설한 구청사라고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베네치아에서 주의할 것은 우선 소매치기입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식당 선택에서 가격표만 보고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몇 곳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저렴하게 파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그게 100g당 가격이라는 함정을 파고관광객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또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에게 다른 음식을 저렴하게 서비스하는 것처럼 하고

그 음식의 가격 또한 엄청난 가격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곳이 제법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생각하고

구경해야 하는 곳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