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랄리페(Generalife) 찾아 가는 길

2015. 12. 2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그라나다

이제 알카사르의 구경을 모두 마치고 천국의 정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갑니다.

알람브라에는 천일야화와도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원래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는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일어나지요.

 

이런 이야기는 워싱턴 어빙이 이곳에 머물며 관리인이나 그의 생활을 도와준 주변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쓴 알람브라 이야기가 세상에 햇빛을 보며 드디어 많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겁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많은 이야기가 소설처럼 각색되어 알려진 것도 많을 겁니다.

 

역사도 달빛에 물들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지 않겠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공부하고 와야 제대로 보이지 싶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처럼 개별적으로 배낭여행을 온 사람에게는 그냥 건물만 보입니다.

 

여행사 패키지여행을 따라온 사람은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지만 말입니다.

차라리 이곳은 패키지여행이 오히려 편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곳에 있는 해설사를 동반해서 돌아보는 방법이지요.

한국어 해설사는 없을 겁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세 개의 지붕은 가장 아름다운 궁전인 리오네스 궁전의 지붕입니다.

제일 아름답다고 한 곳이지만, 외양은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운데 별 모양의 지붕이 있는 곳이 아벤세라헤스의 방이지 싶습니다.

 

알카사바에서 다시 헤네랄리페를 찾아가는 길가에 밭이 보입니다.

알람브라 궁전 안에 왜 밭이 있을까요?

아래 농작물은 고추인가요?

힘이 장사라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나스르 왕조는 카스티야 왕국과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며 알람브라 궁전 안에 농작물을 심어 외부의 도움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도 자체적으로 오랜 시간 버티기 위해 농작물을 심어 식량 조달을 준비했을 겁니다.

바로 유비무환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일로 지금도 이곳에는 예전 모습대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네요.

그러니 지금의 아름다운 정원은 당시에는 대부분 농작물을 심었을 것이라 생각하네요.

화초를 심었더라도 외침이 예상되면 모두 갈아엎고 농산물을 심었겠지요.

 

당시의 이야기로는 1228년 코르도바에 근거지를 둔 알 모하드 왕조의 왕자였던 이드리스는

점차 북으로부터 강한 힘으로 밀고 내려오는 가톨릭 세력의 기에 놀라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조상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게 되었답니다.

알 모하드 왕조는 알람브라 궁전을 건축한 나스리 왕조의 전 왕조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을 했으면 넌덜머리가 나 고향으로 돌아갔을까요?

종교의 힘으로 뭉친 가톨릭 세력은 국토를 다시 찾는다는 레콩키스타의 명분을 가지고 있어 처음과는 달랐습니다.

가톨릭 왕국의 어른들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알 모하드 왕조에서 귀족으로 지내왔던 이븐 알 아마르는

그동안 믿고 따르던 지도자가 떠난 후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러나 언제까지 낙담만 하고 지낼 수 있나요?

겁쟁이는 눈이 녹기를 기다리지만, 용감한 자는 스스로 눈을 치우며 길을 닦잖아요.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남은 무어인을 규합해 새로운 세력으로 키우는 한편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와 만나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 타협안이란 게 바로 당시 가장 번성했던 무어인의 도시였던 코르도바를 카스티야 왕궁에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고스란히 넘겨주고 안달루시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받는 딜을 성공합니다.

그때가 1236년이었다지요?

대단한 수완가였나 보네요.

 

신의 한 수가 통한 거지요.

카스티야 왕국에서도 오랜 세월 전쟁을 하다 보니 전쟁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어 잠시 쉬고 싶었을 겁니다.

따라서 무어인의 가장 큰 도시였던 코르도바를 받는 대신 나머지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조공을 받는 것으로 했다네요.

 

이렇게 놀라운 외교력으로 실권을 잡은 알 아마르는 1238년 드디어 이곳 그라나다에 나스르 왕조를 세우고

스스로 무하마드 1세라 칭하고 왕좌에 등극했다네요.

위에 보이는 구조물은 헤네랄리페 야외 음악당입니다.

 

그러나 한번 꺾인 기세는 어쩌지 못하나 봅니다.

코르도바를 넘겨준 지 10년만인 1246년에 하옌이라는 도시마저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하옌이라는 도시는 바로 그라나다 북쪽에 있어 그라나다 수비에 숨통 같은 곳이지요.

 

비슷한 시기에 그라나다 오른쪽에 있는 무르시아라는 도시마저 페르난도 아들 펠리페 10세의 수중에 떨어지니

알람브라 나스르 왕조는 그라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와도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젠장 하늘에 까마귀마저 술탄을 우습게 보는군요.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은 지 2년 만인 1348년에 이번에는 세비야마저 카스티야 레온 왕국에 넘어가며

카스티야 왕궁은 아예 세비야를 도읍으로 삼아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니 어찌해야 합니까?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두렵다 했나요?

 

그동안 이들은 북쪽의 가톨릭 세력과 딜을 한 후 상당 기간 원만하게 지냈고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를 잇는

중계무역으로 부를 제법 짭짤하게 축적하게 되었답니다.

그 돈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알람브라의 성벽을 더 튼튼하고 높게 쌓았으며

가톨릭 왕국의 특사가 찾아오면 술탄의 강한 면을 보여주기 위해 왕궁을 호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서로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로 작은 다툼이 생기게 되고 한 동한 뜸했던 레콩키스타 운동은 다시 시작되었겠지요.

세월이 흐르자 새로 권좌에 오른 후손은 다시 힘을 비축해 전투를 시작하게 되었다네요.

 

그러니 화친을 위한 딜은 조상이 했고 세월이 지나며 그의 후손들은 자꾸 영토전쟁을 하게 되며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가운데 하나둘 카스티야 왕국에 넘어가며 그라나다 왕국은 점차 위축되기 시작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왕궁은 사비카 언덕 위에 있던 군사요새인 알카사바에 지었고

그곳에서 천 년을 버틸 요량으로 살았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이곳에서의 변천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일 위 왼쪽이 로마가 처음 이곳에 세운 군사시설로 보이고 이슬람이 왔을 때도 지금의 알카사르의 모습입니다.

제일 위 오른쪽이 그다음 시기로 언덕 전체를 둘러싼 성벽을 만들었다는 말이겠지요.

중간의 두 그림은 이곳에 왕궁을 건설하는 과정이지 싶네요.

아래 왼쪽은 나스르 왕조의 최전성기의 모습으로 보이고 아래 오른쪽은 무어족이 물러가고 난 후

카를로스 5세 궁의 만들어진 가장 최근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시타델(스페인에서는 Ciudadela)이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을 통해 보면 정말 산 위에 냉큼 올라앉은 배처럼 보이지 않나요?

쉽게 함락하기 어려운 거함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알람브라는 처음부터 왕국으로 개발된 곳이 아니라 전쟁으로부터의 피신처로

왕궁 건설이 시작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로마 제국이 만든 군사 요새에 나중에 이곳으로 건너온 무어족이 같은 용도로 군사 주둔지로 삼다가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레콩키스타 운동이 강해지며 새로운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생기며 이곳으로 피신하며

요새 안으로 들어가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 말입니다.