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주변의 풍경

2015. 12. 10.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하네요.

300년이 넘은 1702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괴테며 카사노바가 즐겨 찾았던 곳이라네요.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 있는 곳이지만, 아침에는 조용합니다.

당시 여성의 출입이 쉽지 않았을 때 베네치아에서는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을 허용했던

카페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밤에 왔을 때는 여기 말고도 두 곳이 더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더군요.

카페 플로리안은 그 명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하지요.

그러나 마르코 광장에는 여기 말고도 두 곳이 여기와 같은 방법으로

곡을 멋지게 연주하며 영업 중이었지요.

 

만능 달력이 있는 시계탑(Torre dell'Orologio)입니다.
15세기 잠파올로와 글란카를로 라니에리가 디자인한 푸른빛이 도는 아름다운 시계탑입니다.

시계 위로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도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옥상에 청동으로 만든 종이 있고 두 사람이 시간마다

해머를 들고 종을 치는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지중해를 건너온 모슬렘인 무어인이라고 합니다.

왜 이민족을 불러서 종을 치게 했을까요?

 

시계는 24시간을 나타내며 계절, 태양의 위치, 달의 면, 12 궁도까지 알려주는

만능 달력을 겸한 시계입니다.

사진을 찍은 시각이 아침 10시경이나 시계가 틀리지는 않습니다.

당시 중세는 이렇게 도시마다 자기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아주 고급진 시계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99m 높이의 종탑(St Mark's Campanile)이 눈에 뜨입니다.

천 년 전에 처음 세워진 후 1902년 붕괴하였다네요.

베네치아는 지반이 약한 지역이라 쉽게 붕괴할 수 있겠네요.

이 탑이 무너지지 않고 기울어진 상태로 보존했더라면 피사의 사탑이 울고 갈 겁니다.


지금은 그 후 새로 세운 종탑이라 합니다.

입장료를 내면 종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하네요.

베네치아에서는 가장 높은 구조물로 처음에 세울 때는 등대 역할을 했다 합니다.

 

해안 쪽으로 두 개의 기둥이 보입니다.

하나는 베네치아의 첫 번째 수호성인인 로마 병사 산 테오도로가 용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의 기둥에는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인 산 마르코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가

있는데 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등극했기에 산 테오도로는

이제 그 운을 다하고 말았네요.

원래 이 장소는 시장이 열리는 곳이었고 죄수를 공개 처형하는 곳으로 사용된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곳 토박이는 두 개의 기둥 사이로 마가 낀다고 걸어가지 않는다 합니다.

지금은 관광객이 바글바글합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가 통일 이탈리아에 속하지 않았을 때였던

 베네치아 공국일 때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베네치아 공국은 천 년(697년~179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지역을 다스렸다고 하지요.

베네치아 고딕 양식이라고 하는 흰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꾸민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이네요.

베네치아 정치와 사법의 중심지였을 겁니다.

처음은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지었다네요.

 

궁전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을 문서의 문(Carta Gate)이라고 부른다네요.

문서의 문이란 이름은 당시 이 문 위에 법령이나 포고문을 게시했기에 그리 부른다 합니다.

궁전 안에는 감옥도 있고 재판소도 있다네요.

재판이 끝나면 바로 탄식의 다리와 연결해 그 다리를 건너 죄수를 이송했다고 합니다.

입구 파사드에 복음서를 든 마가의 상징이며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가 보입니다.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입니다.

16세기까지는 베네치아의 죄수는 물이 잠기는 두칼레 궁전의 지하감옥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 옆에 새로운 감옥을 지어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에서 판결을 받은 죄수 중 중

죄인은 운하 위에 놓은 탄식의 다리를 지나 새로운 감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한 번 그곳으로 가면 자유와 햇빛을 볼 수 없기에 다리를 건너며 한숨을 쉬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더군다나 그곳 지하에 있는 감방은 물이 들면 많은 사람이 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하네요.

 

이 다리를 건넌 사람 중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바로 바람둥이로 소문난 자코모 카사노바가 주인공이라네요.

5년형을 받은 카사노바는 그의 정부 중 한 여자가 바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의 부인이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자는 남편을 죽이고 열쇠를 훔쳐 정부인 카사노바를 탈출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는 천장을 뚫고 스스로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역시 능력자는 달라도 뭐가 다르네요.

좌우지간 탈출했다는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탄식의 다리를 지나 조금 더 동쪽으로 해안을 따라갑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Monumento Nazionale a Vittorio Emanuele II)의 동상이 보입니다.

그는 지금의 통일 이탈리아를 만드는데 가장 큰 일을 한 사람이기에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그의 동상을 쉽게 볼 수 있더군요.

 

1871년 통일 이탈리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죠.

사르데냐 2대 국왕이었으나 통일 이탈리아가 된 후 이탈리아 초대 국왕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죠.

베네치아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베네치아를 통일 이탈리아로 복속시킨 인물로

이탈리아에서는 국부로 추앙받고 있지 싶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카사노바가 체포된 이유는 바로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을 탈출하며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내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도 자유를 찾아 이곳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다."라고 메모에 남겼다 하네요.

틀린 말은 아닌 듯한데 뭔가 이상합니다.

좌우지간 인사성도 바른 매너 있는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